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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05. 2022

마침내 폭풍전야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1일째

7월 4일 월요일 더움


오늘은 아침 일찍 둘째 마지막 검진을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둘째의 출산 예정일은 7월 8일이다. 이 예정일이란 임신이 된 시점부터 280일을 대략적으로 계산한 것일 뿐 정확한 날짜는 아니다. 둘째의 출산은 대개 예정일보다 좀 빠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고, 원래 이 휴직 계획을 세울 때는 예정일보다 일주일 정도 빠른 7월 1일 정도에 태어날 것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둘째의 성장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은 편이었고, 불과 예정일을 4일 앞둔 오늘까지도 체중이 2.6kg이 되지 않았다. 물론 담당 선생님께서는 2.5kg가 넘었으니 낳는데 문제없고 인큐베이터에도 들어갈 필요 없으니 걱정할 건 없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 주변 어른들에게도 아기는 작게 낳아서 크게 키우는 거라는 속설을 여러 번 들었다. 실은 첫째도 남아치곤 작은 2.8kg으로 낳았던지라 별로 걱정은 되지 않았다.


담당 선생님은 예정일을 넘기기보다는 그전에 유도분만을 하기를 권했다. 우리도 비슷한 생각이었고, 이미 6월 23일부터 휴직을 시작한지라 출산 전에 노는 기간만 계속 길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리고 담당 선생님의 진료 스케줄이 월, 화, 금 이라는 이유도 있었다. 금요일까지 기다려서 낳으면 내가 병원에 있는 2박 3일이 주말이라 첫째가 유치원에 가지 않으므로 부모님들이 풀타임으로 아이를 봐야 한다.


이처럼 거의 대부분의 아기들이 그렇듯이 우리 둘째도 결국 자발적으로 세상 밖으로 나올 때를 기다렸다가 운명적인 만남을 하기보다는 어른들의 사정에 의해 생일이 결정되게 되었다. 물론 그것 또한 운명일지도.


집에서 오후에 아내는 시간이 날 때마다 아기가 내려오고 자연분만에 도움이 된다는 홈트레이닝 영상을 보면서 동작을 따라 했다. 마침내 출정을 앞둔 이순신 장군처럼 폭풍전야를 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첫째에게 아주 자세하고 합리적으로 이제 내일부터 무려 17일간이나 엄마와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해주었다. 의외로 큰 거부반응은 없었다. 엄마 뱃속에 동생 아기가 자라고 있다는 것은 이미 작년부터 알고 있었고, 아기를 낳으러 가면 엄마가 힘들어서 쉬다가 와야 한다는 것도 몇 번 말한 적이 있었다. 사실 이때를 대비해 우리는 아기가 태어나면 엄마 아빠가 회사를 안 가고 집에서 매일 같이 지낼 것이라는 점을 강조해왔기도 했다. 내일부터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주 오실 거라고 하니까 오히려 좋아할 정도였다. 물론 그래도 엄마가 보고 싶으면 전화도 하고 영상통화도 하겠다는 말은 덧붙였다. 역시 문명의 이기를 빨리 습득하고 잘 활용하는 능력은 행복과 비례하는 것 같다.


그래도 자고 일어나면 이제 엄마가 없을 거라고 하니까 아이는 평소보다 1시간은 더 늦게 잠이 들었다. 오늘이 아쉬워 잠 못 드는 아이에게 나는 이런 노래를 불러주었다.


이 밤이 지나면 우린

또다시 헤어져야 하는데

아무런 말없이 이대로

그댈 떠나보내야만 하나


내일 아침 7시까지 병원에 가야 해서 아내는 오늘 일기는 쓰지 못할 것 같다.

이 밤이 지나면 나는 두 아이의 아빠가 된다.

우리 딸이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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