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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3. 2022

아내 이야기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61일째

8월 23일 화요일 비 온 뒤 선선


어제와 오늘 브런치북을 5권째 발행하면서 예전에 우리가 써서 올린 것들을 다시 읽어보게 됐다. 전에 썼던 일기들 중에서 아내가 쓴 4부 12화 <남편 이야기>를 다시 보니까 내가 이 글에 답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예전에 쓰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날에 다른 쓸 글감이 있어서 다음으로 미뤘던 것 같다.


아내가 했던 것처럼 <결혼 이야기>에 나왔던 서로의 장점 리스트 쓰기를 다시 한다면 이렇게 몇 가지를 쓸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아내는 신중합니다. 돌다리를 두드려보고 건너다가 돌다리를 부실 수도 있습니다.


아내는 내가 무언가를 제안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놓이면 발생 가능한 모든 리스크를 점검한다.

"이럴 수도 있잖아? 저럴 수도 있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지?"


사실 나는 무언가를 결정함에 있어서 직관적인 타입이라 그런 신중함이 늘 답답하다. 그리고 그게 전에 내가 말한 적이 있거나, 상의해서 어느 정도 결론이 정리가 되어 있는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전에 이미 이렇게 하기로 다 협의했는데 이제 와서 도대체 왜 또 이러지? 이해가 안 간다.


그러나 막상 지나고 나면 결국 아내의 신중함으로 시기를 미루거나, 결정을 유보했던 것이 더 바람직한 결과를 만드는 적이 꽤 많다. 물론 내가 직관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한 것이 맞는 것도 있지만, 중요한 문제일수록 신중해서 나쁠 것이 없는 건 사실이다. 나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새로운 일을 벌이는 데다, 지나치게 모든 일에 '긍정 회로'를 풀가동하는 타입이다. 만약 아내의 신중함이 '브레이크'를 걸지 않았더라면 분명 오작동한 긍정 회로로 우리 가족은 선로를 이탈했을 것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우리 아내는 장점이 참 많다.


우리 아내는 책임감이 강합니다. 회사를 옮기면 새벽 5시에 첫차 타고 출근합니다.


아내는 일단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경향이 강하다. 특히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잘 못한다거나 기대 이하라며 실망하는 눈초리를 보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본인이 생각하기에 잘 모르거나 미숙한 것을 하게 된다면 남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도 몇 배의 노력을 한다. 실제로 예전에 회사를 옮겨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적응해야 하는 시기에는 새벽 5시에 지하철 첫 차 타고 출근하기도 했다. 아무도 그러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나는 그게 너무 과하고 오버라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그런 책임감이 있었기에 아내는 지금껏 사회생활이 잘 풀린 것 같다.


이런 면모는 집에서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사실 회사랑 전혀 다르게 허당에 사고뭉치인 캐릭터인데, 본인이 앞으로 잘해보겠다고 생각했거나 자기가 맡아야 하는 거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된다.


"내가 엄마니까 이건 내가 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이렇게 말하면 나로서는 반박 불가고 한편으로는 신뢰가 간다. 요즘은 첫째가 엄마가 하원 시키는 걸 좋아할 것 같다고 매일 하원 담당을 자청하고 있고, 휴직한 뒤로 스스로 결심했던 요리도 더 자주 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중이다. (사실 원래 요리는 거의 내 담당이었다)


우리 아내는 늘 부족한 면을 채우려 합니다. 개선점을 찾아내서 고치려 하는 타입입니다.


이런 점은 나와는 정말 정 반대의 성향이다. 쉽게 말해서 나는 '컵에 물이 반이나 있네!'라고 기뻐한다면 아내는 '컵에 물이 반 밖에 없네!' 라며 그걸 채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실은 이건 우리 부부싸움의 가장 흔한 불씨이기도 하다. 내가 봤을 땐 나나 우리 가족은 아주 풍요롭고 화목하고 딱히 어딜 문제 삼을 구석이 별로 없다. 부모님들과의 사이도 원만하고, 아이들도 귀엽고 똑똑하게 잘 크고 있다. 나 역시 스스로 꽤 괜찮은 남편이자 아빠라고 생각하고 게으름 피우지 않고 '갓생'을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내는 늘 부족한 점을 말한다.


사실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다. 그러므로 비교적 잘 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스트레스를 줄이는 방법이다. 내가 가진 것을 보면서 나는 이런 것도 있고 저런 것도 있으니까 참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게 낫지 '왜 난 저게 없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불행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부족한 면을 보면서 개선점을 찾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발전할 수 없다. 완벽하지 않은 것을 보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바로 삶의 동력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내를 보면 노래 <오르막길> 가사가 떠오른다. 오르막길은 힘들지만, 충분히 올라가야만 좋은 경치도 보고 능선을 타고 편한 길을 걸을 수 있다. 그리고 나중에 더 길고 편한 내리막길을 걸을 수 있다. 우리는 30대 젊은 부부다. 애들도 어리다. 지금은 더 올라가야 할 때다.


한걸음 이제 한걸음일  아득한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줘

그러면  견디겠어

사랑해   함께 가는 그대여

굳이 고된 나를 택한 그대여 

가끔 바람이  때만   풍경을 바라봐

올라온 만큼 아름다운 우리 

기억해 혹시 우리  놓쳐도

절대 당황하고 헤매지 마요

 이상 오를  없는 그곳은 넓지 않아서

우린 결국엔 만나 크게 소리쳐

사랑해요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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