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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27. 2022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이야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4일째

6월 27일(월) 빠른 구름, 오락가락 비

부부 육아휴직 일지: 68일째 남편 일기부부 육아휴직 일지: 68일째 남편 일기

휴직 후 처음 맞는 월요일 아침. 비 오는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아침이어도 집안이 밝지 않다.

그래도 절로 눈이 떠진다. 어제 꽤 늦게 잠들었는데도 그렇다. 늦게까지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무거웠는데, 아침이 되면 새 날이 밝았다는 이유 만으로 기분이 좋아진다. 모든 것들을 긍정적으로 대하게 된다.


아침에 들어간 아이방은 더웠다. 땀을 뻘뻘 흘리며 자고 있는 첫째. 에어컨을 틀어놓으면 감기에 걸리고, 끄면 후덥지근한 날들이다. 옆에 누워 안아주니 아이가 조금씩 꿈틀대며 일어난다. 엄마가 여유롭게 깨워주는 아침이 좋은지 아침부터 싱글벙글인 첫째다. 그래, 아직 경쟁자 둘째가 태어나지 않은 지금 이 시간을 너도 즐기렴. 웃으면 눈이 없어지는 게 날 닮았는데, 계속 웃으며 엄마와 아빠를 번갈아본다. 아직은 비가 안 오지만 장화를 신고, 우산을 들려 등원을 마쳤다.


우리들 역시 둘째가 태어나기 전 자유로운 이 시간을 즐겨야 한다. 오늘은 엄마를 모시고 청와대에 가는 날이다. 남편이 일주일 전 예약을 해놨다. 점심은 나에게 있는 호텔 뷔페 권을 사용하기로 했다. 엄마는 꽤나 들뜬 것 같다. 우리에겐 청와대만 처음이지만, 엄마에겐 청와대도 호텔 뷔페도 다 처음이다. 여유롭게 출발해서 12시 런치까지 시간이 꽤 남았길래 옥수동과 종로 일대를 돌고 돌아 호텔에 도착했다.

엄마가 맛있게 드셔서 나도 기분 좋게 식사를 했다. 첫째 아이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가장 고생이 많았던 사람은 우리 엄마다. 나나 남편은 부모니까 아이를 돌보고 챙기는 게 당연하지만 엄마에겐 큰 결심과 희생이 필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엄마는 마치 당연히 자기 할 일인 것처럼 첫째가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일하는 딸을 위해 아이를 돌봐주셨다.


내 마음 한구석 늘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 안쓰러움이 상존한다. 더 잘 해 드려야 하는데, 나도 먹고살기 바쁘고 늘 정신없이 산다는 핑계로 예쁜 말, 예쁜 행동을 잘 못한다. 이렇게 가끔가다 나들이나 같이 다니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다.


어쨌든 맛있는 점심을 함께 먹고 우리는 청와대로 향했다. 차는 현대미술관 지하에 대고, 1인 1우산을 지참하여 길을 걷는데 비가 후두둑 쏟아진다. 그래, 비 오는 날의 운치도 좋지. 이런 생각을 하며 청와대 정문을 들어서는데, 무슨 어린이 날에 어린이대공원 온 줄 알았다.


평일 오후 시간에, 청와대에 웬 사람들이 이렇게 바글바글한담. 관광버스를 타고 온 사람들, 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 외국인, 젊은이들 등등... 하루 5천 명의 관람객을 제한한다지만 그래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청와대를 구경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아이 하원 시간에 맞추려면 관람시간이 빠듯하기에 우리는 부지런히 청와대 외관, 본관 내부, 관저 외부, 상춘재 등을 관람하고 내려왔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이 곳도 누군가가 매일 열심히 일하고, 일상을 보내던 공간이다. 목적은 국가에 도움이 되게끔 일을 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이 곳에서 살고, 일한 사람들의 세월이 몇십 년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몇 달 만에 사람 냄새 하나 나지 않는 것이 관광지로 돌변한 것이 정말 신기했다.

계곡과 나무, 한옥과 정원 등 눈 돌아가는 멋진 풍광은 많았지만 이곳에 있었던 사람들이 과연 행복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착착한 마음도 있었다. 구경하기엔 충분한 볼거리였다. 엄마도 좋아했고. 다 행복하자고 하는 일인데, 바쁘게 살다 보면 그걸 잊는다. 나는 그 목적을 잃거나 잊고 싶지 않다. 더 잘살려고 더 이겨보려고 악다구니하는 삶이 지긋지긋하다. 조금 내려놓고 여유롭게, 상처 안 받고 살고 싶다. (너무 패기 없나?)


아이를 재우는 시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문득 아이가 그런다. "엄마, 나는 영어를 잘 못해서 너무너무너무 속상했어." 영어놀이센터에서 만난 원어민 같이 발화를 술술 하는 친구 때문에 그렇다는 걸 이미 잘 알고 있다. 사실 난 좋은 자극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너무너무너무 속상하다니.' 이 다섯 살짜리 꼬맹이에게도 고민이 생긴 걸까?


"엄마도 그런 적 있어. 누구나 처음엔 어려워. 잘하려면 매일 꾸준히 연습하면 돼. 그치만 영어를 잘하든 못하든 넌 정말 소중해. 넌 그냥 멋져."


이 중에 어떤 말이 더 아이에게 오래 기억에 남을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딱 하나는 우리가 뭘 하든 목적은 하나라는 거다. 다 행복해지자고 하는 거다. 그러니까 서로 상처 주지 않고, 더 잘 보듬으며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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