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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n 30. 2022

아빠가 대머리였으면 좋겠어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6일째

6월 29일 수요일 비


오늘은 첫째가 유치원에서 생일파티를 하는 날이다. 사실 원래 진짜 생일은 지난주였는데 유치원에서만 오늘 하는 것이다. 유치원에서는 한 달 생일자를 몰아서 파티를 해서 어떤 달에는 서너 명이 할 때도 있다. 반 친구들이 생일파티 날에 주인공에게 주는 선물을 각자 사서 (3천 원 이하로 제한) 보내준다. 그런데 운 좋게도 이번 달에는 반에서 우리 아이만 혼자 생일이라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됐다.


아침부터 아빠 노릇을 하기 위해 미리 주문해놓은 2층짜리 케이크를 찾아왔다. 유치원 버스시간에 맞춰서 케이크를 보내야만 했고, 비를 맞으면서 자전거를 타고 바구니에 안 들어가는 케이크를 한 손에 들고 한 손으로 운전하는 나를 누군가 봤다면 저 사람은 아침부터 뭐하나 했을 것 같다. 어쨌든 무사히 케이크 배달을 마치고 뿌듯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유치원 친구들에게 잔뜩 선물을 받아올 것을 생각하니 나까지 설레는 기분이었다.


그러고는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원래 휴직을 하면 머리를 기를 생각이었다. 아주 많이. 거의 단발머리 수준으로. 아내와 가족들은 더운데 뭔 짓이냐고 반대했지만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었다. 머리를 기르기로 결심을 하고 있을 때 첫째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아빠 머리 기르면 어떨 것 같애? 아주 많이 기르면?"

"여자 같을 것 같애 ㅋㅋ"

"아니 그렇게 여자처럼 기르는 게 아니고~ 멋있게."

"이상할 것 같애 ㅋㅋ"

아마도 첫째는 아빠 얼굴에 엄마의 머리스타일을 상상한 것 같았다.


어쨌든 그 이후에도 머리를 기르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었지만, 며칠 전에 마음을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남자 연예인들 긴 머리 시절을 모아놓은 블로그였는데, 강동원이고 원빈이고 소지섭이고 할 것 없이 짧은 머리보다 별로였다. 아 이런 사람들도 이런데... 내가 뭔 짓을 하는 건가. 그러고 있는데 첫째가 나를 보면서 갑자기 그러는 거다.


"아빠가 대머리였으면 좋겠어 ㅋㅋ"


아니 얘가 30대 후반에도 머리숱이 많아서 자랑스러운 아빠한테 뭔 소리를. 아마 머리 기르지 말라는 뜻이라고 대충 알아서 해석했다. 그날 저녁 바로 미용실 예약을 잡았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고 거의 몇 달 동안 길렀던 머리를 자르는 김에 시원하게 확 쳐버렸다. 아내도 휴직한 남편이 동네에 돌아다니는데 멀끔해 보여야지 하면서 좋아했다. 아무래도 이번 생에 장발 남자에 도전해볼 날이 과연 다시 올까 싶다.


오후에는 둘째 출산 가방을 싸기 위한 물건 정리와 세탁을 했다. 한번 해봤던 건데도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뭐가 필요한지도 헷갈린다. 그래도 여자아기용 옷들과 용품들을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러다가 첫째가 유치원 하원할 시간에 아내와 같이 마중을 나갔다. 나는 선물이 가득 들은 커다란 쇼핑백을 받아 어깨에 들쳐맸고, 아이는 놀이터에 들릴 생각도 없이 엄마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선물을 빨리 뜯어보고 싶어서였다. 집에 오자마자 거의 30분 동안 선물 언박싱을 했다. 20명도 넘는 아이들이 각자 하나씩 다 선물을 주니까 정말 다양하고 많았다. 우리가 3~5월까지 줬던 선물이 너무 초라했던 것 같아서 후회도 됐다.


그러고 보면, 내가 장면으로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생일잔치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지 3학년인지 헷갈리는데 아마 2학년이었을 것 같다. 엄마가 생일잔치를 해줄 테니 친구들을 초대하라고 해서 들떴던 나는 초대장까지 여러 장 만들어서 거의 반 전체에 뿌리고 다녔고 같은 반이 아닌 친구들도 잔뜩 초대했다. 생일날 우리 집엔 현관이 신발로 가득 차서 발 디딜 틈이 없었고, 그 와중에도 계속 친구들이 와서 아예 현관문을 열어놨다. 엄마는 대체 몇 명을 부른 거냐며 음식을 끝도 없이 만들고 주문했고, 나는 들어오는 친구들이 하나씩 건네주는 선물을 한편에 쌓아 올렸다.


다섯 살의 우리 아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오늘을 기억할까. 사실 나는 다섯 살 때의 기억은 거의 하나도 나지 않는다. 술 때문일까.


기억해주면 좋을 텐데. 다섯 살 때 아빠가 육아휴직을 해서 집에 있는 동안 참 즐겁고 행복하고 좋았다고. 강렬한 기억이 오래 남는 법이니까, 한번 머리를 밀어버리고 대머리가 된 아빠를 보여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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