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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28. 2022

잔인한 가을 1편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64일째 

8월 26일(금) 화창한 가을 날씨 


금요일의 일기를 일요일에 쓴다. 첫째의 열감기, 남편의 급체(로 나중에 밝혀졌지만 처음엔 이름모를 고열과 복통)로 정신없는 하루가 시작됐었다. 유치원에 보낼 수 있을까 살짝 기대했지만 첫째의 열은 여전했다. 남편도 속이 안좋고 열이 나서 힘들어했다. 


집에 알 수 없는 바이러스(?) 혹은 박테리아(?)로 남편과 첫째아들이 아파하고, 안방엔 영문 모르는 50일 아기가 누워서 칭얼대는 가운데 난 원더우먼이 되어야만 했다. 우선 둘을 위해 점심으로 죽을 배달시켰다. 점심을 해결한 뒤 병자 둘은 첫째방에서 강제 낮잠을 자기로 했다. 


난 안방에 둘째와 격리됐다. 둘째를 돌보며 남편과 첫째의 차도가 있길 바랐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결국 남편은 더 심해졌고 낮에 갔던 병원에 가서 소견서를 받아온 뒤 큰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병자 둘은 알아서 병원에 가게 하기가 마음이 쓰여 내가 따라 가기 위해 우리 부모님께 도움을 구했다. 할머니는 첫째 손주와 사위가 아프단 소리에 바로 와주셨다. 


남편은 병원에 다녀왔지만 큰 병원까진 안 가는게 좋겠다는 의사의 소견을 받아왔다. 아빠가 손따는 침을 갖고 오셔서 남편의 열손가락을 땄다. (그 모습이 정말 웃겼다. 사위 손 따라고 체근하는 아빠와 아파하며 손 따는 남편의 모습이 귀여웠다) 검붉은 피가 나오고 나니 속이 쑥 내려가고 땀이 쭉 나는 것 같다며 "역시 민간요법이 최고"라고 했다. 첫째는 웃통을 까고 젖은 수건으로 몸을 닦아 주었더니 점점 활기를 되찾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우리집엔 역병의 기운이 가득한 것 같아 모두가 각자 격리를 하느니 난 둘째와 우리 부모님 댁으로 피신을 가는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두집살림이 시작되었다. 


둘째를 슬링에 태우고 온갖 아기 짐과 역류방지쿠션까지 챙겨서 나와 둘째, 외할머니, 외할버지가 대동단결하여 할머니네 집으로 이동했다. 할머니댁에 온 둘째는 낯설어하며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지만, 금새 적응하였다. 그리고 할머니 집에서 첫 통잠을 자는 기록을 세우게 된다. 난 오랜만에 엄마 집에 와서 잠에 들며 엄마 밥을 먹고 편히 쉴 수 있었다. 남편과 첫째가 언릉 쾌차하길 빌며 난 그렇게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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