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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02. 2022

자꾸 심술이 나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9일째

7월 2일(토) 더럽게 더운 날 


아침 7시. 눈이 저절로 떠진다. 늦잠 자고 싶어도 이제 몸이 안 따라준다. 40도의 물 한잔은 나의 아침 루틴이다. 가글 후 한잔 혹은 두 잔의 뜨거운 물을 마신다. 그럼 몸의 노폐물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화장실도 잘 간다. 임신 내내 변비 한번 없었던 비법) 그렇게 물 한잔 마시면서 예전엔 일을 했고, 이젠 그냥 여유롭게 시간을 보낸다.


어제 핸드폰을 바꿨다. 아이폰 7에서 13 미니로 갈아탔다. 아이폰 7은 만 3년 4개월 정도를 쓴 것 같다. 그 당시에 아이폰 7은 이미 지난 기종이었기에 싸게 갈아탔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기계값 없이 폰을 바꿨다. 남편이나 나나 기계 욕심이 별로 없다. IOS 지원이 조만간 7은 되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들었고, 하트가 태어나면 또 어마어마하게 사진과 영상을 찍어댈 거니까 인물사진 모드가 가능한 기계로 바꾸고 싶었다. 어제 <헤어질 결심>에 아이폰이 어마무시하게 나와서인지, 새 아이폰을 가지고 열심히 놀았다. 나에겐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이는 8시가 넘어서, 남편은 9시가 넘어서 일어났다. 다들 아침잠이 많다. 내가 일찍 일어났는데 다른 식구들이 늦게 일어나면 사실 굉장히 꿀이다. 혼자 놀 수 있는 자유시간이다. 그런데 뭔가 거슬린다. 짜증이 난다. 부엌에 가보니 어제저녁 먹은 설거지가 그대로 있다. 보통 저녁 설거지는 남편이 처리하는데, 어제 설거지를 안 하고 늦게까지 자기 할 일만 하다 늦은 시간에 잔 거다.


부부가 같이 육아휴직을 한다는 건 인력이 두배가 되는 건데(내가 산후조리 이후 내 몸상태에 자신이 없으므로 1.5배라고 해야 하나?) 애써 고용한 아르바이트생이 일처리를 제대로 안 한 것 같이 기분이 별로 안 좋다. (결국 이 설거지는 오늘 저녁까지 먹은 뒤 남편이 식기세척기로 처리했다, 중간중간 너무 해버리고 싶었지만 나도 끝까지 하지 않았다.) 그래도 뭐, 설거지 좀 쌓이면 어때. 내가 해야 할 의무도 없고, 남편이 자기가 할 거니 내버려 두라는 말을 남기고 아이와 놀러 나갔기에 나는 그냥 쉬면 된다. 그래도 다 마음에 안 든다.


아이도 그렇다. 오늘 점심땐 절친네 집에서 30분만 놀기로 했는데, 미리 신신당부를 했는데도 막상 갈 시간이 되자 울고불고 떼를 쓴다. 그래서 30분을 더 연장해 놀았는데도 지금 놀고 있는 놀이를 끝낼 수가 없다, 다음에 어떻게 그대로 이어서 하냐, 놀던 걸 치우지 말아라 등 말도 안 되는 억지와 떼를 부렸다. 남의 집에서 아이와 실랑이를 하면서 백번도 넘게 샤우팅을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억지로 애를 타일러 데리고 나왔다.


그 후에 집에 와서 1차 샤우팅을 했다. (이때 남편도 설거지 안 하고 밥도 안 해놓았다고 같이 뒤집어썼다) 그렇게 샤우팅을 하고 나니 둘이 알아서 눈치를 살살 본다. 점심은 외식을 하고 저녁엔 내가 밥상을 차려주었는데, 밥 먹으라는 소리를 세 번째 했는데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이 두 남자들 때문에 2차 샤우팅을 했다. 평상시의 나였으면 그냥 다시 반복해 말했을 텐데 오늘은 너무너무 화가 났다. 분노조절장애라고 하는 게 맞겠다. 정말 화가 참아지지 않는다.


더워서 더 그렇다. 내 안에 곧 있으면 태어날 아이의 체온과 무게가 나를 짓누르고, 냉방병에 걸려서 자주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내 몸상태 때문에도 하루 종일 너무 덥다. 그냥 넘어갈 일도 자꾸 화가 난다. 그러니까 알아서 좀 잘해주면 좋겠는데, 둘 다 내 말을 너무 안 듣는다. (말을 듣는다, 안 듣는다의 기준은 매일매일이 굉장히 주관적이지만, 오늘따라 유독 그렇게 느껴졌다)


속상하다. 이제 곧 난 떠날 건데, 자꾸 첫째 아이에게 화를 내는 나 자신이 너무 못마땅하고 싫다. 남편도 뭐라 한다. 이건 짜증이지 훈육이 아니라고. 나도 안다. 근데 내가 너무 힘들다고. 그러니까 알아서 좀 잘들해봐라 이것들아. 물론 우리 남편이 크게 잘못한 건 없다. 그냥 설거지 좀 늦게 하고, 아침에 늦잠 좀 잤을 뿐이다. 그치만 그냥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내 몸이 힘들 때면 어김없이 남편이 그냥 꼴보기가 싫다.


꼴보기 싫다는 말은 대체 누가 지었는지 정말 한글은 위대하다. 그야말로 그 '꼴' 자체가 보기가 싫다. 남편의 꼴이 보기 싫다. 이 말이 딱이다. 예전에 <산후조리원>인가 하는 드라마에서, 아내가 아이를 낳은 후엔 남편이 곁에서 튀는 색깔의 옷도 입어선 안된다는 남편 대사가 딱 내 마음을 후벼 팠다. 벽지와 동일한 보호색의 옷을 입고 눈에 안 띄게 우렁각시처럼 궂은일을 하면서 부르면 달려오고, 그래야 한다는 거다. 그렇게 해도 고운 말이 안 나온다. 왜냐면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너덜너덜해진 내 몸이 너무 주체가 안되게 힘들고 아파서 그렇다.


내 마음이 이지경인데, 하루 종일 한집에서 열심히 돌아다니며 그 꼴을 뻔질나게 나에게 보일 내 남편이 앞으로 얼마나 더 미워질지 내 마음을 나도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도 밥도 잘하고 첫째랑도 잘 놀고 둘째 키운다고 육아휴직까지 낸 남편인데, 너무 미워하면 안 될 텐데 큰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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