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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13. 2022

상대적 행복감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19일째

7월 12일 화요일 흐림


오랜만에 더위가 잠시 사그라들었던 날이었다. 어김없이 유치원 등원으로 하루를 시작. 오늘은 유치원에서 물총 싸움과 물놀이가 예정되어 있었다. 수건이며 여벌 옷이며 평소보다 준비물이 몇 배는 더 많았지만 어제저녁에 미리 다 챙겨두고 이름표도 붙여놨기에 빠트리는 물건 없이 보낼 수 있었다.


물총은 어제 미리 오투라는 음료수 페트병을 보내 두었다. 유아용 물총보다는 이게 더 쏘기도 쉽고 강력하다. 사실 나는 물총 싸움도 이왕이면 아이가 꿀리지 않고 이기고 오길 바랐고, 며칠 전부터 샤워할 때 이걸로 물 쏘는 방법을 알려주며 같이 물총놀이를 했다. 고작 애들 물총놀이에 나만 이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경쟁적으로 무언가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이왕이면 이기는 게 좋다. 많은 부모들이 우리 아이가 지고 우는 것보다는 이기고 패자에게 위로를 건네는 사람이 되기를 바랄 것이다. 아 물론 물총 놀이에 승패는 없지만.


<꾸뻬 씨의 행복여행>에서는 행복의 가장 큰 적이 경쟁심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남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무인도에 혼자 표류해 배구공을 친구 삼아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남들과 비교하고 경쟁하는 것을 억지로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치열하고 대단한 경쟁의식으로 남을 이기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좋다는 뜻은 아니다. 항상 뛰는 놈 위엔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상대적인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느냐인 것 같다. 내가 불특정 누군가와 비교해 괜찮은 점을 찾고, 나 정도면 행복하다는 부분을 자주 발견하는 거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오늘 오후에 나는 자전거를 타고 키즈 수영장 두 곳에 방문해 상담을 받았다. 물론 이것도 나름 중요한 스케줄이긴 했다. 하지만 어쨌건 평일 오후 3시에, 바쁘게 일하고 있거나 전화통화를 하며 세상 제일 바쁜 사람처럼 황급히 어딘가로 오가며, 혹은 책가방을 메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한가롭게 음악을 들으며 키즈 수영장 투어를 하는 나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영혼이었다.


첫째 하원 시간에 아이를 맞이하는데 다행히 표정도 밝고 신이 나 있었다. 아내는 아이가 다른 애들은 물총인데 자기는 페트병이라고 시무룩했을까 봐 염려했었지만 그렇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놀이터에서 물총놀이 2차전이 펼쳐졌다. 아이들은 그냥 물을 한 방울만 쏘고 도망가도 마냥 즐거워했다. 여기에 승패는 없었다.


그러는 사이 유치원에서 알림장 앨범에 오늘 있었던 물놀이 사진을 올렸다. 참고로 요즘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은 '키즈노트'라는 앱을 통해 부모님들과 공지사항이나 알림장을 주고받으며 소통하고, 사진도 이곳에 올린다. 단체사진을 보니 왜소한 줄 알았던 우리 아이의 키는 반에서 상위권이었다. 매일 같이 노는 애들이 유독 키나 덩치가 큰 애들이 많았던 것뿐이었다. 상대적 박탈감이 상대적 행복감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중요한 건 경쟁에서 앞서고 있다고 스스로 '느끼는'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내면이나 일상에서 남들과 무관하게 얻는 소소한 행복도 나는 안다. 경쟁심을 버리면 더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경쟁심을 버릴 수 없는 존재이기에, 그 경쟁심의 결과로 상대적 자존감을 느낄 때 사람은 더 행복한 것 같다. 솔직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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