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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Apr 27. 2018

[대만 섬 시리즈-녹도(6)] 인권문화원구 人權文化園區

대만 버젼의 알카트라즈?! 청치범 수요소가 이제 역사 박물관으로!

다음으로 저희가 들린 곳은 '녹도인권문화원구'

대만은 한국과 참으로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것은 지난 블로그에서도 심심찮게 여러 번 소개를 드렸었는데요.
정치사회적으로도 비슷한 면이 많습니다.
'민주주의'(라고 쓰고 '보수주의'라 읽음) 대 '공산주의' 간의 내전이 있었고 그 결과로 남한과 북한, 중국과 대만으로 분단되었다는 점이 그러하죠. 

장개석(좌), 모택동(우), (출처: 욱이님 블로그)


위에서 '보수주의'라고 읽은 이유는 사실 말이 좋아서 민주주의 세력이지 당시에 정치력을 가진 두 보수적인 지도자에 의해 결국 한국과 대만 모두 '독재'의 시기를 거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재밌는 건 민주주의의 탈을 쓴 보수나 공산주의의 탈을 쓴 진보나 독재로 간 것은 다 똑같았고 오히려 '모두가 공동으로 생산하고 잘 살자는 이상'을 내걸었던 진보가 사실 독재는 더 지독하게 한 걸 보면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대부분이 독재로 전락한 공산국가에서도 3대 세습은 전대미문일 것이다. (출처: historywar.net)

여튼 한국은 이승만이라고 하는 미국에서 유학한 일종의 기득권 세력이 등장해 독재를 시도했고 그 이후에도 군부로 대변되는 박정희,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거쳤죠.

독재로 비판 받는 역사적 인물들

대만은 장개석이라고 하는 거의 절대군주와 같은 군사지도자가 국공내전에서 패퇴하여 대만으로 옮긴 뒤 마찬가지로 독재 정치를 하게 됩니다.

근대 동아시아사의 가장 큰 풍운아가 아닐까 하는 장개석, 통일중국을 향한 욕심은 대만섬에서 용두사미로 끝나고 마니...


여튼.
제가 여기서 논하고자 하는 건 정치나 역사는 아니지만, 곧 소개할 장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약간의 이해를 돕고자..

이곳은 한국으로 치면 '삼청교육대'와 컨셉이 다소 비슷한데, 불량배, 정치범 등 정권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들을 수용하던 일종의 교도소 내지는 노동캠프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인권문화원구는 크게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다고 멋대로 정의 내리고,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1. 동쪽 구역 - 신입 대기 수용소
2. 중앙 구역 - 행정 본부
3. 서쪽 구역 - 교도소


1. 동쪽 구역 - 신입 대기 수용소

정문은 따로 있는데 저희는 섬을 반시계 방향으로 한바퀴 돌고 가는 길에 제일 먼저 나타난 출입구를 통해 들어가기로..

여긴 당시 '신입' 수감생들을 수용하던 일종의 '대기보충대' 같은 느낌의 곳이었나 봅니다.
(아우 출입구부터 군 입대하던 생각 나게 해서 몸서리쳐지네요...)

입구 옆에는 감시 타워가 있어서 수상쩍거나 도망치려는 자들을 항상 지켜봤던 걸로 보이네요.
당시 무고하게 끌려온 사람들은 대만섬에서도 꽤나 떨어진 이 외딴 섬까지 끌려 와서 얼마나 두려웠을까요...

자, 그럼 안으로 들어가 볼까요?

모든 수감인원들을 사각지대 없이 보기 위해서인지 횡한 공터..
그리고 그 뒤로 보이는 수감생 막사로 보이는 건물들..

예전엔 감시 군인들과 철조망들로 더 삼엄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잠시 상념에 젖게 됩니다.
독재 정권 시절도 아닐 때 군대 간 저마저도 많은 자유가 제한된 당시를 떠올리며 언제 2년이 가나...생각했는데...
수십년 전 이곳에 온 그들에게 과연 '입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당시 모습을 재연한 전시물들이 있는 일종의 기획전시관으로 단장되어 있었습니다..
장소만 다르지 분위기는 유대인 수용소와 흡사한 느낌마저 줍니다. (물론 여기서 대량학살을 하지는 않은 듯 합니다만..)

대부분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자니 뭔가 흉악범이라기 보다는 선량한 사람이었을 것 같다는 인상을 줍니다..

당시 수용인원들의 식재료들도 직접 노동을 통해 자급자족 했었다고 하네요.
닭, 돼지를 키우고..

바다에서 돌을 채취하기도 하고...

당시 막사 전경...
저 뒤로 '세 쌍둥이 바위'가 보이네요...

당시 이곳에서 무고하게 탄압 받은 자들을 기리는 코너도 있었습니다.

역사의 거친 파도 속에서 꼼짝 없이 권력자의 폭력에 묵살될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의 목소리, 짓밟혔던 자유에 
현재 제가 누리고 있는 자유의 무거움에 괜히 숙연해 집니다.

수용소는 북쪽으로는 바다를, 남쪽으로는 산등성이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저희는 동쪽 신입 수감생 수용소에서 시작해 조금씩 서쪽으로 이동해 보았는데요.
시설이 커서 오토바이를 타고 움직였습니다

이렇게 첫번째 구역의 투어를 마쳤음을 신.고.합니다!


2. 중앙 구역 - 행정 본부

간부들이 주로 활동하는 지역이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장벽부터 뭔가 색깔이 들어가 있고,
어딘지 모르게 활기라고 해야 할 지 여유가 묻어 있는 게 느껴집니다.

예전엔 여기가 정문이었을 걸로 보이네요.
'충애'라고 적혀 있는데 간부들은 여기에 온 정치범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것이야말로 국가에 충성하고 애국하는 것이라고 믿었었겠죠? 생각해보면 여기에 일했던 자들 모두가 피해자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일부는 적극적으로 정권에 충성했겠지만 과연 누가 당시의 분위기에서 정권에 반하는 목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수용소 안에서는 '용기 냈다가 을로 전락한 자들'과 '겁쟁이인 채 갑으로 남은 자들'간의 묘한 긴장감도 있었던 건 아닐까요?
여러 생각들이 뇌리를 스칩니다.

안에는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장개석의 흉상...
한국과 정말 다른 점이라면, 한국은 현재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초상을 어디에서고 영웅화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지만, 
역시 역사의 풍운아, 장개석은 그 레벨이 다른가 봅니다.
현재도 대만의 200위안짜리 지폐에 장개석이 있는 걸 시작으로 타이베이에는 버젓이 '중정기념당'이 있고 (한 때, 진보 정권에 의해 '중정'이란 이름을 떼었다가 다시 보수 정권에 의해 예전 이름으로 복원됨), 그 외에도 군시설 또는 중요 건물들에 아직도 '중정'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걸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지금은 폐건물이 되어 버린 간부들이 생활하던 각종 행정 본부들..

과연 안에는 뭐가 있을까...

대만 곳곳을 여행하다 보면 '무망재거'라는 사자성어가 비경 속 바위 위에 새겨져 있는 것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머리에 바로 떠오르는 지역만으로도 화롄 타이루거, 녹도 그리고 금문도...

뜻은 "출세했다 하더라도 자신의 지난날을 잊지 말아야 함을 이르는 말"이라고 하네요. (출처: 네이버 어학사전)
왜 이런 말이 대만 전국 방방곳곳에 새겨졌을까...

이 말은 전국시대에 제나라가 연나라의 공격을 받아 79여 성을 모두 잃고 마지막 거(莒城)와 즉묵(卽墨)만 남았다. 이를 反攻基地로 삼아 연을 물리치고 국토를 회복하게 된 고사를 거울삼아 중국본토를 회복하자는 뜻을 담고 있다. 거에 있을 때를 잊지 말자는 뜻의 反共反攻 구호라고 한다.[출처] 무망재거(毋忘在莒)|작성자 심경

즉, 대만섬을 패퇴해 궁지에 몰렸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본토를 회복하자...가 그 뜻이라는 거 같은데...
사실 중국 대륙에서 반일전쟁을 할 때만 해도 국민당이 대세였었는데 자만과 부패로 공산당에 밀려 대만섬까지 밀려난 장개석이 내건 기치로 보기에는 이것마저도 아이러니 하네요...

게다가 그걸 이런 정치범 수용소 앞에 새겨두려는 이유는, 수감자들에게 반공 정신을 더 심어주기 위함이었을까요..?!

안에는 무엇이 있나 들어가 봤습니다.
마치 폐교 같이 스산한 분위기의 내부...
역시나 군사 시설로서의 건축양식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별도로 건물이 이용/관리되고 있지 않아 이끼와 각종 식물이 자라고 있더군요...

옥상에 올라가 보았습니다..
수용소 뜰과 '무매망거'가 적힌 바위 그리고 그 너머로 바위가 시원하게 한 눈에 들어옵니다...

그 외 따로 더 볼 것은 없는 듯 하여 이제 계속해서 서쪽으로 이동해 봅니다...
바다가 바로 앞이어서 그런지 파도가 만든 기암괴석이 보이네요.

뒤를 돌아보니, 우두산이 보이는데 여기서 보면 '소'라기 보다는 '하마'가 물속위로 떠오른 듯한 모습을 연상시키기도 하네요..ㅎ

세번째 교도소 구역으로 넘어가는 길...



3. 서쪽 구역 - 교도소

원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녹주산장'이라고 적혀 있는 이 바위...
과연 녹수산장은 무엇일까?!

사실 녹주산장은 1972년부터 무려 1987년(!)까지 존재했던 정치범 교정 수용소 즉 교도소의 본산입니다...
아마 이 건물은 비교적 최근에 행정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 같은데 신기하게도 창문을 다 저렇게 가림막 같은 걸로 가려놨네요.

안에 들어가면 인권문화원구 관광안내센터 같은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수용소 투어는 이 건물 뒤에 계속됩니다.

인권문화원구의 전경...
제가 소개한 코스는 오른쪽부터 왼쪽의 순서로 지금 위치가 (a) 근처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교도소 구역으로 진입 전에는 면회 등을 하는 교도 관리소 같은 구역을 거치게 됩니다.
가족, 친지가 이 먼 곳까지 끌려왔다면... 마음대로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는 상태에서 나 자신이 이런 곳에 수감되었다면 정말 얼마나 답답했을지...

그 마음을 설정샷으로 풀어내 봅니다...

'나는 국가를 사랑한다'
'나는 국기를 사랑한다'
이렇게 애국반공교육 시키지만 과연 이런다고 수감자들이 국가와 국기를 더 사랑하게 될지...

이 문을 거치면 '팔괘루'라고 하는 교도소가 나타납니다.

교도소 내 수감자들의 운동장...

교도소 정문

'팔괘루'라고 불리는 이유는 위에서 봤을 때 X자 모양으로 8(八)자 두 개를 포개놓은 모습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네요.
즉 중앙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대한의 감시가 가능한 구조인 거죠..

교도소는 총 2층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제 1 구역..

내부 모습은 영락 없는 교도소...

한켠에는 욕실 겸 화장실이고 나머지 마룻바닥에서 여러 수감자들이 함께 생활하는 열악한 수감실 구조..

예전에는 흡사 이런 모습이었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정치범들은 당대의 지식인들이다 보니 뭔가 차분하면서도 정돈된 분위기입니다.

그리고 수감자들을 사각 없이 감시하기 위해 안에는 이런 구조의 틈이 뚫려 있었습니다.

그 틈을 통해 바라본 내부 모습..

가림막도 없이 다른 수감자들 사이에서 첫 용변을 봐야 하는 기분은 어땠을까요?ㅠ
당시 사람들은 프라이버시가 지금 같지 않아서 크게 개의치 않았을까요?

교도소 뒷편은 산..

다른 복도도 같은 구조...

마치 수감자들을 감시하는 교도관 같이 나왔네요..
오토바이 헬멧이 마치 군용 방탄모 같기도 하네요...

이렇게 보니 귀신 같기도...=_=;;;

감시관이 되어 보기도 하고...

수감자들이 되어 보기도 합니다..

수감실 바깥 틈으로 바라본 모습...

당시 상황을 나름 잘 보존, 구현해 놓았던 것 같습니다.
자유의 소중함에 대해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인권문화원구 투어를 마치고 이제 오늘 섬 환도의 마지막 코스.. 등대로 향해 봅니다.

가는 길에 사슴을 저렇게 개처럼 묶어놓은 것을 발견... 

영양탕 집 같은 가게였던 것 같은데 뭔가 너무 안쓰러워 보였습니다. ㅠㅠ

저 멀리 하얀 등대 그리고 그 뒤로 비행기와 활주로가 보입니다. 
(즉 저희 민박 근처라는 얘기지요~)

날씨 좋을 땐 여기서 수영하기 하면 좋을 듯 한데..

녹도 등대~

남정네 셋..ㅎㅎ

우뚝 솟았네요~
포카리 스*트 선전에서처럼 파란 하늘이면 좋으련만~~

등대 언덕에서 바라 본 활주로..

이렇게 녹도 환도를 마치고 다시 민박으로 돌아갈 시간~
이 때가 1시 정도 였던 거 같네요... 그야말로 반나절만에 녹도 한 바퀴 돌고 투어까지 마쳤네요~
남자들끼리 여행하면 좋은 것 중의 하나는 이런 기동력이 아닌가 ㅎㅎㅎ

전 날 야간 생태 투어 할 때도 봤던 과일인데..
파인애플을 닮았지만 파인애플은 아닌 녹도에서 나는 과일이라고 하네요...

이제 배도 고프고 녹도 떠날 배도 2시쯤에 도착한다고 하니 어서 녹도 점심 먹으러 출바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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