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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Jul 23. 2017

[대만 일상] 심야 영화 <덩케르크> 관람기

소소한 행복이 아름다웠던 대만의 한 여름 밤 이야기

어젯밤 너무 달린 탓에 간만에 새벽에 귀가했는데도 불구하고,
습관 탓인지 9시에 눈이 똥 떠져서 창문을 열었더니 미치도록 시퍼런 하늘..
타이페이에 좀 살아보신 분들은 (아니 사실 아시아 왠만한 대도시 어디에 살더라도) 이런 파란 하늘은 흔치 않기에,
집에 있기엔 엉덩이가 근질거려서 무작정 조깅하러 밖으로 뛰쳐 나오며 시작된 오늘 하루.

집 근처 공원 상황..
근데 한 가지 더 대박인 건, 보통 오전 7시만 넘어도 더워 죽겠는 대만 여름이지만
오늘은 바람도 선선히 불고 구름도 껴서 그런지 습하지 않고 너무도 쾌적 ㅠ
조깅하다가 녹아 없어질 줄 알았는데 막상 나와보니 내 마음이 녹아버림 @@ ㅎㅎㅎㅎ

뛰고 돌아오는 길에 발견한 개. 오토바이에 묵어둔 상황이 뭔가 귀엽다고 해야할지 개한텐 안쓰럽다고 해야할지?
여튼 제가 있는 여기. 대만 맞네요 ㅎㅎ

근데 막상 부족한 잠은 보충하긴 해야겠더라구요 ㅠ
뛰고 샤워하고 나니 나른. 만사 귀춘. 하늘을 바라보며 희망고문하지만 결국 낮잠 쿨쿨..

너무 아쉬워서 밤에 기여나와서 운치 있는 타이페이의 밤 거리를 몇 장 찍어 봅니다~
음악 들으면서 거리 사이로 불어오는 선선한 살랑 바람
그 사이로 새어오는 빛
타이페이 거리만의 운치..
소소하게 행복해지는 대만의 밤이네요~

그렇게 즉흥적으로 심야영화를 보러 가기로 합니다.
아마도 대만에서 혼자 영화 보러 가긴 첨이네요... 그냥 느낌에 이끌려 바로 행동으로 옮겨버림 ㅎㅎ
제 인생을 통틀어 혼자 영화는 한 세 번 본 거 같은데
하나는 입대 전 봤던 호우시절. 다른 하나는 너무 보고 싶어서 퇴근 후에 만석 영화관에 가서 본 그래비티.
그리고 오늘.

위치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의 미라마.

미라마 영화관이 좋은 이유는 뭔가 실내가 미국 영화관에 온 거 같아서랄까?!

밤이라 사람들이 뜸한 영화관~
한국은 여름밤이면 좀 더 북적거리려나요?

요즘 한창 열일 중이신 스파이더맨 ㅎ

텅 빈 영화관~
하루 전세 내 봅니다 ㅎㅎ

자 영화가 시작되려 하네요.
잘 안 찍는 셀피도 한 장 남겨봅니다~

제가 택한 영화는 바로 <덩케르크>!
워낙 인상 깊게 봐서 다른 곳에 남긴 영화 관람기를 아래 따로 남깁니다. (아랫부분엔 약간의 스포?랄까 줄거리 맥락과 관련된 부분이 있으니 유의하면서 읽어주세요~)

개기 일식만큼이나 드문 미친 날씨의 (비교적 선선한) 대만의 여름밤 날씨가 아쉬워
어떻게든 밖에서 뭔가 해야겠다는 내면의 재촉을 달래기 위해 무작정 향한 영화관.
개봉 전 트레일러를 접한 순간부터 보고 싶었던 <덩케르크>
원래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나도 몰랐지만 영화앱 와챠가 알려준 내가 가장 선호한다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이기 때문
영화관 전세 낸 기분으로 한 가운데에 앉아 팝콘이며 음료 아무 것도 안 갖고 입장.
영화중에 살짝 목도 마르고 에어컨 때문에 추울 것 같았지만 일부러 그냥 들어갔다.. 
덩케르크에 고립된 군인들의 절박함(?) 같은 걸 간접 체험하며 보고 싶었다. 편한 의자에 배도 불리며 목도 축여가며 보기엔 관객으로서의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 것 같아서 랄까? (편하게 보신 분들 매도하려는 의도 제로 ㅎ)
많은 사람들의 평에도 있었던 잔잔하게 끝까지 몰입감을 주는 전개는 말 그대로였다.
피가 낭자한 전쟁을 보여주지 않아도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는 놀란 감독의 연출에는 경외심마저 든다. 특히 메멘토, 인셉션에서도 그랬든 시점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그의 연출 기법은 이 영화에서도 1주전, 1일전, 1시간전이라는 세 가지 시점을 교묘하게 얼궈놓아 그게 어느 순간 딱 맞아떨어지는 건 내가 왜 놀란 감독을 최애하는지 다시 한번 증명해주었다.
영화 장면 중 인상 깊었던 신들은 (스포 다소 포함)
- 자기 살기 바쁜 상황에서도 부상병들을 우선해서 태워주는 배려심
- 최악의 상황에서 각자 위치에서 현실을 받아들이고 생존을 위해 다음을 준비하는 자세
-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군인 이송이라는 대의를 위해 배를 동원한 민간인들 (결국 사람을 움직이는 건 돈, 명예가 아니라 그 이면에 있는 자기 행동에 대한 자부심이라는 생각. 명시적 보상(돈, 명예)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보내주는 응원, 칭찬, 인정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려고 할 때 즈음, 군인들의 환호 속에서도 무표정으로 해안으로 향하던 어선 위 뱃사람 아저씨의 표정이 뇌리에 특히 강하게 박혔다)
- 민간 배에 구조된 군인에 의해 오히려 동생을 잃은 형이, 일을 저지르고 죄책감에 "동생은 좀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 막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르고 그 와중에도 상대를 배려해 그냥 "괜찮다"라고 답하고 그걸 지켜보던 아버지가 눈을 지그시 감던 장면
- 기지 복귀를 포기하면서도 해안의 군인들을 지키기 위해 적기를 격추시키고 프로펠러가 멈춘 상태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보내던 군인들의 환호
- 패잔병처럼 영국에 귀환한 군인들을 향해 구호품을 나눠주는 노인에게 죄책감을 느낀 한 군인이 "We haven't done anything. We just survived."라고 하자 한 그 노인의 대답 “That's enough" 결국 인간은 누군가에게 꼭 인정 받아야만 고귀한 건 아니다. 그냥 그 존재 자체로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가치가 있는 존재가 인간이다.
- 이미 3만명의 영국 군인을 성공적으로 구출한 해군 제독이 영국으로 가는 배에 오르지 않고 남아서 아직 덩케르크에 묶여 있는30만명의 프랑스 군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날린 멘트. "I'm staying here.... for the french" 리더십이란 이런 거구나. 지위를 이용해 내 앞가림부터 할 생각이 아니라 내 지위가 부여된 사명을 우선하는 정신.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정치를 넘어선 모든 영역에서의) 민주주의가 아닐까.
비교적 인상이 강렬했던 것만 추렸는데도 이렇게나 되네...
페북에 이렇게 장문의 글 올린 건 거의 첨인 거 같네 ㅎ
결론: 역시 크리스토퍼 놀란이라는 점에 논란의 여지는 없다
사족으로,
- 자막 없는 영국 영어는 빡세구나 (영어 좀 한다고 우쭐할 처지가 아님)
- 영화 자막 따라갈 정도로 내 중국어 실력이 대단한 것도 아녔구나
역시 사람은 모든 일에 겸허하고 볼 일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니 5층 발코니에서 몇몇 젊은이(?)들이 맥주 파티하고 만취 상태로 나뒹굴고 있더라는 ㅎㅎㅎ

심야 영화가 이리 좋은 거군요~
영화관도 멀지 않은데 앞으로도 종종 트라이해봐야겠네요~


너무 좋았던 날씨를 십분 활용하지 못했던 아쉬움이 남았을 뻔했던 하루였지만

이런 소소한 행복들이 있어

아쉬움은 아쉬움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던 밤이었네요 :)

그럼 여러분들도 즐거운 주말/여름 밤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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