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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04. 2022

뭐든지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0일째

7월 3일 일요일 더움


나는 지금 LG트윈스 레전드 박용택의 사인을 받으러 잠실야구장에 갈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밤 12시가 넘었는데 무슨 사인회냐고 하겠지만 정말이다. 오늘 저녁에 열린 야구경기 후에 박용택의 은퇴식이 있었고, 행사 후에 무제한 팬사인회가 예정되어 있었다. 집에서 TV로 보다가 아까 10시쯤 갔더니 줄이 몇백 미터는 늘어서서 최소 3시간 정도는 기다릴 것 같아서 다시 돌아왔다. 좀 이따 끝나갈 때쯤 다시 갈 계획이다.


사실 나는 뭘 해도 굉장히 몰입하고 최선을 다하는 스타일인 것 같다. 야구팬을 해도 그렇고, 유튜브를 운영해도, 이 브런치 일기도 그렇다. 일단 하기 시작하면 제대로 해야 직성이 풀려서 그렇지만 반대로 말하면 좀 피곤한 스타일이다. 그래서 아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그렇게까지 해야 되냐"는 얘기도 종종 듣곤 한다.


오늘 찍고 온 흑백 가족사진도 이런 내 성향의 영향이다. 우리 가족은 첫째 두 돌 때부터 3년째 연례행사로 같은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전에 네이버에서 우연히 20여 년간 아빠와 아들이 매년 찍은 사진을 연대기처럼 모아놓은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그렇게 멋있고 감동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도 꼭 그렇게 해보고 싶었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장담은 못하지만 최소한 20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셈이다. 그래도 다행히 아기가 곧 나올 수도 있는 만삭의 아내나, 더위로 땀띠까지 난 첫째도 흔쾌히 함께해줬다.


그렇다 보니 나는 여러 가지로 루틴이 많다. 현시점으로만 따져봐도 매일 브런치에 일기를 올리고, 월요일과 우천 취소를 제외하면 매일 야구 중계를 듣고, 매주 유튜브 한 편을 올린다. 매년 가족사진을 찍는 것 외에도 매년 있는 각종 기념일들도 꽤나 알차게 챙기는 편이다. 물론 결혼 직후보다는 좀 힘을 빼긴 했다. (그래도 지난 결혼기념일은 5주년이라 큰맘 먹고 루이비통에 돈을 좀 썼다)


다만 내 성향이 이렇다고 다른 사람들도 나랑 똑같이 해줄 순 없다. 박용택 선수는 내가 2000장 한정 판매하는 15만 원짜리 은퇴 기념 유니폼도 사줬지만 내가 누군지도 모른다. 우리 아들도, 내 아내도 내가 그들에게 해주거나 마음을 쓰는 만큼 나한테 똑같이 해줄 순 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이 언제나 나의 숙제다. 다만 내가 갖는 최소한의 기대는 나한테 주는 것이 0은 아니었으면 하는 정도다. 나는 받는 것의 10배, 100배의 정을 주고 보답하는 사람이지만 0에는 10을 곱하든 100을 곱하든 0이기 때문이다.


박용택 선수는 늘 모든 것이 '팬덕택'이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팬 여러분'에 내가 포함되어 있으니 그가 나에게 주는 것이 0은 아닌 셈이다. 나는 그런 그가 밤새 팬사인회를 하고 있는 잠실야구장으로 다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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