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재미를 찾아준 해리포터
초보 작가의 실수라고나 할까요. 영감을 찾아 나섰다가, 볼품없는 내 글 솜씨에 주눅이 들어 글 접기를 여러 번이었습니다. 그러다 ‘재미’를 찾아 나섰죠. 제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 심취하여 하루를 통으로 날리곤 하는 것은 아무래도 재미 때문입니다. 한 번은 학교 기숙사에서 소등 후 복도에서 책을 읽다가 쫓겨날 뻔한 적도 있고, 다음 날 시험을 망칠 뻔한 적은 여러 번 있습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한참 동안 책도 드라마도 멀리하고 나서는 우울증이 걸릴 뻔했었죠. 그리고 뻔하게도 이번 고비도 제 친구들인 영화와 소설로 잘 넘긴 듯합니다. 그중 단연, 제게 위로가 되는 것은 로맨스와 판타지 장르입니다. 너무 현실적인 것은 이미 힘든 현실을 더 불행하게만 하는 것 같아 두렵거든요. 그래서 늘 그렇듯, 드라마로 잠들어버린 감성을 깨워보려고 했는데, 코로나 이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진 저는 감성보단 밥과 잠이 우선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요즘 너무 심심하다는 아들의 말에 따라, 그럼 같이 ‘재밌는’ 영화를 보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어느새 훌쩍 자란 초2 아들은 애니메이션은 전부 시시하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비장의 카드인 ‘해리포터’를 내밀었습니다.
그럼 당연하죠. 아들은 그날 이후부터 해리포터 해리포터 노래를 불렀습니다. 당연한 결과이지만, 또 정말 새로웠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흩어지고, 사라지는 수많은 글들 중에서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것. 그것은 아무래도 ‘재미’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할 것도 많고, 학교도 숙제도 많은 아들은 저녁에 해리포터를 보려고 엄마가 퇴근하기도 전에 숙제를 끝내 놓고, 할 것이 없어 심심하다고 매일을 졸랐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마음이 약해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채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오늘 밤 벌써 ‘불사조의 기사단’을 보았습니다. 그리곤 퀭해진 눈으로 책을 읽어달라 하기에, 1편 한 챕터를 읽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이것이 재미의 힘인 듯합니다. 술술 읽히고, 다음이 궁금하고, 머릿속에서 생각이 떠나게 하지 않는 힘. 그것은 누군가 아무리 말려도 멈출 수 없는 것이겠지요. 소용돌이치던 생각이 불현듯 조용히 들판 위로 내려앉았습니다.
판타지는 그런 면에서 현실보다 더 현실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주인공이고, 주인공은 시련과 고통 아래서 좌절하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사랑과 우정으로 극복하죠.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이 이야기들은 재미가 넘칩니다. 절대 현실에서 일어날 일 없어 보이지만, 현실에 아주 깊이 뿌리내리고 있죠. 그런 재미가 이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만듭니다. 삶을 즐겁게 하죠(때때로 어떤 것도 삶을 즐겁게 만들 수 없는 순간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멀리 떨어트려 놓음으로써 현실에 발 내리게 하는 것. 그 특별함이 삶의 지혜로 이어진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문학의 재미이자 가치이겠죠.
사실 오늘은 오랜만에 글을 쓸 구실이 필요했습니다.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보고만 있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이제 재미를 찾았으니 다시 또 달려보려 합니다. 얼마 못 가 주저앉을 지라도, 빼든 칼로 무도 썰고, 글도 쓰겠습니다. 좀 더 ‘재미’에 집중해서, 산다는 재미를 다시 느껴보려 합니다. 계획된 대로 되는 것 없는 삶이지만, ‘재미있는 영화를 보면, 즐겁다’는 진리는 변하지 않는 것 같기에. 사는 재미를 찾아가도록, 재미있는 영화 한 편 보고 자는 것 어떨까요?
당신의 삶에도 ‘재미’가 깃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