좋은 사람이 되기 위한 발악

트라우마를 극복하는 글쓰기

by 김소영

‘엄마, 훌륭하고 못생긴 사람도 있어’


거울 앞에서 얼굴의 못난 자리를 내내 찾고 있던 내게 아들이 말했다. 나는 또 콕 한 대 쥐어 박힌 것처럼 부끄러워져서, ‘그렇지, 근데 엄마는 예쁜 사람이 좋더라’며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멋지고 좋은 사람, 훌륭한데 예쁘기까지 한 사람. 나뿐만 아니라 다들 원하는 요즘의 얼굴이 아닐까 싶다. 공부하느라(핑계이지만), 놓쳐버린 내 인성도 자라면서는 크게 흠이 아니었는데, 크고 보니 아빠 말대로 인간이 먼저 되었어야 했더라. 놓쳐버린 인성은 국제적인 코리아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문화 수준이라는 이름으로 공공연하게 손가락질당할 것을 나는 몰랐다. 잃어버린 시간을 어디 가서 찾을 수 없듯이, 키가 자라면서 함께 자랐 어야 할 인성도 어디 가서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자꾸 가면을 쓰게 되는 것이겠지. 예쁘게 치장을 하고, 웃음으로 포장을 하면, 못난 마음이 조금이나마 덜 못나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자꾸만 그렇게 얼굴을 토닥였나 보다.


평생 놓지 못하던 글을 아이를 낳고, 생업에 매달리면서 놓아버렸다. 그런데도 글 옆에 있고 싶어서, 언저리라도 만지고 싶어서 번역을 했다. 번역을 하다 영어를 가르쳤다. 글에 가까이 있고 싶어서 가까이만 있었다. 그러다 얼마 전 브런치에서 글을 다시 쓰게 되었을 때, 나는 새신 신은 아이처럼 날아오르면서도 뒤꿈치가 아파 피가 났다. 이제 막 걷는 아이가 뛰어가니 그럴 수밖에. 신이 너무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막 쏟아내고 보니, 걸리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삐걱거리는 글의 모양새는 그렇다 치더라도, 마음은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 생각하니, 전에 발행한 글들이 하나같이 부끄러웠다. 화장을 한 얼굴은 글에 드러나지 않지만, 못난 마음은 조금씩 들키는 것 같았다. 따뜻하고, 다소곳한 글을 쓰시는 분들을 보면 어찌나 존경스러운지.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런 분들의 얼굴은 아름다울 것임을 알기에, 내 마음이 더 부끄러웠다. 하지만 얼굴은 솔직하지 않아도, 글은 솔직해야 했기에, 인성이 전부 드러날까 걱정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나의 혼란한 정체성이 만들어지게 된 과거와 성장과정, 그 과정 가운데 아픈 상처들이 드러날까 겁이 났다. 실제로, 잊고 지냈던 아픈 순간들을 글로 옮겨 담으니, 그 순간이 더 선명해져 아픔까지 선명해졌다. 악몽은 제자리를 찾은 듯 자주 급습하고, 가끔 멍을 때리면, 어떻게 알고 빈자리를 차지하고 서서, 가지 않았다.

살면서 누구나 안고 살아가는 트라우마가 하나쯤은 있을 것인데, 글은 그 트라우마를 더 선명하게 하는 것 같아, 겁이 덜컥 났다. 내가 내 마음을 못났다 하는 것도 못난 것인데(자존감이 낮은 것인데), 이제는 그 못나고 모난 마음을 만든 일들을 다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만져주고, 안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또 겁이 났다. ‘아이 둘 키우기도 바쁜데, 내 마음도 키워야 하다니, 우리 엄마가 해줬어야 하는 거 아니야?’하고 죄책감을 뭉친 원망을 토스해버렸을 수도 있지만, 이번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글을 써야 했기에. 더는 트라우마를 트라우마로 남겨두기 싫었다. ‘이제는 가까이만 있지 말고, 같이 걸어야 한다. 키는 더 자라지 않지만, 마음은 자라야 한다.’ 그렇게 자꾸 되 뇌이게 되는 것이었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자리가 아프곤 했는데,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해버리는 그 마음 때문인지, 아니면 내 마음도 고쳐 쓰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인지 알 수가 없었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하면서 고쳐 쓰지 못하는 나도, 내 마음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그렇게나 마음이 아팠구나 싶었다. 그리고 그 글이 마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다 털어내고, 새 출발하는 마음이기보다는, 상처를 다정하게 매만지고, 약도 바르고, 밴드도 붙이고 하는 것. 다친 마음에 새살이 돋는 것. 그렇게 성장하고, 난 자리를 가끔 매만지는 것.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다들 글을 쓰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내게는 ‘살 수 없어서’라는 말이 맞다 생각했었다. 자다가도 쏟아내고, 떠오르는 생각을 나누지 못할 이야기들을 담아내야만 살 수 있었기에 그렇게 대답했었다. 하지만, 글은 내게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내 상처를 보듬고, 다른 이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쓰면서, 조금씩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다정하게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듣고, 또 의지할 수 있는 이가 되는 것. 오늘부터는 글에 기대지 말고, 내가 기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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