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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inah Dec 30. 2021

나 좋아서 쓰는 글

자기 응원의 글

  <호밀밭의 파수꾼>을 쓴 J.D 샐린더는 그의 말년에 절필(출판을 위한)을 선언하고, 혼자 만의 글을 쓰다 생을 마감했다. 얼마나 멋진 일인지. 글을 쓰는 행위 자체에서 행복을 찾고, 무슨 일이 있던지 간에 글을 쓰는 것. 그것 만으로도 만족스럽고, 위로받고, 또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 정말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나는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세계적으로 성공한 글이 아직 없다는 것... 앞으로도 없지 않을까 싶다는 것... 아직은 자기만족 그 이상의 글을 써낼 재간이 없다는 것은 스스로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글 재밌던데, 왜 웹소설 같은 거는 안 써? 웹툰 글작가 이런 거 하면 좋지 않아?'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럼 나는 자주 당혹스러워하며 얼토당토않는 말들로 변명을 한다. 사실, 안 쓰는 거라기보다는 못 쓰는 게 맞다. 실제로 작년에 아는 동생과 웹툰을 같이 진행해 봤지만, 처음 시놉을 썼을 때와는 너무나 달라진 결과물로 인해 적지 않게 놀라며, 급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는 같은 스토리로 소설을 써야겠다며, 대차게 시작했지만, 역시나 제자리걸음 중이다. 머릿속에서 활개를 치는 캐릭터들이 글로만 옮겨지면, 힘이 없이 축축 쳐지며 죽어간다. 바로 이런 걸 필력이라고 하는 거겠지만, 아무래도 나는 장르에 따라 그 필력이라는 것이 큰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내가 사랑하는 '시'는 사실, 숨어 쓰는 글의 매력이 있다.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나의 마음을 숨길 수도 있고, 때론 다 보여준 거 같지만 절대 보여주지 않는 것들이 있을 때도 있다. 글이 짧고 쉬워서라기 보다는, 이런 이유에서 시는 쓰기가 수월하다. 나의 부끄러운 단면들이나, 인성, 혹은 삶의 조각들을 다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한 장을 넘어가는 에세이, 특히 나의 일부 들을 그대로 옮겨 적은 듯한 소설들은 마치 도장을 찍어 놓은 것처럼 선명하게 나를 드러낸다. 그런 나의 글들은 마치 나의 목소리를 내가 들었을 때에 그런 당혹감을 선사한다. 부끄럽고, 때론 창피하기 까지. 그래서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발악까지 한다는 글도 썼었더랬다.


  뱅뱅 돌려서 말했지만, 결국 좋아하는 글만 쓴다는 것인데, 아직까지 나는 이 정도에 만족한다. 물론, 조회수가 갑자기 엄청 높아지거나, 좋아요를 많이 눌러주시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맞지만, 나는 나의 글에 공감해 주시는 소수의 분들만으로도 아주 큰 힘을 얻는다. 가끔 댓글이라도 달리는 날이면, 종일 상글벙글하다. 그때그때의 감정, 그날의 감동, 순간의 깨달음, 찰나의 기쁨 같은 작은 나의 단면들을 의도적으로 들키면서, 나는 부끄러워하며 성장해가고 있다. 그리고 좀 더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었을 때쯤, 나를 온전히 보여주어도 뻔뻔하게(?) 글 안에 있는 나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쯤이면, 나의 소설이 완성되어 있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작가 데뷔는 그때쯤 할 수 있을 것 같다.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늘지 않은 독자 수로 적잖이 속상해하고 있었는데, 영화 <호밀밭의 반항아>를 떠올리며, 스스로 위로했다.  글은 보여줘야 하고, 또 그 글이 성공도 해야 하겠지만, 결국엔 나를 위해 쓰는 것이다. 내가 즐겁게, 나의 마음이 가볍게. 또 그로 인해 내가 성장할 수 있게. 궁극적으로는 나의 목소리를 대중에게 알리는 방법을 익혀 좋은 작가가 되어야겠지만, 지금은 성장하는 중이니까. 나에게 집중하며 글을 써내려 갈 예정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말처럼(?) 가장 나다운 글로 성공하는 거로. 나를 위해 쓴 글로 공감받는 거로.


  오늘의 자기 응원 끝.

  성장 중이신 많은 작가님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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