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을 지나 나도 누군가의 빛이 될 수 있다면,

by 이생

유난히 맑은 하늘을 바라볼 때면 궁금했었다. 똑같은 하늘 아래에서 너무나 다른 삶의 형태와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어린 시절 동네에서 아이들이 놀이터에 모일 때면, 자신이 원하는 놀이 기구에 매달려 즐겁게 놀게 마련인데, 난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바로 선택할 수 있는 아이들이 너무 부러웠다. 사실 나는 무엇을 해야 그렇게 즐거울 수 있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재밌게 노니까 즐거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은 그렇게 재미있는 것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어쩌면 타인의 감정을 빌려 살아왔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내가 무엇을 할 때 정말 재미있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철창으로 가둬진 이곳에서 지내게 된 것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 어린 시절은 가슴 아프지만, 그래도 이렇게 비가 쏟아져 내리는 날, 나와 마주 앉아 내게 따뜻한 마음을 나눠 줄 수 있는 류 선생님이 있다는 사실이 내게는 기적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류 선생님은 탁자 위에 놓인 물을 한 모금 드시더니 조금 전에 드리워졌던 어둠을 몰아내고는 나를 보고 한 번 웃었다.

"나에게는 나와 아주 닮은 형이 있었어. 나보다 세 살이 많았던 형이었지. 형은 엄청 밝고 씩씩했지. 그리고 어린 나이였지만, 참 배려심이 컸었던 것 같아. 엄마는 형에 비해 유난히 몸이 허약했던 나를 자주 데리고 병원을 가셔야 했지. 그날도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병원을 가시면서 형에게 친구들이랑 놀고 있으라고 말씀하셨어. 그렇게 병원을 갔다가 되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집 근처 정류장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봤어. 어머니와 나는 버스에서 내려 사람들이 모여 있는 쪽을 바라봤는데, 순간 나는 어머니의 몸이 떨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사람들은 어머니를 보고 안절부절못하기도 하고, 손으로 빨리 오라면서 손짓하기도 했어."

"형한테 안 좋은 일이 일어난 건가요?"

"맞아. 어머니는 정신없이 도로를 가로질러 건너갔지. 그때 어머니의 모습이 진공상태로 내 머릿속에 각인돼 있는 것 같아. 버스 정류장 옆 긴 의자가 있었는데 그 위에 사람들이 무언가로 덮어 놓았지만, 그것은 바로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었어. 그것도 아주 작은 아이라는 것을. 주변에 흥건해진 피와 천 아래 놓여 있는 형태가 그걸 말해주고 있었지. 형은 그날 친구들을 따라 근처 초등학교로 놀러 가다가 달려오는 차를 피하지 못했던 거야. 형이 그렇게 떠나간 후에 우리 집은 완전히 달라졌어. 어머니는 생활력을 모두 잃으셨어. 아버지는 철도 공무원이어서 할 수 없이 슬픔을 지고 매일 일을 나가셨지. 그런데 어머니는 매일 출근하는 아버지를 이해하면서도 더 고통스럽게 울부짖지 않는 것이 원망스러웠던 것 같아. 그리고 자신이 형을 두고 갔다는 후회와 죄책감으로 괴로워했어."


선생님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무언가를 말해서 이 정적을 해소해야 한다는 이상한 의무감 같은 것이 생겼었던 것 같다.

"선생님도 많이 힘드셨을 것 같아요. 그때 당시 선생님도 너무 어린아이였잖아요."

"맞아. 하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나의 슬픔은 어머니의 슬픔 끝자락에도 닿지 못한 것이었어. 우리 집은 한동안 마치 무중력 상태로 존재하는 공간에 있는 것처럼 지냈어. 아무도 숨을 쉬지 않는 것처럼 아주 고요했지. 가끔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로 공기가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정도니까."

"선생님도 어렸을 때인데 어머니를 위로하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그래도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있을 때, 말을 하지 않는 것과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사라져 버린 것은 하늘과 땅 차이처럼 너무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어머니가 내 곁에 계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가끔 생각해."


나도 모르게 가슴에 바위같이 단단하면서도 쇠구슬처럼 차가운 무언가가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말할 수 있는 대상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요?"

"어머니는 결국 내 곁에 남는 것을 포기하셨지. 형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은 어머니에겐 극복할 수 없는 감정이었던 것 같아. 유난히 어머니가 평온해 보였던 저녁이었지. 어머니는 형을 잃은 후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나를 보고 환하게 웃으셨어. 퇴근하고 돌아온 아버지도 이제는 어머니가 예전과는 똑같은 일상을 회복하지는 못하더라도 남은 가족을 위해 노력하기로 결심했다고 생각하셨을 거야. 아버지는 유난히 피곤함을 느끼셨는지 먼저 잠이 드셨던 것 같아. 그날 나는 거실로 들려오던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를 기억해. 그리고 어머니는 정말 오랜만에 나에게 동화책을 읽어 주셨어. 그 책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단다."

"그러셨군요. 무슨 책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선생님은 한숨을 내쉬고는 대답했다.

"안데르센 동화집에 있는 <어머니 이야기>라는 동화야. 사실 나는 그때 그 내용이 무엇인지 깊게 생각하지 못했거든. 그냥 어머니가 읽어주는 그 시간과 느낌이 좋았을 뿐이야. 하지만, 그때 어머니가 들려주시던 그 음성과 내용이 조금씩 기억 속에 남아 있어. 이야기 속에 엄마는 아이를 잃게 되자, 아이를 찾기 위해 죽음에게 찾아가지. 하지만, 결국 아이를 찾지 못하고 엄마도 죽게 되는 이야기야."

"동화인데도 너무 슬픈 이야기네요."

"그 슬픈 동화는 내게 그저 이야기가 아니었지. 그날 어머니와 아버지 두 분 다 나를 떠났으니까."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네? 갑자기 그날 밤 두 분이 돌아가셨다고요?"

선생님은 허탈하지만 애써 나를 위로하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어머니는 내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베란다로 향하셨고, 잠깐 잠이 들었던 아버지는 이상한 소리에 잠이 깼었던 것 같아. 나도 아버지의 '안 돼'라는 고함소리에 잠이 깨서 달려가 방문을 열어 봤을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잡으려다가 함께 내 시야에 사라졌어. 시헌아, 너무 슬픈 광경이지 않니?"

나는 이럴 땐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마치 몸이 굳어버린 것처럼 가만히 선생님만 바라보고 있었다.

"결국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지내게 되었단다. 할아버지는 내게 좋은 사람으로 자라야 한다면서 책을 많이 구해주셨어. 내가 다 읽으면, 다시 다른 책으로 빌려다 주시곤 했지."

"선생님, 저는 제 인생만 불행하다고 생각했어요. 선생님처럼 이렇게 멋지고 좋은 분들은 저와 같은 슬픈 기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죠."

류 선생님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환하게 웃으셨다.

"시헌아, 내가 어린 시절의 아픈 기억을 들려준 건 시헌이도 지금까지 많이 힘들었지만, 이 지점에서 다시 시작한다면 누구보다도 더 멋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던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시헌아, 나는 가족을 그렇게 떠나보내고 식당에 가면 4인용 식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는 모습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몰라. 그런데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고 생각해 보니, 세상에는 4인용 식탁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고. 삶의 형태는 너무나 다양하고 가족 구성원들도 너무나 여러 모습이야. 누군가는 1인용 식탁을 사용할 수도 있는 거니까."

"맞아요. 선생님. 저도 부모님과 나란히 앉아 화목하게 밥을 먹는 가족을 보면 이상하게 자꾸 눈길이 갔어요. 제가 닿을 수 없는 세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가끔은 그런 아이들을 시기 어린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했던 것 같아요. 그건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도요."

"시헌아, 그 사람들은 자신들의 행복을 눈치채지 못할 때가 많아.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이 처음부터 누구에게나 주어졌다고 생각하기도 하지. 그런 평범해 보이는 행복이 쉽게 얻을 수 없는 건데 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타인과 너를 비교하지 않아도 돼. 너는 너에게 주어진 인생을 살면 돼. 최대한 네가 행복할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도록 노력했으면 좋겠어."

"그럼, 선생님은 지금 행복하세요?"

류 선생님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네가 보기엔 어때? 내가."

"행복해 보였어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선생님한테 그런 슬픈 과거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요."

"맞아. 난 행복해. 충분히. 비록 지난 시절 사랑하는 가족들을 잃었고, 다시 만날 수 없지만. 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슬픔들을 마주하면서 그 사람들이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잖아. 그들이 다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기도 하지."

"선생님"

"응?"

"저요, 선생님을 위해서라도 행복해지고 싶어요."

류 선생님은 내가 무엇을 말하는지 충분히 이해하는 눈빛이었다.



유난히 류 선생님의 눈이 슬퍼 보였던 상담을 마치고 나는 방으로 다시 돌아왔다. 방에는 처음 보는 낯선 아이가 눈에 띄었다. 나머지 아이들이 그 아이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궁금한 것들을 물어보고 있었다. 하지만, 낯선 그 아이에게 관심을 둘 정도로 내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그대로 누워 천장만 바라봤다. 류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그리고 선생님의 형과 부모님의 모습이 환영처럼 지나가는 것 같았다. 그 슬픈 광경 속에 서 있어야 했던 류 선생님의 어린 시절을 마치 내가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시헌아, 너무 슬픈 광경이지 않니?'

류 선생님의 그 떨리는 음성이 귓가에 계속 맴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