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제 다른 병원을 찾아가보려는 노력을 그만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 집에 계시는 동안 내가 자주 다니는 미용실에 가서 머리카락을 짧게 자르기로 했다.
그 곳을 수차례 왔다갔다 했었는데 휠체어 경사로가 있는지 없는지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예약을 잡고, 막상 도착하니 휠체어 경사로가 없어서 계단으로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와 동생, 엄마는 당황했다.
"내가 일어나서, 난간을 잡고 내려가볼게."
엄마는 걸어서 계단을 내려가보겠다고 하신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입구인데 1Km는 떨어진 것 같다.
힘들게 도착해서 문을 여니 미용실 사장님이 깜짝 놀라신다.
미용실 의자에 앉는데 같이 부축해서 도와주시고, 별 말씀 안하시고 머리를 잘라주신다.
엄마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간다.
뒤에서 흰머리카락이 보이는게 싫어서 주기적으로 염색을 하던 엄마였는데.
이미 희끗희끗 흰머리들이 올라왔고, 난생 처음 보는 엄마의 머리스타일에 우리 모두 말을 않고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본다.
어느덧 3주가 흘러 2차 항암 시기가 왔다.
입원하기 전 코로나 검사를 받고, 채혈을 해서 항암을 받아도 되는 몸 상태인지 확인했다.
다행히 아무 문제가 없어서 바로 입원할 수 있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능숙하게 필요한 물품들을 정리하고 주사를 맞기 시작한다.
3,4시간 주사를 맞는 동안 엄마는 멍하니 TV를 보다가 잠깐 졸기도 한다.
주사를 다 맞고 나니 양 볼이 벌겋다.
여전히 병원밥은 못 드시겠다고 하고, 속이 메스꺼워 맵고 자극적인 음식을 찾으셨으나 그마저도 많이 드시지도 못했다.
주사를 맞은 첫날밤에는 오한에 잠을 설쳤다.
엄마는 심한 감기몸살에 걸린 듯 덜덜 떨면서 선잠을 잤다.
잠이 잘 오지도, 깊게 잠이 들지도 않아 매일 수면제를 먹고 자야했다.
그렇게 첫 날을 보냈다.
항암 주사를 맞고 난 후 24시간 이후에 면역력 높이는 주사를 맞는다고 해서 주사를 맞고 나서 퇴원하기로 했다.
"이제 다음번 항암때는 외래로 받아야겠다. 병원에 오니 몸이 더 안 좋아지는 것 같아. 집에서는 그래도 좀 걸어다녔는데 여기서는 더 못 걷게 되는 것 같아."
사실 2차 항암 때도 외래로 받을 수 있었는데 그렇게 되면 면역력 높이는 주사를 다른 병원에 가서 맞거나 집에서 맞아야 한다고 해서 입원을 한 것이었다.
입원 기간이 길지 않아서 엄마도 동의를 한 것이었는데 병원에서 걷는게 더 힘들어지니 마음이 불안했던 모양이다.
그리고 병원이라면 이제 진저리가 나겠지.
"그래, 엄마 다음번에는 외래로 받자. 주사 맞을만한 병원도 근처에 알아볼게."
"응.... 집으로 가야겠다."
엄마는 엄마집으로 가야겠다고 하신다.
'사위보기 불편하다. 네가 너무 힘들다. 엄마 괜찮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할게. 내 집에서 조금이라도 걸어야 한다. 이제까지 혼자 해왔는데 혼자 할 수 있다.'
며칠만이라도 더 있자는 만류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꺾을 수 없었다.
"엄마, 열이 조금이라도 나면 무조건 연락해야돼. 참고 있으면 큰일나. 꼭 해야돼. 걸을 때도 무조건 조심해야되요."
신신당부하며 집으로 모셔드렸다.
다음날 나는 출근해서도 엄마가 비틀비틀 거리며 약을 챙겨드시고, 음식을 드시고 멍하니 TV를 보는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상상이 되니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는 상황에 애만 탔다.
엄마가 걸을수만 있어도.
엄마의 다리로 걸어다닐 수만 있어도 걱정을 덜텐데.
혹시 비틀거리다 삐끗하지는 않을까, 침대에서 내려오다 떨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엄마는 이제 나에게 물가에 내어놓은 어린아이 같은 존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