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뻔한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들은 여기에 있다
지난달 말에 받았던 건강검진 결과가 나왔고, 류마티스 정기검진도 다녀왔다. 직장 건강검진에서는 안압이 약간 높아져 있기 때문에 녹내장의 위험성이 있으니, 안과 정밀검사를 권했다. 마침 류마티스에 관련된 피검사를 해놓고 1시간 정도를 기다려야 했기에 맞은편에 있는 안과를 방문해서 정밀 검사를 했다. 선생님은 시신경이 다른 사람에 비해 얇다고 하시면서 녹내장의 위험이 있기는 하지만, 다른 검사 결과 녹내장이라고 진단 내릴 수는 없다고 하시면서, 6개월 이후에 다시 한번 검사를 받으러 오라고 하셨다. 그렇게 두 번 정도 검사를 받고 괜찮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하셨다.
안과 검진과 진료를 한 시간 정도 받다 보니, 류마티스 내과에서 검사 결과가 나왔다고 전화를 주셨다. 선생님께 진료를 받기 위해 자리에 앉았는데, 선생님이 피검사 결과를 보시면서 모두 좋게 나왔다고 하셨다.
"선생님, 그럼 약은 그냥 그대로 먹나요?"
"약을 아주 조금만 줄여 볼까?"
지금까지의 진료 결과로 볼 때, 약을 한 번 조정하면, 3개월 후에 피검사 결과를 살펴보시고, 동일한 약을 3개월 더 먹은 후에 약의 방향을 조정하시는 것 같다.
"그럼, 일주일 중, 5일은 매치론정 1mg을 먹고, 2일은 2mg을 먹어보도록 하지. 만약에 좋지 않으면, 원래대로 돌아오면 되니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3개월 동안, 격일로 1mg과 2mg 먹으면, 일주일에 매치론정을 총 10~11mg을 먹게 되는데, 조정한 결과로 먹게 된다면, 9mg을 먹게 된다. 3개월로 계산해 보면, 18mg을 더 적게 먹게 되는 셈이 된다. 약국에 들러 3개월치 약을 받는데, 약국을 들른 노부부께서 내 약을 보고 놀라신다.
"약이 너무 많죠?"
나는 이렇게 말하고는 웃었다.
1년의 시간이 지나버린 탓인지, 아니면 내 병을 이해하게 되어선지, 아니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그냥 드러내도 내 마음이 불편하지 않았다.
- 모든 병은 상실에서 온다.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거나
자기 자신을 잃었거나
또는 행복한 순간들을 잃었거나.
그럴 때 우리는 이제 너무나 뻔해서 얘기하는 사람조차 낡아 보이는
희망이라는 것에 의지할 수밖에 없어진다.
우리는 그 뻔한 희망을 찾기 위해
우리들은 여기에 있다.
드라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
어쩌면, 내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나도 수없이 많은 상실을 경험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아프고, 상처받으면서도 바쁜 일상 탓에 눈치채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래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길은 항상 열린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후회해도 소용없는 순간들을 희망으로 바꿀 때에야 더 안타까워지는 일들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직장 검진에서 NK세포 활성도검사를 해봤는데, 결과는 40 이하였다. 이 검사를 통해 자신의 면역력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수 있으며, 정상 수치는 500 이상인데, 나는 그 정상 수치에서 한참을 내려가 있었다. 나처럼 스테로이드제나 면역억제제를 복용할 경우에 수치가 낮게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약을 복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시 검사를 하면 수치가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다시 한번 약을 먹지 않고 하는 것은 지금의 나에겐 무의미한 검사라고 생각했다. 지금 스테로이드제와 면역억제제를 계속 복용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지금 상태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더 노력하기로 했다. 수면의 질과 양을 높이고, 걷기 운동과 실내 자전거 타기, 맨발 걷기, 명상과 복식 호흡, 많이 웃고 즐거운 일상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는 일.
- 어리석은 오해로 희망을 버린다면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다. 희망을 포기하는 건 부정 본능과 그에 따른 무지가 가져오는 최악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이 책에서 작가는 '고소득이라는 목표는 단지 돈을 더 많이 버는 데 있지 않다. 장수라는 목표는 단지 더 오래 사는 데 있는 게 아니다. 궁극적 목표는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다.'라고 말했다.
진정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나를 잘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내가 뭘 해야 기쁘고, 무엇을 해야 나를 위하는 것인지 잘 알게 되기 때문이다. 질병을 얻고,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행착오와 외로운 싸움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과정 속에 희망을 녹여 낸다면, 그 시간들을 이겨낼 수 있다. 그런 희망들은 아주 사소하면서도 내 곁에 있는 것들 속에서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맨발 걷기 하는 곳에서 방아깨비는 한참을 내 곁에 있어줬고, 나와 함께 음악을 들었다. 맨발 걷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여전히 너무나 감사한 일이고, 동네 근처에 있는 예쁜 보라색 꽃밭은 나도 모르게 계속 미소 짓게 해 주었다.
이 모든 것은, 실로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이 가을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것도. 그리고 다시 노력할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도.
다시 3개월 동안 내 몸을 위해 열심히 관리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