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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딘닷 Mar 31. 2019

[중국여행(15)] 통리의 명물-일원이당삼교

수향 마을 통리의 구석구석을 걷다

'통리(同里)'라는 지역명에는 재미난 스토리가 있다.

나름 중국 강남 지역에서도 부자 동네였다고 하니, 서울 강남의 압구정/청담되는 지역 정도 되겠다.


'동양의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통리(同里)는 강남의 대표적인 물의 도시다.


8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마을을 둘러쌌고, 동서남북으로 물길이 이어지고, 고(古)운하와도 통한다.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서 서쪽으로 80km, 쑤조우에서 남쪽으로 18km, 우장(吳江)시에서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작고 아담한 옛 마을이다.
통리는 예로부터 부자 동네였다. 얼마나 잘 살았으면 이름까지 '부토(富土)'였을까. 
이름 탓에 수난도 겪었다. 당나라 때 이름이 너무 사치스러우니 바꾸라는 엄명이 떨어져 '구리 동'자를 쓴 '동리(銅里)'로 고쳤다. 송나라 때는 다시 옛 이름 '부토'에서 '부' 위의 점 하나를 지우고, 아래쪽 '밭 전'은 '흙 토' 위로 옮겨 '동리(同里)'란 새 이름을 만들어 지금까지 쓰고 있다.

[이창호의 차이나스토리] (24) '동양의 작은 베니스' 통리


항상 시간에 쫓기듯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지만 

한국 회사 같이 휴가 기간도 짧고 그마저도 길게 쓰기 어려운 곳에서는

(사실 그것보다는 나같이 못 가본 곳에 대한 호기심이 강한 녀석에게는)

시간은 언제나 부족하기 마련이다.ㅠ

발걸음을 재촉하는 수밖에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남송부터 청말까지 통리에선 장원 1명과 진사 42명, 문무 급제자 93명이 배출됐다. 인구 5만8000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선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다. 
통리 사람들에겐 또 다른 자랑거리가 많다. 
200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강남고전원림의 전형적인 형태를 간직한 '퇴사원(退思園)'과 명청 시대의 옛 건축물들이다. 통리는 '일원이당삼교(一園二堂三橋)'로 통한다. 퇴사원, 숭본당(崇本堂)과 가음당(嘉蔭堂), 태평교(太平橋) 길리교(吉利橋) 장경교(長慶橋)가 바로 그것이다. 

[이창호의 차이나스토리] (24) '동양의 작은 베니스' 통리


통리는 한국으로 따지면 경북 안동 같이 명청시대의 문인과 부호들이 저택을 지어놓고 살아 문화 유산이 많고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고...

강남고전원림은 수저우의 '원림'과 이곳 통리의 '퇴사원'에 잘 보존되어 있어 나란히 세계문화유산에도 등재되어 있다고 한다.


통리를 한 마디로 정리 요약하면

일원이당삼교(一園二堂三橋)

일원: 퇴사원

이당: 가음당, 숭본당

삼교: 태평교, 길리교, 장경교


그래서 첫 행선지는 우리가 있었던 곳과 가장 가깝기도 하고 원톱으로 꼽히는 퇴사원으로 정했다.



고희대(古戲台)


가는 길에 광장이 보였고 가운데에는 전통 가옥 형태의 조그마한 무대가 있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고 노래 소리가 나길래 가보니 공연을 하고 있었다. 

'로미오와 줄리엣'이 Montague와 Capulet 두 앙숙 가문 사이에서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라면, 

'양축(梁祝)' 전설은 양씨 가문의 양산백과 축씨 가문의 축영대간의 비극적 사랑 이야기를 담은 중국판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하네요. 

줄거리가 궁금하신 분은 아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969947&cid=43792&categoryId=43794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말다툼을 하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퇴약볕에 계속 있기도 버거워서 퇴사원으로 길을 재촉했다.




퇴사원(退思園)


퇴사원은 쉽게 말하면 청나라 시대의 퇴계 이황 같은 사람이 세운 병산서원과 같은 곳으로 200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병산서원 (출처 :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YB2l&articleno=7459)


병산서원이 주변의 경관을 극대화하여 서원을 지은 반면, 퇴사원은 '원림' 인공 정원이라는 점에 차이가 있겠다.


원림은 중국 쑤저우 시내의 정원 건축을 말한다. 대부분 개인 정원이다. 기원전 514년 춘추전국시대의 오나라 도시를 건축할 때부터 시작되어 오대에 형성되고, 송대에 이르러 성숙되었으며, 명대에 발달되어, 청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위키피디아


'퇴사'란 이름은 '좌전'에 기록된 '진사진충(進思盡忠) 퇴사보과(退思補過) - 관직에 나아가선 충정을 다하는 것만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지난 날의 불충을 채우는 것만 생각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청나라 광서 10년(1884년) 내각학사를 지낸 뒤 퇴임한 런란셩(任蘭生)이 은화 10만량을 투자해 광서 11년부터 13년(1885~1887년)까지 원림을 만들었다.
퇴사원은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두루 능통했던 웬롱(袁龍)이 설계해 2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했다. 정(亭) 대(臺) 루(樓) 각(閣) 랑(廊) 방(坊) 교(橋) 사(?) 청(廳) 당(堂) 방(房) 헌(軒) 등 모든 건축물을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연못을 중심으로 배치했다.

[이창호의 차이나스토리] (24) '동양의 작은 베니스' 통리


안으로 들어가자 사방이 회랑이 있는 2층 건물로 둘러 쌓인 뜨락이 나왔다.

중국에서도 나름 남쪽인 '강남'이라곤 하지만 열대 화초들이 있는 것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주었다. 



유난히도 푸르렀던 8월 통리의 하늘

건물 안으로 들어가면 퇴사원에 대한 전시품들이 있었다.

퇴사원을 위에서 보면 이런 느낌으로 우리가 방금 지난 곳이 10시 방향에 좁은 사각형으로 뚫려 있는 곳이다.

가장 하이라이트가 되는 곳이 바로 연못이 있는 정원이다.

중간에 이런 공간을 지나 저 동그란 문 너머로  곧바로 정원이 나온다.


건물들 사이에 둘러쌓여 답답했던 것과는 달리 뻥 뚫리는 시야만큼이나 시원해진다.

모든 건축물들이 마치 연못 위에 떠있는 것처럼 설계했다고 하는데... 이쪽 사진으론 잘 모르겠다 ㅎㅎㅎ

이 사진을 보면 마치 건물이 배 위에 띄워진 것 같이 보이긴 한다.

어렸을 적에 한국 전통 정원을 보며 우리나라 옛 조상님들은 자연미를 중시하여 최대한 자연에 가깝게 지었다고 하는데,

확실히 고즈넉한 맛은 있지만 중국/일본의 인공적인 정원도 자연에선 쉽게 볼 수 없는 인공미가 돋보이는 건 인정해야 할 듯..

여길 나 혼자 조용히 걷고 있자면 나름 낭만 있었겠지만 중국은 역시 어딜 가나 관광객들이 많아 정신이 하나도 없다 @@ ㅎㅎㅎ

연못을 중심으로 한바퀴 삥 둘러보았다.


퇴사원 정원의 특징은 누각을 연못 여기저기 (방향, 높이)에 지어놓아서 연못을 다방면 다각도로 음미할 수 있다는 게 특징이었다. 

몇 장 또 모델 포스 뿜어가며 사진 박아본다.




다들 더위와 사람들로 지쳤는지 표정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 ㅎㅎ (특히 두 사람은 거의 밤 새고 여길 왔으니...)


연못 주변의 건물들 옮겨다니는 중...





퇴사초당을 보고 이렇게 마무리...

청나라 때 지어져서 그런지 의자라든지 약간의 근대적 세련미도 느껴졌다. 

사방을 둘러싼 건물로 인해 드리워진 그림자와 파란 하늘이 대조를 이룬다.

다음 장소로 이동~~



가음당 (嘉荫堂)


가음당의 특징은 회랑이 바로 정문으로 연결된다는 점!

청조가 끝나고 중화민국 시절에 부호 류병남이  1922년 축조한 건물로, 풍수지리가 좋다고... 

지붕이 딸린 회랑과 이어져 있는 가음당의 출입구





안으로 들어가면

또 사방이 건물들로 둘러쌓인 공간이 나온다.

아마도 여름에는 엄청 더운 이 지역의 특성을 감안해 그늘을 만들기 위해 이렇게 2층으로 건물을 빙 둘러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건물 안은 비교적 선선했던 듯 하다.


냉큼 2층으로 뛰어올라가서 뜨락을 내려다 보았더니

센스 있는 ㅋㅂ님께서 포즈를 잡아 보라며 사진을 마구 찍어주었다.ㅎㅎ

목을 축이기 위해 샀던 망고 쥬스도 보인다 ㅎㅎ 

동남아에서 먹는 생과일을 직접 짠 듯한 고급스러움은 일도 느껴지지 않는 그럼 맛의 쥬스였다...ㅠ


이 날은 운 좋게 파란 하늘이었지만 우중충한 날에 가면 더욱 어둡고 우울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답례로 ㅋㅂ님을 찍어줌 ㅎㅎ

정말 뜨거운 햇살을 피하기 위한 그늘을 만들기 위해 그랬을지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오히려 이렇게 높다락히 둘러진 담벼락이 굉장히 답답해 보였다.









강남 지역의 응접실은 대부분 뒤에 병풍 같이 그림이 있고

그 앞에 의자 두 개가 나란히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삼교 (三橋)


가음당과 숭본당 사이에는 물길이 흐르고 있는데, 이것이 세 갈래로 나뉘고 각 물길을 건너는 세 개의 석조 다리 -  태평교(太平橋), 길리교(吉利橋), 장경교(長頸橋)-가 있는데, 이를 '삼교'라고 부른다. 

통리가 수향마을임을 가장 확실하게 느끼게 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혼인날 신랑 신부가 탄 꽃가마가 다리 3개를 세 번 돌면 백년해로와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마을 풍속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커플들끼리 손 잡고 세 다리를 건너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댔던듯..

한 갈래였던 물길(좌)이 두 갈래로 나뉘어 진다(우)



세 물길이 갈라지는 교차지점에는 가마우지가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 뱃사공들은 가마우지를 이용해 고기를 잡았던 모양...

세 물길 중 마을을 가로지르는 쪽에는 홍등이 늘어선 식당가가 있었다.

위에는 아름드리 나무 이파리들이 캐노피를 이루어서 더 운치 있어 보였다.


저녁 때 홍등에 불이 켜졌을 때 와도 참 이쁠 듯...





숭본당(崇本堂)


1912년 지어졌다는 숭본당은 가음당과 함께 통리를 대표하는 2대 명청시대의 고택이라 할 수 있다.

4개의 대문과 25칸의 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뒤로 갈수록 건물이 높아져 '승승장구'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고택 안은 두 사람이 몸을 비켜야 지나갈 정도의 좁은 회랑이 미로처럼 나 있었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분위기를 홍등이 가까스로 살려내고 있는듯한 느낌이었다.


한국은 저택 바닥이 대부분 흙으로 되어 있는 반면 중국의 고택은 바닥도 돌로 처리를 했다.

자연적인 맛은 떨어져도 깔끔한 맛은 있었다.

이때가 한 3시쯤 됐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4시쯤까지 버스터미널로 가서 상해로 가는 버스를 타야했으므로

그 전에 마지막으로 진주탑을 보러 가기로 해서 발걸음을 서둘렀다.



진주탑(珍珠塔)


통리 마을의 북부 끄트머리에 위치해 있는 이곳 뒤로는 통리호수에 위치한 라성주라는 섬으로 가는 통리운하에 접해 있다.


진주탑을 생각하면 뭔가 진주로 만든 탑이라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 그렇지는 않고, 

명나라 고관의 고택인데 이 집 딸인 '취아'라는 처자와 몰락한 가문 서생 '방경'이 나름 신분을 뛰어넘는 가슴 아픈(?) 사랑을 했던 장소라고...

입구에는 '송석오원(松石悟園)'라고 적혀 있고 

이런 길을 쭉 따라 가면...


명나라 고관(어사)이었다고 하는 진왕도의 가문을 나타내는 '진'가의 깃발이 보인다.

여기가 바로 진어사의 저택

대문을 들어가면 바닥이 돌로 된 뜨락이 나온다.

저택에 들어서자마자 저택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옛 날 화풍의 약도가 있었다.

아주 부티 나게 금박지로 만들었는지 번쩍번쩍 거렸다.

동쪽이 우리가 진입한 고택 지구이고 서쪽이 정원이 위치한 동산, 그리고 북쪽에 보이는 것이 고사당이라고 한다.

이 집 딸 '취아'가 탔을 신부의 가마를 재현해 놓았나 보다..

고택 구석구석을 들어가 보았다.








꽤나 부자였는지 dining room과 kitchen도 크고 잘 정비되어 있었다.


식사 장소는 마치 레스토랑처럼 작은 식탁들이 여러 개 있는 것이 신기...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여기가 진주탑의 북쪽 경계로 이 문 밖이 곧 나루터이다. 여기서 배를 타고 라성주 라는 섬까지 갈 수가 있다고..


근데 내가 갔을 때는 사람도 없고 배도 안 다니는 듯 보였다...






배가 지나다녔을 운하...

통리의 다리는 기본적으로 아래로 배가 지나다녀야 하므로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 게 많았다.

여기는 배를 주차해 놓는 주차 공간?!

떨어진 수양버들 잎이 마치 요리조리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뒷 정원으로 발길을 옮겼다.

퇴사원의 연못보다도 스케일이 컸다.



저런 정자에서 차 한 잔 하고 연못 바라보며 유유자적하는 것도 운치 있을 듯..

근데 매일 그러면 좀 고리타분하려나?!

한 켠에는 마치 배가 연못 위에 떠 있는 듯한 모양의 건물도 있었다...

파노라마 뷰...



경락당(耕樂堂)


통리 운하 체험을 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경락당...

이곳은 명나라 시대 때  5진(아마 저택의 크기layer를 세는 단위였던듯) 52칸의 으리으리한 사저였는데 세월의 풍파를 거쳐 지금은 3진 41칸만 남았다고 한다.

나름 그 규모가 장난 아니라고 하여 굳이 찾아가 보았다~

경락당 초입에는 아주 정교하게 조각한 목상들이 있었다.

이런 모양의 나무를 어디서 구해서 이렇게 역동감 있게 만들었는지...감탄이 절로!


뜨락을 둘러싸고 2층 저택이 ㄷ자 모양으로 있었는데, 고대 건축물이라기보다는 근대의 느낌이 났다.

왠지 모르겠지만 오키나와 같은 남국에 온 듯 한 느낌이 들었던 건 아마도 뜨락에 있었던 저 열대 식물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들고 있는 저 망고쥬스...ㅎㅎㅎ (진짜 맛 없었나 보다...)

안에는 옛 침실 등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었다.

진주탑이나 퇴사원에 비해 규모는 좀 작지만 이곳에도 연못을 중심으로 한 정원이 있었다.

수향마을이라 그런 지 이 지역의 정원 양식에는 꼭 연못이 있었다..

이곳도 원래는 사저였다가 그 이후 전란 시대를 거치면서 학교 등으로 달리 쓰였다가 국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다시 관리를 받아 현재에 이른다고 기억하고 있다..

건물 윗쪽에서 바라본 정원.. 근데 저 뒤에 둥그런 사일로 같은 건물은 대체 뭘까...?!



통리를 대표하는 일원이당삼교를 보며 느낀 것은 

통리는 명청시대의 부호들이 저택을 짓고 사는 일종의 강남 지역의 고대 중국판 베버리힐즈(?) 같다는 느낌..

이 곳 사람들은 정원 그 중에서도 연못이 있는 풍경을 사랑했다는 사실...


운하가 있는 도시여서 그런가 남녀간 로맨스 전설이 있었고,

그 로맨스는 양축 전설 그리고 진주탑의 취아 얘기에서도 그랬듯 가문과 신분을 넘은 안타까운 러브스토리였다는 점...

이를 마치 보완이라도 하듯 삼교가 있어 여기를 건너면 백년해로를 한다는 전설이 재미있었다.


내가 생각했던만큼 웅장하지는 않았지만 

고즈넉한 옛 마을의 정취를 느끼며 소소하게 구석구석을 둘러 보는 재미에 있어 통리는 내가 예상치 못한 추억을 선사한 것 같다...

운하가 있는 옛 중국 시골 마을에 온 듯한 그런 편안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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