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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내누 Aug 01. 2022

유치원은 놔두라고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39일째

8월 1일 월요일 흐리고 소나기


드디어 유치원 방학이 끝났다. 예전에 썼던 일기에서 예상했듯이 지난주는 정말 빡센 한 주였다. 유치원 방학은 아마도 유치원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유치원은 공식 누리과정만 신청할 수도 있고, 종일반으로 다니고 일종의 특별활동인 연장제 수업도 들을 수가 있다. 종일반인 우리 첫째는 9시에 등원해서 오후 4시 반에 하원한다. 방학 기간도 종일반은 다르다. 원래 우리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 방학은 정식으로는 7월 21일부터 8월 16일까지다. 거의 한 달 가까이 된다. 하지만 종일반 방학은 딱 5일이다.


종일반 개학인 오늘도 아침부터 등원 버스가 북적였다. 사실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사립유치원에 보내는데 종일반에 안 보낼 이유는 없다. 우리 같은 맞벌이 부부라면 더더욱. 만약 9시에 등원한 아이가 점심도 안 먹고 다시 집에 온다면 애는 누가 볼 것인가? 답이 없다. 그래서 애들 대부분 종일반이다. 참고로 말하면 무슨 대단한 사교육을 시키려고 '사립'유치원에 보낸 게 아니다. 우리 동네에 국공립 유치원은 없다. 원래 어린이집과 유치원들은 거의 대부분이 사립이다.


유치원 방학인 지난주는 한 명이 첫째를 데리고 놀거나 어디 다녀오는 동안 한 명이 둘째를 전담 마크하는 시스템이었다. 둘 다 쉴 수가 없다. 그나마 첫째가 어떤 시설의 수업이나 프로그램을 가서 거기 선생님의 통제하에 있으면 그 시간에 잠시 한 숨 돌린다. 둘째의 경우 낮잠을 한두 시간 자는 시간이 그나마 쉬는 시간이지만, 대신 그동안 각종 설거지와 빨래며 집안일을 해야만 한다. 씻고 밥도 먹어야 한다. 그 타이밍을 놓치면 하루 종일 씻지도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유치원이 개학을 했으므로 두 명이 둘째만 데리고 있으면서 훨씬 여유로운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집안일을 완벽히 끝내고도 낮잠도 자고 유튜브 영상 만드는 프로세스도 진도를 좀 나갔다. 오후 늦게 장모님까지 오셔서 손이 더 늘었다. 나는 마음 놓고 첫째 하원을 시키러 나갈 수 있었다.


오후에 비가 온다고 했는데 흐리기만 하고 빗방울은 떨어지지 않았다. 덜 더워서 유치원 끝난 아이들이 다 같이 놀이터에서 꽤 긴 시간을 보냈다. 종일반은 5일만 방학이라도 앞 뒤로 주말을 포함해 10일 만에 유치원에 간 셈이라 오랜만에 사회생활(?)을 한 탓인지 아이들은 평소보다 피곤해 보였다. 다른 학부모들과도 오랜만에 얘기를 나눴다. 다른 유치원은 잘 모르지만, 우리 첫째가 다니는 유치원의 경우 학부모들의 만족도가 매우 높다. 다른 부모들이 한 번도 유치원이나 선생님에 대해 불평불만을 표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이들도 다들 좋아하고 즐겁게 다닌다. 잘은 모르지만 선생님들도 애들을 좋아하는 것 같다. 첫째네 반 담임선생님은 5일밖에 안 되는 방학에도 25명의 반 아이들에게 각각 편지까지 보냈다.


결론적으로 우리 유치원은 학생과 학부모와 교사(교육시설)가 삼위일체로 만족하는 교육기관이다. 내가 직접 다녔거나, 혹은 다른 사람이 다녀서 간접적으로 들어본 다른 어떤 교육기관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오히려 공교육의 영역인 초중고등학교에서는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유치원생들은 다른 사교육을 받으러 학원 같은 데 거의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초등학생은 대부분 학원에 다닌다.


그래서 지난 7월 말에 교육부 장관이 발표한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에 나는 철저히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건 자랑인데, 우리 첫째는 학습 능력으로만 보면 지금도 웬만한 초등학교 1학년보다 나을 수도 있다. 한글을 만 3세도 되기 전에 다 알았고 읽기 쓰기 다 된다. 혼자 책도 읽을 수 있고 자기가 생각한 문장을 삐뚤빼뚤하게나마 쓸 수 있다. 수학은 본의 아니게 과잉 선행학습을 했다. '넘버블록스' 만화와 장난감 덕분이다. 이미 두 자릿수 덧셈도 할 수 있고 곱하기도 안다. 알고 있는 가장 큰 수가 천억이다. 초등학교 1학년의 영어 수업이 어떤지는 몰라도 일단 알파벳은 두 돌도 되기 전에 다 외웠다. 국어만큼은 아니지만 영어로 말을 걸면 아는 영어로 대답하고, 영어 문장도 쉬운 것들 (I am sorry 이런 것들?) 정도는 읽을 수 있다.


이런 자랑을 하는 이유는 만 5세에 학교를 보내기 싫은 이유가 공부를 못할까 봐, 수준이 떨어져서가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그냥 더 안정적이고 만족도가 높은 교육기관에 이미 다니고 있는데, 굳이 억지로 76년 만에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추는 대상이 우리 아이들인 것이 싫다.


지금 교육시스템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지점은 유치원이 아니다. 어린이집이나 초등학교도 아니다. 공부를 왜 하는지 모르고 일단 하게끔 되어 있는 사회 전반의 시스템부터 잘못됐다. 공부를 하는 이유는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다.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좋은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다. 좋은 대학교에 가는 이유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서다. 근데 그게 어디인지는 모른다. 막연히 그냥 나중에 좋은 곳에 취직하려고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데, 글쎄. 일단 뭔가 문제를 바로잡는다면 직업이나 창업에 대한 관념부터 바로 세우고, 회사들의 인재 선발 기준부터 성적표 숫자와 대학교 간판과 만들어진 스펙이 아니라 '진짜' 실력을 보는 방법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 아닐까 싶다. 어려서부터 자신의 기질과 적성을 파악하고 그에 맞는 실력을 갖추기 위해 진짜 필요한 것들을 배우는 교육시스템으로 개혁을 한다면 학부모로서 언제든 환영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유치원생을 초등학교로 빨리 보내는 게 가장 우선순위는 아닌 것 같다. 유치원은 놔둬라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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