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반만 내뱉으세요

우리들의 해방일지: 남편 49일째

by 디내누

8월 11일 목요일 흐리고 시원


마침내 수영을 시작하는 첫날이다. 일기에서 맨날 수영 타령을 하지만 사실 나는 수영을 잘 못한다. 그래 봐야 어렸을 때 평영까지 배운 수준이다. 그나마도 다 잊어버렸다. 하지만 휴직을 하면 반드시 하려고 마음먹은 것이었고, 인원이 꽉 차서 대기를 걸어놓았다가 할 수 있게 된 것이기에 설렘과 기대감이 더욱 컸다.


사실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동네에 가까운 곳에 수영장이 있다는 건 굉장한 매리트다. 개인적으론 이런 장점을 ‘수세권’이라 칭하고 싶을 만큼 의외로 우리나라엔 수영장이 별로 없는 편이다. 내가 다닐 수영장은 심지어 아파트 단지 안에 있다. 첫째 등원을 시키고 미리 챙겨놨던 수영장 준비물을 가지고 스포츠센터로 향했다.


아침 10시 타임이라 그런지 스포츠센터는 꽤 한산했다. 어딜 가서 무얼 하든 처음엔 긴장되는 법이다. 샤워실에서 물을 끼얹다가 수영복을 입으면서도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여기서 이렇게 입고 가방까지 들고 수영장으로 가는 게 맞나… 아니어도 누가 알려줄 것 같진 않아서 그냥 당당해지기로 했다.


수영장에 내려가서 안내데스크 직원이 전에 알려준 대로 1번 레인에 들어갔다. 하나둘씩 사람들이 늘어나고 주변을 쭈뼛대며 살피고 있는데 강사가 나와서 호루라기를 불며 준비운동 동작을 취했다. 뒤를 돌아보니 어느새 내가 대충 서 있던 뒤로 일정 간격을 띄고 1번 레인 강습생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저 멀리 상급자 클래스에는 남자도 있지만 내 레인과 옆 레인은 나 빼고는 다 여자다. 사실 나 같은 30대 남자가 동네에서 오전 10시에 수영을 다니는 경우는 흔치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백수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하면서 사람들이 하는 동작을 슬쩍 봐가며 준비운동을 따라 했다.


그러고 보면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건 비단 아내뿐만이 아니라 나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엄밀히 따지면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는 나’에서 해방되는 게 정확하겠다.


수영 강사는 나이가 아주 많지도 젊지도 않고 근육질은 아니지만 살이 찐 것도 아닌 덩치가 좀 있는 정도의 남자였다. 내가 처음 왔다고 하니 수영을 배웠는지 물어보기에 어렸을 때 평영까지 배웠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고 했다. 그냥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셈 치고 자유형 발차기부터 시작했다. 발차기를 몇 번 하다가 이제 수영의 상징인 '음-파'를 해보았다. 처음엔 어색했는데 강사가 중간중간 조언을 해주는 대로 조금씩 요령껏 하다 보니 점점 할만한 느낌이었다. 그럭저럭 괜찮게 한 모양이었는지 강사는 나에게 판때기를 주면서 연습한 숨쉬기와 발차기를 해서 반대편까지 갔다 오도록 했다.


강사가 나에게 해준 조언은 사실 대단한 건 아니었다. '물속에선 숨을 반만 뱉으세요.' '숨을 코로 쉬면 안 되고 입으로만 쉬세요.' '숨을 쉴 때 머리를 너무 많이 들지 말고 턱은 물에 닿은 상태로 고개만 드세요.' '다리를 찰 때 무릎을 살짝 구부려도 됩니다. 다리를 필 때 물에 힘이 들어가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다. 그중에서 가장 핵심을 찌른 지적은 내가 물속에서 숨을 다 뱉고 나온다는 거였다. 그렇게 숨을 쉬면 물 밖에 나왔을 때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하고 숨을 참게 된다고 했다. 가끔 호텔 수영장이나 리조트 같은 데서 수영을 하면 너무 금방 탈진할 만큼 힘이 빠졌었는데 그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 '음-파'했다는 것만 어렴풋이 기억하고 실제로는 숨을 물속에서 다 뱉고 입과 코로 다 숨을 쉬었기 때문에 호흡이 엉망진창이 되고 산소가 공급이 잘 안 되면서 온 몸에 힘이 빠지고 지쳤었던 것이다.


그렇게 50분을 하고 있자니 마지막 10분 정도는 자유형 발차기로 25미터 레인을 쉬지 않고 한 번에 갈 수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숨이 차거나 팔다리에 힘이 풀린다거나 쥐가 날 것 같은 느낌도 한 번도 없었다는 거다. 달리기를 했을 땐 굉장히 숨이 차고 힘들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었는데, 수영은 그냥 좀 빨리 걷는 정도의 피로도였다. (달리기도 내가 뭔가 잘못해서 그럴 수도 있다.) 그리고 더 좋은 건 안 덥다는 거다. 분명 몸의 느낌은 열심히 운동을 해서 땀이 잔뜩 나는 기분인데, 물 속이라 그냥 시원하다. 역시 여름엔 수영이 제격이다.


수영을 마치고 나오니 아드레날린이 분출되었는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자전거를 타고 습하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도 오늘 날씨가 좋으니까 꼭 외출을 하라고 권했다. 아내는 수영장 가기 전까지만 해도 피곤하고 기분도 별로였던 내가 갑자기 너무 기분이 업돼서 돌아오니까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강사가 내일은 자유형 팔 동작을 가르쳐준다고 했었다. 내가 반신반의하며 지금 제대로 하고 있는 거냐고 묻자 잘하고 있다고 답해주었다. 자전거처럼 안 타다가 수십 년이 지나서 타도 똑같이 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왠지 나도 어릴 때 배운게 있으니 금방 웬만큼 수영장을 즐길 수 있게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오늘 인생에 굉장히 큰 교훈을 하나 얻었다. 숨을 반만 뱉어야 숨이 차지 않는다. 무엇이든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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