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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Jul 29. 2022

아빠 친구 아들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35일째

7월 28일 목요일 예열된 에어프라이어같은 날씨


엄마 친구 아들, 소위 '엄친아'라는 말은 굉장히 모든 면에서 잘나고 부러움의 대상인 사람을 뜻한다. 오늘 나는 그 단어가 왜 그런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요즘 효율적인 역할분담이 되고 있다. 전에는 첫째 한 명에 부모 두 명이 다 달라붙어 있는 시간도 상당히 많았다. 일이든 뭐든 가장 효율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내 입장에서는 약간 비효율적인 면이 있었다. 예를 들면 저녁 먹고 노는 시간에는 한 명은 놀아주고 한 명은 집안일이나 다른 할 일을 한다거나, 책 읽어주고 재우는 시간에는 나는 그냥 유튜브 편집을 하면 더 좋을 것 같았다. 물론 엄마 아빠가 둘 다 함께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으므로 시간 낭비까진 아니지만 인력이 투입되는 효율성 면에서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데 둘째가 생긴 뒤로는 둘 다 한 명한테 달라붙어 있을 수가 없어졌다. 자연스럽게 1대 1 케어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무조건 첫째 담당, 둘째 담당이 나눠진 것은 아니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인원이 투입된다. 때론 한 명이 완전히 방전되어 충전을 하는 동안 한 명이 조금 무리해서라도 두 명을 다 돌보기도 한다.


오늘의 경우는 내가 첫째 담당, 아내가 둘째 담당이 되었다. 내 고등학교 친구 중에 6살과 1살 아들이 있는 집에 놀러 가기로 한 것. 6살 아이와 우리 첫째는 한 살 차이지만 비교적 수준이 맞아서 전에 만났을 때도 밤 12시까지 잠도 안 자고 놀 정도였다. 이번에도 며칠 전부터 오늘 그 형아네 집에 간다는 것을 일러두었고 그때마다 첫째도 기대에 찬 반응을 보였다. 다만 친구네 집은 차로 30~40분 이동해야 해서 가족이 다같이 갈 수는 없고 내가 첫째만 데리고 가고 아내는 집에서 둘째를 돌보게 된 것이다.


점심 먹고 출발해 친구네 집에 도착한 건 2시 반쯤. 낯선 장소에 가면 수줍음을 타는 첫째의 기질에 따라 처음에 들어가서 한동안 녀석은 아빠를 자꾸 찾거나 소심한 모습을 보였다. 그렇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도 아닌지라 이내 금방 적응했고 어느새 둘은 누가 봐도 1인용 같은 텐트에 둘이 들어가서 놀 정도로 불편함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아이들이 잘 놀게 되자 나도 친구 부부와의 이야기에 열중할 수 있었다. 거기서 4시간이나 있으면서 배달시킨 피자와 치킨으로 저녁까지 뚝딱 해결했다.


우리처럼 비슷한 또래 애들을 키우며 서로 고생하는 처지에는 육아 얘기만 해도 공감대와 동병상련을 느끼고 대화 소재도 좀처럼 끊어지지 않는다. 다만 당연하게도 서로 자기 자식 얘기를 주로 할 수밖에 없다. 서로 자랑도 하고 하소연도 한다. 이렇게 친구 자식을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부모는 자연스럽게 내 자녀와 비교하게 된다. 어차피 완벽한 애는 없으므로 대개는 어떤 면은 누가 더 낫고 어떤 면은 부족하기 마련이다. 다만 자녀에게는 부족한 면을 스스로 깨닫게 하고 자극하고 싶은 일종의 샘플이 된다. 그런 속마음이 알게 모르게 표출되면서 형상화된 것들의 집합체가 바로 '엄친아'인 것이다.


나도 오늘 그런 생각을 몇 번 한 것이 사실이다. 누구는 이런 것도 잘 먹더라, 누구는 엄마 말도 잘 듣더라, 누구는 말도 애기처럼 안 하고 아기처럼 비틀대지 않더라... 그러나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 지는 순간이 있더라도 참으려고 한다. 사실 비교되는 건 우리 아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친구 아들 방에는 장난감이 우리 집의 10배는 많은 것 같았다. 그렇다고 첫째가 나한테 누구 아빤 이런 것도 사줬더라라고 하진 않았다. (물론 앞으로 할 수도 있지만 나도 그러면 더 받아들이지 않을 테니)


만약 친구 아들과 비교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 순간이면 차라리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야, 너두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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