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딘닷 Jun 02. 2018

[대만 섬 시리즈-란위(10)] 원주민 전통지하가옥

지하 땅굴에 온 줄 알았다... 쇼킹했던 란위 원주민의 주거 공간 체험!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은 기대했던 자오찬 맛집이 문을 닫았다는 것...
결국 여기저기 돌다 항구 근처에 자오찬 집을 하나 찾아서 거기서 해결 ㅎ
란위는 가게 자체가 귀한 동네이기 때문에 그냥 찾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지는 곳이다.

구름이 껴서 기분도 꿀꿀해진 탓일까...
아침 무드가 딱히 좋지 않아서 유난히도 말수가 적어졌던 기억이 난다..
역시 나는 화창한 날이 더 좋다!ㅎㅎ
이노무 구름들 다 날려버리고 싶다... (쪼~ 아래 달팽이처럼 생긴 바위가 귀엽다 ㅎ)

란위 원주민 전통 가옥 투어를 10시에 신청해 놨기 때문에 시간에 맞춰 민박 보이 빠양이 알려준 주소로 향했다.
위치는 바로 예인(野銀) 마을 (기상대 노을 보러 가는 길에서 지나쳤던 바로 그 마을).

이곳은 란위섬에서도 가장 오래되고 강성했던 부락 중 하나라고 들음 (내가 제대로 이해했다는 보장이 없음 ㅎㅎ 기억도 가물가물)
차를 세워 두고 약속장소까지 가는 도중에 마을의 풍경을 담아 보았다.

태평양의 망망대해가 바라보이는 원두막
한국인은 '원두막' 하면 왠지 그냥 수박을 떠오르는 이유는 뭘까... 이래서 초기 교육이 중요한가보다...
하우아유 들으면 파인땡큐앤쥬가 기계처럼 나오게 되는 그 부작용... 이런 일방향 교육 방식은 바뀌어야 하는데...
암튼 이야기가 셌다.

예인 마을을 지나다 보면 여기저기 동물을 사람보다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인상 깊었던 건 따로 제대로 된 우리에서 키우는 게 아니라 무슨 개 풀어놓고 키우듯 그냥 막 키운다는 점이다.
내가 여기서 말하는 동물은 주로 돼지, 염소, 닭 등 가축이다...;;

그나마 주변이 풀밭이고 자연이면 모르겠는데 생판 콘크리트 도로 위에 흙 좀 깔아놓고 가축들을 방사해서 키우고 있으니 이건 카오스가 따로 없다...

귀여운 새끼 흑돼지가 먹을 거라도 찾으려고 킁킁대는 길거리 곳곳에서 담배꽁초가 보이는 건 참으로 안타까운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풀밭에 주변을 서성이는 닭 무리...

여튼 그런 안쓰러움과는 달리 가축들은 다 건강해 보이기는 했다. (뭐 수의사 의견이 아니니 실제 이 녀석들이 스트레스 받으며 살고 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뭐 적어도 갇혀 사는 건 아니니 그렇지 않을까 생각)

원주민 전통 가옥 중 가장 잘 보존된 이곳이 바로 오늘의 투어 장소...
참고로 이 곳은 관광단지도 아닌 아직도 엄연히 주민들이 거주하는 사유지로서 투어를 신청하지 않은 사람들은 함부로 들어가서 구경하면 안된다고 한다. 종종 관광객들이 뭣도 모르고 들어와서 기웃거리는데 주인 아주머니는 아주 질색하셨다.

이 집 뒷편으로도 여러 집들이 있었지만 딱히 전통 가옥이라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의 간이 판자집 정도로만 보였고 그 광경이 흡사 빈민촌마저 떠오르게 하였다...

재밌는 건 집이 계단식으로 파진 구덩이 아래 지어졌다는 점.
기억을 더듬으면 반지하 집을 지음으로써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는 사실 가물가물... 한편 드는 생각은 더운 곳인데 더위를 피하려면 왜 굳이 지붕을 빛 흡수가 잘되는 검은색으로 칠했는지도 좀 의문이다..)

다만 옆집을 보면 원래 지붕을 까만색으로 하려 했다기 보다는 왠지 나무에 비 등 물이 스며들게 하지 않기 위해 덧칠을 한 듯이 보인다. 

집 한켠에는 란위의 수호신을 상징하는 '눈'과 각종 상징들이 그려진 조형물이 있었다. 밤에는 조명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지금은 전구가, 예전엔 불을 떼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로 이 날 투어를 맡은 아주머니가 이 가옥의 소유자는 아니고 자신의 할아버지가 짓고 부모님과 어렸을 때 살던 가옥인데 지금은 아무도 살고 있지 않고 자신이 관리해 주고 있다고 하였다. 
우리를 안으로 인도하면서 종종 자신의 삼촌이 단체 관광객을 데리고 와서 집을 보여주는데 자기 것도 아닌 집에 사람들을 멋대로 우르르 데리고 와서 관리하기 어렵다며 투덜투덜 거렸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우리 투어를 마칠 때 즈음 삼촌이 20-30명이나 되는 관광객들을 몰고 왔다..)

여튼 계단식 블락 아래 반지하로 내려오면 한옥처럼 대청마루가 있고 토끼굴만큼이나 작은 통로가 보인다.
문이라고 하기엔 좀 어처구니 없는 사이즈의 이 문을 보니 창문 같기도 하고 아니면 뭔가를 넣는 수납공간 같이도 보이는데 사실 이게 바로 출입구였다..;;;

가이드의 안내 지시에 따라 문을 열고 들어가 보았다. (함부로 손 대고 그러는 것에 좀 민감해 하는 눈치여서 철저하게 아주머니 지시를 기다렸다 ㅎㅎㅎ)

우왓! 문을 여니 정말 이건 무슨 생활공간이라 하기에도 민망한 구조가 등장!

안은 '집'이라기 보다는 은둔처 내지는 소굴의 느낌에 더 가까웠다.
재밌는 건 이 오래된 원주민 가옥에도 전기 배선이 깔려 전등이 들어왔다는 점.
딱히 생활공간이 나누어져 있지 않고 부엌, 화장실, 침실, 창고 모든 게 한 공간에 집약된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간이 이렇게 좁으면 나누는 것도 쉽지 않을 뿐더러 그 의미도 딱히 없겠다 싶었다...

앞에 보이는 곳이 조리를 위한 부엌이자 난로 역할도 했다...
집 전체가 시커먼 건 원주민 가옥 건조 방식일 테지만 안이 시커먼 건 왠지 오랜 시간 불 떼서 그 그을음으로 이렇게 된 건 아닐까도 생각될 정도였다...

천장에는 전투 시 착용하는 투구와 외부 노동 시 이용했던 도구들이 걸려 있었다.
바닥에는 칠이라도 한 모양인지 맨질맨질했다. 사람들의 피부 기름 때문에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 부분만은 유독 검지 않았고 윤기(?)가 흘렀다.
설상가상으로 예전엔 여기서 온 가족이 잤다고 하는데 170 넘는 사람은 다리 뻗고 자기에도 비좁다... (뭐 당시 사람들 기준으로는 딱 적당한 길이였는지도 모르겠지만)
참고로 머리가 왼쪽, 다리가 오른쪽으로 눕는다;;;
이런 공간에서 대체 어떻게 살았을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프라이버시 따위의 개념은 원주민들에겐 없었으리라...ㅠ

각종 목재 식기들과 물고기 모양을 본 뜬 공예품도 보였다.
그래도 이런 환경 하에서 나름 저런 유물들을 잘 보관(보존이라고 하기엔 상황이 좀 열악)하고 있었다.

다시 유사한 구조로 좁디 좁은 문을 열어 한 칸 더 안으로 (말 그대로) 기어들어갈 수 있었는데, 
이곳은 생활공간이 아닌 창고였던 모양이다...

천장에는 다소 무시무시하게 염소 뿔 같이 생긴 것들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이게 물고기 뼈였는지 뭐였는지는 역시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ㅠ)
세월의 흔적인지는 모르겠지만 가뜩이나 비좁고 창문도 없는 내부 공간이 온통 시커머니까 더 으스스해 보였다.

그 밖에도 주방/난방용으로 쓰던 뗄감 등도 보였고 그 뒤로는 드디어(!) 자그만한 창문도 보였고 이를 통해 그나마 한 줄기 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시 생활공간으로 돌아와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가이드 분의 설명을 들었다...
일찍 일어난 데다가 안은 따뜻하고 중국어로 열심히 쏼라쏼라 설명하시는 가이드 분 설명에 각별히 귀 기울이며 집중하고 있으니 정신도 지쳤는지 사르르 잠이 왔다.. (그래도 아주머니는 멈추지 않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가셨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것은 예인 부락이 예전부터 란위 부락 중 강성했다고 한다.
부락 간에는 크고 작은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옆에 있는 동칭 부락은 예인 부락의 추장이 윤허(?)해서 시작된 마을이라고 했다.
(아마도 처음엔 몇 안 되던 부락이 그 안에서도 쪼개지고 했던 모양이다.)

옛날 할아버지는 저 발통 같은 걸 들고 바닷가로 나가 물고기며 조개를 채집해 오는 일을 하셨다고 했다.

키 큰 사람은 제대로 몸을 일으키기도 비좁은 공간이었다 ㅠ
난 아마 다리를 굽히지 않으면 몸을 제대로 눕히지도 못했으리라...

투어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사실은 내가 앉아있는 곳 옆에 얕게 파여진 홈 또는 또랑(?) 같은 게 있었는데 저게 무엇이었는지 상상 가능하신가?!
바로 저게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이유는 밤이 되면 밖이 어두워 아무것도 안 보이고 나가기도 불편해서 이렇게 용변을 해결했다고 한다.. (물론 큰 거면 별도 요강으로 처리했다고 하는데..)
나름 저게 미세한 경사가 있어서 흐르고 흘러 요강 같은 데 모이게 설계되어 있었다고 한다.
아니... 옛날 옛적에는 위생 관념이 덜했다고 하지만 도대체 잘 때 냄새는 둘째 치더라도 저거 건드릴까봐 찝찝해서 잠이 제대로 올까?! =_=;; 
여튼 그 얘기 듣고 나자마자 저 근처에는 안 갔던 기억이 난다 ㅎㅎㅎ 여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공유해준 가이드 아주머니의 솔직함에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ㅎㅎㅎ

식재료 손질 또는 집안 수리에 사용됐을 법한 도구들..

사냥 또는 전투 시 쓰였을 법한 무기는 크기가 너무 커서인지 지붕 아래 이렇게 매달아 두었다.

당시 쓰였던 생활집기들...

주방공간... 나무로 지은 가옥이기 때문에 화재는 항상 유의해야 했으리라 쉽게 짐작 가능하다.
그래서 아래는 모래를 깔아 두었고 그 위에서 약한 불로 나무를 떼서 요리도 하고 난방도 했다고 한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성냥갑...

가이드 아주머니께서 손수 보여준 대문짝...;;;ㅎㅎㅎ
대나무를 끈으로 이어 만들었는데 나름 안에서 잠글 수 있는 자물쇠 시스템(!)도 완비되어 있었다..

역시나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집 주소 및 번지가 표기된 옛 표지판들..
모두 일제시대 때 정비되었다고 한다.

그 외에도 가이드 아주머니는 란위 원주민들의 생활방식과 관련된 사진들을 여럿 보여주셨다. (대부분은 란위에서 제작한 달력에 있는 매월 사진들이었다.)
란위 원주민의 전통 의상, 전통 축제 등 의식에 관련된 사진이 있었는데 재밌는 건 예측한대로 17-18세기경 유럽에서 선교사가 란위에 표류하여 천주교를 전파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도 섬 여기저기에 천주당(성당)과 십자가가 보였었던 모양이다.

투어를 마치고 허리를 편 뒤 고개를 들어보니 지붕이 보였다.. 
마치 아스팔트라도 깔아놓은 모양새이다... 왜 이리 검은색을 좋아할까...

좀 멀리서 찍어 본 가옥... 그야말로 땅 아래 '버로우'되어 있다..

가옥 앞에는 비석 같은 것들이 가지런히 박혀 있었는데, 
아들이 태어날 때마다 하나씩 꽂는 거라고 들었던 거 같다.. (이 역시도 가물가물 ㅠ)
원주민들에게도 남아선호사상 같은 것이 있었나 보다..

그렇지만 나에게는 바다의 뷰를 바라보기 좋게 만들어진 벤치와도 같았고 그런 기세로 기념 사진을 찍어보았다...
(물론 아주머니의 윤허를 받고 촬영에 임했다 ㅎ 아마도 남아선호사상에 대한 반감 때문에 별 저항 없이 사진 찍게 허락하시지 않았을까 하는 재밌는 생각도 해보았다.) 
손에 들고 있는 사진은 아주머니께서 기념으로 주신 란위 사진 엽서

이게 벤치(?)에 앉아 바라본 전경..
옛날에 저 앞 집이 없었다면 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정말 멋진 뷰이지 않았을까?!

딱히 아름답다고 할 순 없었지만 이렇게나마 란위 원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어 굉장히 소중하고 알찬 경험이었다. 
차로 돌아가는 길에는 팔팔하게 뛰놀던 돼지들이 옹기종기 모여 떡실신한 채 낮잠을 자고 있었다... 

바다로 이어지는 내리막 길과 그 끝에 있는 바다 그리고 섬이 독특한 광경을 연출해 찍어보았는데,
그 앞에 널부러져 있는 돼지, 닭, 염소들이 인상적이다...

집 울타리 겸 화분으로 쓰였을 법한 배 모양의 조형물...

아이스박스 같은 게 달려 있는 걸 보면 실제로도 쓰는 어선 같은데 왠지 좀 엉성하기도 하고 실용적인 목적 치고는 지나치게 화려해 보이는 배...

이 집의 담은 무슨 원통형 돌을 저렇게 겹겹이 쌓아서 만들었는데 비오거나 하면 우르르 무너질 것 같기도...
여튼 '열정'이라고 적힌 우편함이 정겹다.
란위 사람들은 정말 빨강, 파랑, 하양을 좋아하나보다.

이제 오후 2시 타이동으로 돌아가는 배편을 타기까지 란위에서의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만 섬 시리즈-란위(9)] 해돋이, 동칭 비경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