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만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선생님은 편한 분위기를 이끌어 주셨다. 내 손가락은 아직 부어 있는 상태였다. 1시간 30분 전에 한 피검사를 살펴보시고는 염증 수치가 줄었다고 하셨다.
적혈구 침강속도가 두 달 전에는 61에서 31, 그리고 두 달 만에 17로 떨어졌다. 하지만, 선생님은 이 수치가 약을 먹지 않은 상태에서 유지가 되어야 의미가 있다고 하셨다. 두 달 전에 소론도정을 1.5알로 시작해 한 달 후에 1알로 유지 중이었다. 처음에 염증 수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처음 진료 받았던 병원에서는 셀코브렉스캡슐, 소론도정, 판토라정, 유한메토트렉세이트정, 신일폴산정을 처방받았는데, 이번에는 소론도정 대신 매치론정을 처방해 주셨다. 찾아보니 매치론정 또한 소론도정만큼 부작용이 굉장히 많았다.
지금은 그 부작용을 확대해석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이틀 전부터 왠지 얼굴이 붓는 느낌이 들어서 스테로이드제에 대한 부작용인 쿠싱증후군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하지만 지나친 걱정은 오히려 증상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렇게 많은 약을 먹고, 영양제를 먹는데 내 신체가 약들 때문에 힘들 수 있겠다 싶어 이틀 동안 영양제는 쉬기로 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간에 무리가 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스테로이드제 성분을 조금 더 줄이는 대신 다른 성분의 약을 조금 더 늘리겠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통증이 더 늘어날 수도 있냐고 여쭤보니 그럴 수도 있다고 하셨다.
두 달 동안 처방받은 약을 열심히 먹고 그동안 내 나름대로 해왔던 일들을 꾸준히 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부디 통증이 나를 찾아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사실 병원에 가서 진료를 기다리는 분들을 보면서 류마티스는 신체 다양한 분위에 올 수 있으며, 그 증상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병원을 방문해서 약을 처방받아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도 류마티스가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한의원에서 손가락에 침을 놓다가 한 달 반 정도를 지체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 오른쪽 무릎 통증이 심해지면서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고, 찾아갔던 정형외과 선생님은 류마티스인자는 음성이지만 CCP 항체가 높으니 류마티스 내과로 가길 권하셨다.
더 이상 지체했다면 아마도 진료 과정이 더 힘들어졌을 것이다. 집으로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눈을 감고 많은 생각을 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들에 대해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즐겁게 해내야겠다고. 기차에서 내리려고 눈을 떴을 때 내 앞으로 어떤 분이 승무원 어깨에 손을 얹고 뒤따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불편한 분이셨다. 짐을 챙겨 기차가 정차하기를 기다리는데 화장실에서 선글라스를 낀 한 사람이 나왔고 승무원 어깨에 손을 얹고 있는 분을 향해 자신이 이 뒤에 있다고 알렸다. 걱정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 결국 앞에 분은 승무원의 도움으로 기차에서 내렸고, 뒤에 있던 분은 스스로 천천히 기차에서 내렸다. 두 분 모두 시각장애인이었다. 뒤에 내린 분이 조금 젊은 분이었으며, 약간의 시력이 있는 것 같았다. 자신도 힘든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를 챙겨서 다니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그동안 내가 엄살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어있는 내 손가락을 다시 바라봤다. 물론 나도 아프다. 그리고 불편하다.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자신감도 떨어지고 우울감도 가끔 찾아온다. 하지만, 할 수 있는 일들이 훨씬 많다. 이렇게 감사하게도 나의 생각을 글로 작성할 수도 있지 않은가! 맨발로 씩씩하게 걸을 수도 있고, 아이스크림보다도 새하얀 파란 하늘에 구름도 실컷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잃은 것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내 부어있는 손가락을 바라봤다. 원래의 손가락으로 회복되길 바라는 마음에 현재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놓치고 살았다.
자신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도울 수 있는 그런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손가락이 부어 있어도 타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것들이 수없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부족한 부분에 집중해 아름다운 인생을 흘려보내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지금 병가 중이고 두 달 정도 더 쉬었다 갈 수 있는데 대신 오셨던 기간제 선생님이 사정이 되지 않아 그만두셨다. 학교에서는 다시 나와 줄 수 있는지 물어보셨는데 사실 더 쉬고 싶었고, 더 쉬어야만 했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나의 삶이 어디에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임하는 것, 그리고 내가 베풀 수 있는 의미 있는 일들이 있다면 그것을 웃으면서 행하는 것. 아마도 이렇게 생활하다 보면 건강하게 백세까지 갈지도 모른다는 웃기지만 현실적일 수 있는 상상을 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