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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29. 2022

나는 좋은 브로커가 되기로 했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5일째

6월 28일 화요일 흐리고 가끔 비


오늘은 일기에 쓸만한 중요한 일정이 세 가지 있었다. 하나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막바지 산부인과 검진을 한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영화 <브로커> 관람. 마지막은 저녁에 아내 친구가 집에 놀러 온 것이다.


첫 번째. 둘째 출산이 이제 정말 눈앞으로 다가왔다...! 예정일 기준으로는 D-10일이고 우리의 예상으로는 D-6일이다. 둘째는 아직 2.45kg 정도라 작은 편이지만 예정일보다 빨리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다음 주 월요일에 내진을 하면 아마도 하루 이틀 내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실은 첫째도 예정일보다 며칠 먼저, 비교적 작은 2.8kg으로 태어났었다.


사실 아직 애 둘 아빠가 된다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갓난아기를 키웠던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생이여.


두 번째. 영화 <브로커>는 송강호가 칸의 남자가 되면서 대중적인 주목을 받은 영화다. 일본인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찍었다는 점에서 기존 한국영화와 색다른 면이 있었다. 이 감독의 전작 <어느 가족>이나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등을 인상 깊게 봤었고, 주연부터 조연을 넘어 단역까지도 정말 역대급 캐스팅이라 배우들 만으로도 기대감이 부풀었다. 기대가 컸던 탓일까, 영화는 생각보다 밋밋했고 아내는 중간에 잠깐 졸기도 했다.


20살 때 갔던 일본 여행에서 컵라멘을 사 왔었다. 물을 붓다가 표시선을 넘기고 말았다. 라면 맛을 상상하며 먹었는데 라멘이었다. 이 영화가 딱 그 맛이었다...물을 많이 부어 싱거운 컵라멘.


그래도 감독이 전하려는 메시지는 확실히 전달됐다. 이지은이 모든 사람에게 "태어나줘서 고마워"라고 말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모든 사람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작되었다. 어떤 인생을 살건 태어난 것만으로도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모든 사람은 타인의 판단이 아닌 그 자체로 빛난다.


물론 이렇게 몇 가지 의미 있는 메시지와 장면들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지루한 영화임엔 틀림없었다. 둘째가 태어나기 직전의 이 기간 동안 영화를 3개 정도 볼 예정이었고 이미 2개째를 봤다. 금요일에 예매해둔 <헤어질 결심>은 기대를 넘어서는 작품이었으면 좋겠다.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아내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나는 요리부터 시작해 여러 가지 손님맞이를 분주하게 했고 나름대로는 잘 놀다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아무래도 아내가 일기에 자세히 쓸 것 같아서 나는 간략히 기록해도 될 듯싶다. (현재 부부 일기는 뭘 쓰는지 모르는 상태로 각자 따로 매일 쓰고 있다)


사람의 인생이나 삶에는 어느 정도 일정한 '궤도'가 존재한다. 이를테면 20대 초반에는 대학교에 다니고 후반에는 취업을 하며, 30대에는 사회생활과 결혼과 출산을 하는 전체적인 인생의 어떤 큰 흐름이 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궤도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어떤 경우에는 원래 비슷한 궤도에 있다가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아내 친구와의 만남은 비슷한 궤도에 있다면 오랜만에, 혹은 처음 만난 사이라도 좋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점을 느끼게 해 준 시간이었다. 아내의 친구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어서 아내와도 아주 오랜만에 만난 것이었고, 나와는 말 그대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다. 솔직히 그녀는 아직도 내 이름도 모를 것이다. 하지만 우리보다 몇 년 더 먼저 결혼생활을 시작했고, 우리 첫째보다 한 살 어린 아들을 키우는 그녀의 궤도는 우리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아쉽게도 아이들 간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지만 불과 2~3시간 동안 우리 첫째나 나는 그녀와 꽤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었다. 다음번에 한국에 오면 술 한잔 하자며 배웅하던 나의 말은 빈말이나 기약 없는 인사치레는 아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실은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일종의 브로커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에서처럼 돈을 받고 아이를 파는 브로커는 당연히 아니지만, 세상이라는 고객에게 내 아이를 연결해주는 브로커가 바로 부모다. 우리는 뛰어난 브로커가 되고자 같은 궤도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의 노하우를 공유한다. 나는 아이를 위한 좋은 브로커가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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