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이 올 것처럼 몸이 피곤했지만, 하루를 버텨냈다. 그리고 지금은 편안한 나의 집 식탁에서 딸과 마주 앉아 나는 글을 쓰고, 딸은 내일 학교에서 시험 볼 영어 단어를 외우고 있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면 그저 쉬려고 했는데, 오늘 아름다운 글을 만나 기록하고 싶어졌다. 흔들리는 아침 버스 안에서 류시화 시인의 <당신을 알기 전에는 시 없이도 잘 지냈습니다>를 읽었다. 사실 류마티스 증세가 예전보다 좋지 않고, 건강에 대한 걱정이 많은 요즘이지만 이상하게도 이럴 때면 오히려 건강 서적을 읽고 싶지 않아진다. 어쩌면 질병에 대한 두려움에서 회피하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수없이 노력한 것들이 물거품처럼 느껴지는 허무함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여기 있으니
봄이 나를 여는 것이 아니라
내가 봄을 열게 되기를
<추분, 류시화>
내가 살아가는 이유에 대해 생각했다. 이렇게 힘든 시간들을 지나는 것도 어쩌면 난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함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드문드문 피기 시작하는 벚꽃들이 분홍색 팝콘처럼 너무 귀엽고 아름다웠다. 자연이 나의 가치와 상관없이 건네주는 선물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금 간 어둠을 별자리들이 이어 붙이고 있으니
고개 들고 그 슬픔 살아 낼 것
나의 너라고 부르며 슬픔의 손잡아 일으켜 줄 것
어느 날 그 슬픔이, 기쁨의 이유가 될 때까지
<슬픔의 무인등대에서, 류시화>
매일 밤 바라보는 아름다운 별자리들에 대한 아름다운 해석에 웃음이 났다. '금 간 어둠을 별자리들이 이어 붙이고 있으니, 고개 들고 그 슬픔 살아낼 것' 내가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 머리 위에는 오늘 밤 아름다운 별자리들이 노래를 부를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따뜻해졌다. 이미 내게 존재했던 것들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마음속에는 들여놓지 않았던 것일까 생각했다.
어떤 시는 흰 글자로 써야만 하기 때문에
어둠이 올 때를 기다릴 것이다.
<지빠귀의 별에서 부르는 노래, 류시화>
다른 사람의 삶의 기준으로 나를 재해석하지 말 것, 나의 불행을 확대 해석하지 말 것, 내게 놓인 상황에 출구가 없다고 낙담하지 말 것. 내가 하는 것들에 대한 결괏값이 지금 당장 보이지 않더라도 절망하지 말 것.
퇴근길에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토요일에 병원에 다녀온다고 했는데, 엄마는 '이미 다녀왔는지, 결과는 어떤지, 손은 계속 아픈지' 궁금해하셨다. 엄마는 오로지 자식 걱정을 하시느라 엄마의 소중한 시간을 내어 놓고 계시는 듯했다. 내가 효도하는 길은, 지금보다 한 뼘이라도 더 건강해지는 것이란 것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찰리 맥커시의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의 말>에 삶은 두렵지만 아름다운 것이며, 가장 심각한 착각은 삶이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가 생각했던 삶의 기준점이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본다. 불완전한 내가 너무나 완벽했던 삶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기에 그것을 지켜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너무나 아름다운 삶을 두려움으로 가득 채우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한다. 오늘도 별이 뜬 밤하늘은 너무나 아름답고, 내 삶은 이렇게 또 하루 흘러간다.
"감당할 수 없는 큰 문제가 닥쳐오면,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것에 집중해.'
<소년과 두더지와 여우의 말, 찰리 맥커시>
내 질병에 대한 무게로 많이 힘들지만, 바로 눈앞에 있는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며 버텨보려 한다. 집 앞 앵두꽃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