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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04. 2022

모두 다 꽃이야

우리들의 해방일지: 아내 10일째

7월 3일(일) 폭염


와 날씨가 너무 덥다. 내가 임산부라 더운 건지, 정말 요새 더운 건지 모르겠지만 태어나서 이런 더위는 처음 느껴보는 것 같다. 땀을 잘 안 흘리는 체질의 내가 가만히만 있어도 인중에서 땀이 난다. 아무래도 밖에서 노는 것은 불가능해 보여 급히 키즈카페를 예약했다.


키즈카페에 도착하자마자 아이가 귀를 막았다. 첫째는 소리에 예민하다. 입구 바로 앞의 기구에서 끼익 끼익 쇠 소리가 좀 났는데 그게 굉장히 아이에게 거슬렸나 보다. "괜찮아, 저쪽으로 가 보자." 아이를 데리고 시설 여기저기를 구경하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나는 아이를 남편에게 맡기고 매점으로 직행해 라면을 먹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라면을 먹으며 멀리서 아이를 보자니 아빠랑 재미나게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저 아빠에게 맡기고 나는 핸드폰이나 하고 있었겠지만, 오늘은 아이 옆에 최대한 따라다니고 싶었다. 아마 며칠 후면 나는 병원에 있을 테니 조금이라도 더 첫째와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사진도 최대한 많이 찍어주고 싶었다. 이어지는 난타체험, 쿠키 만들기도 같이 하면 좋았겠지만 난 쿠키 만들기만 같이 했다.


2시간의 놀이가 끝난 뒤 키즈카페의 햄야채 볶음밥으로 점심을 주었는데, 첫째는 잘 먹으려 하지 않고 자꾸 간식만 찾았다. 배고프다고 말은 하는데 밥을 주면 힘들다, 먹기 싫다고 하고 간식을 찾는 습관은 언제쯤 고쳐질까. ㅠㅠ 잘 먹던 것도 안 먹고 안 먹던 것은 더 안 먹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반 협박으로 겨우겨우 밥을 주고는 가족사진관으로 이동했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먹으라고 사정사정할 필요 없었는데, 밥을 빌미로 혹은 밥을 볼모로 아이와 내가 딜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휴, 내일부턴 그러지 말아야지.


그다음 스케줄은 내년 정기적으로 촬영하는 가족사진을 찍으러 갔다. 아이가 두 돌 때부터 흑백사진을 찍고 있다. 아이는 생각보다 잘 촬영했고 확실히 작년이나 재작년 때와는 다르게 듬직하게 잘 찍었다. 매년 남기는 흑백사진 속의 우리 모습을 보면 세월의 흐름이 느껴진다. 고작 3년이지만 나는 왠지 조금씩 노화하고, 아이는 무럭무럭 자란다. 앞으로의 우리는 어떻게 나이를 먹을까.


요새 아이는 유치원 동요발표회 연습에 한창이다. 첫째네 반은 <모두 다 꽃이야>라는 노래를 부른다. 노래를 불러달라고 하면 아이가 가끔 불러주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참 편안하고 좋아진다. 이 동요발표회는 7월 7일에 있을 예정인데 난 그때쯤 무얼 하고 있을까. 첫째 목소리가 귀에 맴돈다. "엄마도 꽃이야, 아빠도 꽃이야. 하트도 꽃이야."


"아무데나 피어도

생긴대로 피어도

이름없이 피어도

모두 다 꽃이야.

봄에 피어도 꽃이고

여름에 피어도 꽃이고

몰래 피어도 꽃이고

모두 다 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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