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맞출 수 없는 기억의 퍼즐

H, 그때 얼음 조각은 별 모양이 분명했지?

by 이생

아주 지극히 개인적인 기억이다. 나는 가끔 그때의 기억이 사실이 아니라 내가 왜곡해서 기억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 기억의 퍼즐을 맞출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전, 초등학교를 들어가기 전의 일이다. 그때 당시만 해도 우리 동네에는 어린 친구들이 꽤 많았다. 초등학교에도 학생들이 많았다. 우리 동네엔 걸어서 갈 수 있는 유치원이 없었고, 그때 당시만 해도 집에 차가 있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내 또래 친구들 대부분은 유치원에 다니지 않았다. 하루 종일 우리는 놀 수 있었다.


그중에 H는 우리 집에 새벽 5시나 6시면 놀러 오곤 했다. 그때만 해도 아버지는 새벽 6시면 일을 하러 나가셔야 했기 때문에 엄마는 새벽 4시에 밥을 하셨다. H는 일어나서 우리 집에 불이 켜져 있는 걸 보면, 무조건 달려와서 내 이름을 불렀다. 아직 잠에서 깨지도 않은 얼굴로 말이다.

H는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남동생과 함께 살았다. H의 엄마는 그때 당시 우리 동네 엄마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위아래로 정장 한 벌을 입고 다니셨는데, 우리는 그때 당시 무슨 일을 하셨는지 자세히는 몰라도 돈을 꽤 잘 번다는 소문이 돌았다. H의 동생에게는 늘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엄청난 크기의 장난감이 항상 손에 들려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H는 그런 장난감보다 우리 집에 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처럼 보였다.

H는 가끔 아침도 우리 집에 와서 먹곤 했다. 사실 H네 집 반찬이 훨씬 좋았을 텐데 H는 우리 집의 북적거림이 부러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H를 포함해 우리는 6명이 모여 함께 소꿉놀이도 하고, 숨바꼭질도 하며 재미있게 놀았다. H보다 K라는 아이는 우리 집에서 더 가까웠지만, K는 우리 집에 자주 놀러 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K는 J네 집으로 잘 놀러 갔다. J는 나하고도 단짝인 여자친구였는데 그 집은 늘 개방적이어서 동네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 J네 부모님은 크게 꾸지람을 하시는 분이 아니어서 아이들이 엄청 자유로워 보였다. 심지어 초등학교 2학년 때쯤, 하교 후에 J네 집에 놀러 갔을 때 가스레인지에 호떡을 굽던 J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호떡을 굽는 프라이팬 사이로 기름을 따라붙은 불이 J의 키보다 더 높이 치솟아 오른 모습이 내겐 충격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표정에는 마치 숙련된 중국 요리사 같은 장엄한 표정도 서려 있었다.


어느 따뜻했던 봄날, K는 J네 집에 놀러 갔고, 그 집에는 역시 놀러 온 친구들이 많았었던 것 같다. J네 둘째 언니 친구들도 많이 모였던 그날, J네 집에 모인 동네 아이들은 함께 초등학교에 놀러 갔다고 한다. 그때 당시만 해도 신호등 하나 없던 시절이었고, 아이들에 대한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다. J네 집에 모였던 동네 아이들이 학교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형상으로 학교로 마구 뛰어갔을 때, K도 그 대열 맨 끝에 놓였다고 했다. 그런데 K가 학교로 가기도 전에 속도를 줄이지 않은 차에 의해 K는 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난 어떻게 소문을 들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집 골목에서 나와 도로까지 가지도 못하고, K가 시퍼런 비닐로 덮여 있는 형상을 지켜봐야 했다. K의 엄마는 K의 동생을 데리고 마침 시내에 있는 병원을 갔다고 했다.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라 동네 사람들은 K의 엄마가 도착하기 전까지 K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다. 그날의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날의 장면이 쉽게 잊히지 않았다.


결국 K의 엄마는 이사를 갔다. 그런데 3년 후에 K의 엄마는 K의 여동생을 데리고 가끔 학교에 놀러 오곤 했다. 나는 멀리서 그 엄마의 표정을 한없이 바라봤었던 것 같다. 그 슬픔은 어떤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거라고 어린 시절의 나는 생각했다.


H, 사실 내가 사춘기가 되면서 왜 H를 그렇게 멀리 했는지 잘 모르겠다. 그렇게 어린 시절을 함께 했던 친구였는데 말이다. 이상하게 사춘기가 되면서 이성에 대한 거부감이 생긴 것인지, 당연한 호르몬의 변화인지 모르겠지만, 난 그렇게도 어린 시절에 친했던 H를 지극히 멀리했다. H뿐만 아니라, 다른 초등학교 친구들이 아는 척을 하면, 그 자리 반대편으로 옮겨가곤 했다. 아마도 사춘기가 심하게 왔던 시절이었던 것 같다.


H는 어린 시절, 아침부터 저녁까지 나와 함께 했다. 셋째 언니가 나를 씻겨 줄 때까지 H도 함께 있어서 언니가 우리 둘의 발을 같이 씻겨서 마루에 함께 올려 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마도 H는 그런 다정함이 좋았던 것 같다. 그 시절의 내가 느끼기에도 H의 집은 삭막한 느낌이 들었다. H의 할머니는 엄청 무서운 분이셨는데, 학교로 가는 길에 H네 마당을 가로지르면 지름길이 되어 아이들이 지나가기라도 하면, H의 할머니는 긴 막대기를 들고 아이들을 쫓아 버리시곤 하셨다. 그 무서운 기운이 지금까지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H네 엄마의 분위기도 비슷했던 것 같다. 사실 H가 환하게 웃었던 표정도 잘 떠오르지 않는다.


H와 함께 앞산에 놀러 가기도 했는데, 한 번 커다란 구덩이에 빠져서 나오지 못한 적이 있었다. 마치 동화 <토끼의 재판>에 나오는 구덩이에 빠진 호랑이처럼. 우리는 커다란 소리로 '살려 주세요'를 외쳤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지나가던 한 여자분이 우리를 꺼내 주셨고, 우리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런데 내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기억이 있다.


우리 집 앞에는 작은 도랑이 하나 있었다. 봄이면 그 도랑에 아주 맑은 물이 흘렀는데, 논에 물을 대던 경로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겨울이면 그 도랑은 얼어붙었고, 마치 크리스털처럼 깨끗한 얼음이 생기곤 했다. 그 앞 논도 얼어붙어 동네 아이들이 논에 못 자국을 내며 썰매를 탔다.

한 번은 그 도랑에 둘이 앉아서 놀고 있는데, H가 커다란 막대기로 얼음을 깼다. 그러고는 나에게 내밀며 말했다.

"이거 별이야."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별 모양이 맞았다.

"정말이네."

그 별모양의 얼음 말고도, H는 나에게 여러 가지 얼음 조각을 주었는데 그 모양들이 마치 미리 넣어둔 얼음 조각들처럼 모양이 정확하고 예뻤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이상하게 그 순간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한 번은 중학교 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가는 나에게 H가 초등학교 동창회를 하는데 올 거냐고 물었다. 나는 시끄럽게 오가는 차들 사이에서 '아니'라고 말하고 서둘러 집으로 향했는데, H는 내 대답을 제대로 듣지 못한 눈치였다. 그날이 H와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어 버릴 줄 그때는 몰랐다.


H네 집은 고등학교 이후에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고, 대학교에 진학해서 친구가 운전하는 차에 탔다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길로 떠났다. H가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후에야 나는 내 어린 시절 기억의 퍼즐을 웃으면서 맞춰 볼 수 있는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른이 되고 난 후, 초등학교 동창회에 나가도 H는 더 이상 만날 수 없었다.

'그 시절, 조금만 더 친절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가끔 후회한다.


H가 건넸던 그 얼음 조각들. H도 기억하고 있었을지 궁금하다.

이제 그날의 기억은, 고스란히 나에게만 존재한다.

그 추운 겨울날, 그 얼음 조각을 깨고, 손에 집어 들었을 H.


기억의 퍼즐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나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준 H에게 고맙고 미안한 마음을 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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