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를 도와주실 수 있어요?

그 오빠를 만나 주세요

by 이생

2002년, 교직 생활을 처음 시작했다. 내 나이 26살이었다.

지금은 2월 초쯤 발령이 나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2월 말 발령이어서 방을 구할 시간이 촉박했다. 낯선 지역에서 방을 구해야 하는데, 구할 수 있는 방이 별로 없었다. 학교 근처에 원룸도 없어서 아래는 집주인이 있고, 위층에 방을 세 주는 식의 자취방을 구했다.


자물쇠로 열고 계단으로 올라가면 화장실이 있고, 조금 더 올라가면, 부엌과 방이 있는 구조였다. 계단이 있는 곳과 부엌이 연결되어 있어 천정 윗부분이 넓었지만, 아늑한 느낌은 별로 없었다. 기역자 형태로 방이 붙어 있었고, 한쪽 방엔 짐을 놓고, 나는 복도 끝쪽 방을 썼다. 그 방엔 커다란 이불장이 있었는데, 너무 커서 마치 벽장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것 또한 아늑함과는 거리가 먼 구조였다.


나중에 집 근처 음악 학원에서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강사분이 방 하나를 쓰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적은 금액을 받고 방을 내주었다. 우리는 거실과 화장실을 함께 사용해야 했지만,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기와 물 사용 비용은 내지 않고, 일주일에 2번 정도 내게 바이올린을 가르쳐 주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 그 강사분은 부모님이 반대하는 남자친구와 밤에 떠났다. 남은 짐은 가족이 챙겨갔다. 그 이후로 다른 사람을 다시 들이지 않았다.


맨 처음엔 텔레비전도 없어서 집에 오면 매우 허전했지만, 월급을 타면서 텔레비전도 장만했다. 그 당시, 선배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집을 알려 주지 말라고 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내가 퇴근하는 뒤를 밟아 우리 집을 알아 버렸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여중이었고, 맡은 반은 3학년 9반이었다. 알고 보니, 선생님들이 서로 맡지 않으려는 반이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처음부터 쉬울 순 없다고 생각했고, 막상 아이들 얼굴을 보니 그리 나쁘지 않았다.


- 선생님, 엄마가 학교에 안 오셔도 반장 할 수 있어요?

우리 반 반장이 된 아이가 반장 선거를 앞두고 교무실로 걸어가는 나를 향해 와서 건넨 말이었다.

- 당연하지. 반장은 엄마가 하는 게 아니니까.

그 당시만 해도 반장이나 회장의 엄마들이 학교일에 참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아이는 결국 반장 선거에 나가서 반장이 되었고, 거의 모든 일을 도와줬다. 그날 내 뒤를 밟은 것도 우리 반 반장과 친구들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은 내 퇴근 시간을 기다려 나와 함께 자취방으로 자주 놀러 왔다. 가끔은 미리 우리 집에 가서 방을 청소해 놓기도 했다. 제자들이 아니라 거의 친구들이었다.

처음엔 혼자 있다 보니, 젓가락이며 숟가락도 하나씩 있었던 터라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비빔면을 삶아서 비닐장갑을 껴고 먹기도 했다. 그다음에 아이들이 숟가락이며, 큰 냄비를 돈을 모아서 사가지고 우리 집을 찾아오기도 했다. 학교 체육대회를 앞두고 반 응원 도구를 자취방에 와서 함께 만들기도 했는데, 그때 붐비나를 만들고 난 후, 어질러진 집의 풍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한 번은 J라는 아이가 등교 시간이 지났는데도 오지 않고 있었다. 아이들 조회를 하고, 교무실에 가서 J 부모님께 전화를 드리려고 하는데, 아이들의 웅성거렸다.

- 선생님한테 말씀드리자.

- 무슨 말이야?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J가 어제 친구들에게 마지막 이메일을 보냈다고 했다. 아이들에게 자세히 설명을 듣고, 바로 J의 부모님께 전화를 드려 J가 말한 그 아파트로 바로 가시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아파트 경비실에 전화해서 아파트 옥상으로 가는 문을 잠그고, 아파트로 들어오는 학생이 있으면 무조건 잡아달라고 전화했다.

학교에 사정을 말하고, 나도 그 아파트로 달려갔다.

다행히 경비원 아저씨가 아파트로 걸어오는 J를 붙잡으셨고, 나는 다행히 J를 만날 수 있었다.


- 선생님, 저를 도와주실 수 있어요?

- 무슨 일인지 말해 볼래.

- 제가 좋아하는 오빠가 있어요. 근데 그 오빠가 헤어지자고 했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에 가끔 자신의 귀한 목숨을 걸기도 한다는 것을 그때 처음 깨달았다.

- 그럼 내가 뭘 해 줄까?

- 그 오빠를 만나 주세요.

결국, 난 J가 좋아하는 K군 고등학교를 찾아가서 담임 선생님을 만난 후, K군을 만났다. J도 나와 함께 갔지만, K군과 대화는 J가 없는 곳에서 이루어졌다. K군은 J가 그렇게 행동했다는 것에 많이 놀랐다.

K군은 다음 해에 고 3이 되기 때문에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헤어지자고 말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난, 헤어지더라도 J가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부탁했고, K군과 J는 서로 마주 앉아서 좋은 동생과 오빠가 되기로 약속했다. J도 K군과 완전 끊어지지 않는 것에 안도했고, K군이 시험이 끝나면, 좀 더 편하게 만나자고 말해서 마음이 훨씬 편해 보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이 흘러 다음 해 봄이 되어 아이들은 고1이 되었고, 꽃집에 들러 작은 화분을 고르고 있는데, J가 지나가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반가운 얼굴로 다가왔다.

- 그래서 그때 그 오빠랑은 연락 자주 해?

- 아니요. 저 다른 남자 친구 생겼어요. 그 오빠보다 훨씬 멋져요.

J는 꽃집에 있던 그 어떤 꽃보다도 더 환하게 웃었다.


나보다 10살 어렸던 제자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나를 속상하게 한 날들보다 친구처럼 함께 해 주었던 날들이 더 많았던 그 아이들. 2002년 월드컵만큼이나 내겐 잊기 힘든 소중한 아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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