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시간들도 얼음조각처럼 차갑게 흘러갔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언니를 만난다면,

by 이생

사실 이 이야기를 쓰는 것에 대해 예전부터 많이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고민했다는 것은 비밀수첩에 기록되기에 적합한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렸다.


둘째 언니의 이야기다.

언니는 5남매 중에 공부를 제일 잘했다. 고등학교에서도 영어를 전교 1등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물론 내가 확인하지 못했지만, 언니는 그런 이야기로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때 당시 고등학교 합격 여부를 라디오에서 확인했는데, 여고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가 언니를 등에 업고 기뻐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집안 형편으로 언니는 대학에 가질 못했다. 마음을 조금 독하게 먹고, 조금 이기적으로 행동해서 어떻게든 입학만이라도 했다면, 언니는 당연히 언니 스스로 아르바이트나 장학금을 타서라도 대학을 졸업했을 것이다. 하지만, 언니는 평소와는 다르게 그러한 결단을 내리는 것엔 마음이 약했다. 19살의 언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누구든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를 이끌어주고 응원해주지 않을 때, 스스로 첫발을 내디는 일은 쉽지 않다.


언니는 나에게 그 길이 되어 준 사람이다. 하지만, 언니의 길을 열어준 사람은 없었다.


언니는 그렇게 고등학교 졸업 후, 일반 작은 회사의 경리로 취직했다. 그러면서도 성실하게 생활해 나갔다. 우리 동네에는 언니와 초등학교 때부터 친했던 Y라는 언니가 살았었는데, 그 언니는 너무 가정 형편이 어려워 야간 학교를 다녀야 했고, 고등학교 때부터 낮에 일하며 가정 살림을 도왔다. 그 언니네 집에 있던 가전제품은 모두 그 언니의 힘으로 장만한 것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상하게 자식이 너무나 열심히 돈을 벌 때, 그의 부모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 언니의 집이 그랬다.


동네 다른 언니들은 대학에 진학했는데, 둘만 대학을 못 가는 처지가 되니 둘은 더 긴밀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Y 언니는 뺑소니 차에 의해 사고를 당했고, 그 사실을 말하면 충격을 받을 언니를 생각해서 우리는 퇴근하는 언니를 그날은 모르게 하려고 퇴근길에 마중 나갔다. 그날 나는 언니와 함께 잤는데, 아침에 되고, 엄마는 방문을 열어 언니 친구의 죽음을 알려 주셨다.


순간, 언니는 아무 소리 없는 울음을 토해냈다. 벽에 기댄 채 하염없이 울던 언니의 눈 가장자리로 핏덩어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어쩌면 언니에겐 엄마를 비롯해서 가족 누구보다 그 친구에게 마음을 의지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때 중학생이었다. 그런 언니에게 아무것도 해 줄 수가 없어 나 자신이 너무 무기력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언니의 상처도 아물어 가는 듯했다. 언니는 말이 없어지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다. 나는 그냥 언니가 공부를 열심히 한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사무실에 찾아온 종교인으로부터 전도를 받아 우리 집과는 다른 종교를 믿게 된 것이다. 나는 언니가 믿는 종교를 처음 들어봤고, 사람들은 그 종교를 사이비 종교로 분류했다.


언니의 종교가 밝혀진 이후, 우리 집안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어느덧, 나는 고등학생이 되었고, 집에만 오면 늘 마음이 불안했다. 부모님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대로 언니에게 그 종교에서 벗어나기를 회유했지만, 언니의 믿음은 오히려 엄마보다도 굳건했다. 결국, 언니는 집을 떠나 독립했고, 그렇게 우리 가족과는 거리를 두고 지냈다.


그런 아픈 시간들도 얼음조각처럼 차갑게 흘러갔다. 그래도 둘째 언니는 나하고는 늘 연락을 주고받았다. 첫 등록금을 대준 것도 둘째 언니였다. 언니는 내가 집안의 흐름에 녹아들어 내 인생을 포기하지 않기를 원했다.


언니는 결국 뒤늦게라도 대학 공부를 마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아버지의 암 소식을 듣고, 우리와 함께 병간호도 같이 하고, 지금은 홀로 남으신 엄마와 함께 지내고 있다. 엄마와 가장 의견 충돌이 있었는데, 둘은 오늘도 한 지붕 아래 밤을 보낸다.


오늘도 엄마는 나와의 통화에서 언니를 그때 대학에 보내지 못해서 언니의 인생이 제대로 풀리지 못한 것 같다고 후회하시며, 미안해하신다. 엄마도 그 시절엔 그런 판단이 최선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는 현명한 눈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다. 엄마도 그 시절엔 어렸고, 언니도 엄마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할 정도로 마음이 강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 또한 언니를 위로할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고, 언니에게 힘이 되지 못했다.

지금의 내가 그 시절의 언니를 만난다면, 언니에게 나는 어떤 존재가 되어 줄 수 있었을지 잠시 생각해 본다.

언니에게 고맙고도 미안한 밤이다.


짧은 글을 쓰는 사이, 창문을 열고 보니 눈이 하얗게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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