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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29. 2022

엄마가 된 우리들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5일째

6월 28일(화) 구름 잔뜩 낀 습습한 날, 비는 안 옴


오늘도 아침 풍경으로 일기를 시작한다. 새벽에 첫째가 나를 찾는 날엔 유독 피곤하다. 첫째 방의 좁은 이불에선 몸을 제대로 펴고 잘 수가 없다. 새우잠을 자다가 여섯 시쯤 다시 안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잠들었다 깨니 8시가 넘었다. (또 지각할 뻔)


장마철이라 첫째는 오늘도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고 등원했다. 노란 뽀로로 장화를 신고 걸어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꼬꼬마다. 늘 자라는 것 같지만 아직 어린아이. 그 쪼그만 입에서 하루가 다르게 생각이 자라고 말이 트인다.


오늘은 둘째를 보러 가는 날이다. 38주 4일 차. 아이가 조금 작은 편이라고 지금까지 병원에 갈 때마다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25주일 땐 24주 크기였는데 30주일 땐 28주, 36주일 땐 33주 크기 더니 지금은 34주 크기라고 한다. 내 몸무게도 30주가 넘어선 뒤로 크게 변화가 없다. 초기 먹덧이 심할 땐 너무 살이 빨리 찐다고, 관리하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제는 선생님이 고기를 매일 먹으라고 볼 때마다 말씀하신다. 오늘은 고기를 하루에 두세 번씩 먹으라고 하셨다.


오늘은 태동검사도 있었다. 30분 동안 누워서 태동이 느껴질 때마다 스위치를 눌러야 하는데, 10분이 지나도 태동이 안 느껴져서 선생님들이 들어와 배를 눌러주고 만져주고 하셨다. 계속 태동을 못 느끼겠어서 물도 한 컵 마시고, 사탕도 한두 알 먹었더니 조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하트야, 너 배가 고팠나 보구나? 병원 진료 후 뭘 먹을까, 음식 사진들을 보자니 하트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한다. 밥 줘! 엄마, 배고파! 밥 줘!


일할 땐 일하느라, 늘 잘 못 챙겨 먹었던 것 같은데, 하트가 작은 게 신경 쓰여 기분이 영 꿀꿀하다. 그래도 기분전환 겸 오늘은 영화를 본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브로커>. 감독도 배우들도 너무 기대를 했는지 영화를 보면서 자꾸 헤드뱅잉을 했다. 자꾸 카톡 확인하게 되고, 시간 확인하게 되고. 오후 4시가 다가오자 첫째 하원 해야 하는데, 맘 졸이며 서둘러 집으로 왔다.


저녁엔 외국에서 사는 친구 Y가 놀러 오기로 돼 있다.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만나 스무 살 초입부터 한창 술 같이 먹던 친구이자, 나랑 생일이 같은 친구다. 대학교를 마치고 와인공부를 한다고 독일로 유학을 가더니, 룩셈부르크 남자를 만나 결혼해서 쭉 룩셈부르크에서 살고 있다. 그리고 나에겐 48개월짜리 아들내미가, Y에겐 31개월짜리 아들내미가 생겼다.


스무 살에 만난 Y와 이십 대 내내 친하게 지냈던 건 아니지만, Y 특유의 세심한 배려로 연락이 끊이지 않고 유지됐다. 그 무리의 다른 친구들과는 붙임이 있었지만, Y 만큼은 잊을만하면 안부를 전해주었다. 생일이 같다는 이유로 매년 3월 16일엔 서로의 생일을 축하해 주었다. 거의 2-3년 만에 아들과 한국에 온 Y는 일정이 매우 바쁜 듯했다. 그 와중에도 내가 둘째 가졌다고 예쁜 여자아기 옷을 사들고 우리 집에 와 준 Y가 참 고마웠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꿈, 진로, 연애에서 육아로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나는 룩셈부르크의 육아휴직 제도가 궁금했고, Y도 연신 아들 자랑을 했다. 룩셈부르크는 출산휴가 기간이 한국보다 2,3달 길었고 전액 100% 급여가 보장된다고 했다. 또한 육아휴직 기간 역시 휴직으로 5개월(기간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는다)을 쓸 경우 100% 급여 보장,  Half day 근무로 1년을 쓸 경우에도 100% 급여가 보장된다고 했다. 어쨌든 보장되는 기간과 급여조건이 우리나라보다 좋아서 그 점이 조금 부러웠다.


Y의 아들 B도 함께 봤으면 더 좋았을 텐데 오랜만에 손주를 만난 외조부모님을 위해, 그리고 연이은 스케줄로 피곤한 B의 컨디션을 고려해 Y만 우리 집에 왔는데, 그 점이 조금 아쉬웠다. 다음엔 우리가 룩셈부르크에 놀러 가기로 하고, 아쉬운 만남을 끝냈다. Y도 본인은 기다리는 아들을 재우러 가봐야 하는 것이다.


언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어디서 언제 만나게 되더라도 이제 우리들의 삶의 중심엔 '아이'라는 새로운 존재들이 떡 하니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축을 빙글빙글 돌아대며 열심히 살아가는 Y와 나, 20년 전엔 대학 신입생, 10년 전엔 사회 초년생이었던 우리들은 이제 명백하게 '엄마'가 되었다. 엄마로서의 삶이 조금 더 버겁고 힘들어도 우리 둘 다 20년 전보다 지금이 더 행복하다는 점이 정말 다행이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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