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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Aug 21. 2021

술? 좋지!

https://youtu.be/nINHDrkNvoU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는 여름이다. 해는 점점 짧아지는데 더위는 전혀 짧아질 줄 모르나보다. 더위는 금요일의 기쁨도 행복도 다 녹여버렸다. 이런 날의 퇴근길은 그저 터벅터벅 거릴 뿐 어떤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이런 날이면 술 한잔이 생각난다. 땀내나는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마시는 그 한 잔이 간절하다.


   신입생 입학을 하던 때가 기억난다. 나의 스물의 처음은 공돌이로 시작했기에 주변에는 남자 뿐이었다. 동기 중에 여자라고는 딱 한명 뿐이었기에 특히나 술자리가 더 많았다. 남녀의 비율이 뭐가 그렇기 중요하겠는가? 신입생의 시작은 술로 시작하여 1학기 학점을 받고 좌절하면서 마시는 술로 끝나는 법인데. 다만 전투적으로 술을 마셨다는 것이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을 스무살이 지나며 끊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종교적인 신념도 있었지만, 이렇게 술을 마시다가는 죽겠구나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기억하는 유년시절 아버지의 모습은 늘 취해있었기 때문이다. 난 그 모습이 싫었었다.


   술을 마시고 들어온 날이면 늘 집 안에는 큰소리가 났다. 싸우는 소리, 거기에 겁에 질려 우는 두 자녀의 울음소리. 한 번은 그게 너무 싫어서 집을 뛰쳐나가 동네 구멍가게 평상에 앉아 서럽게 운적이 있다. 그게 내 나이 5살, 첫 가출이었다. 어린 나의 가출은 아버지에게 적지않은 충격이었었나보다. 그 이후로 집에서는 더이상 큰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늘 술은 드셨다. 늘 새벽같이 출근하시고 늦은 밤 술을 마시고 귀가하셨다. 주말이면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고 누워계셨기에 나에게서 아버지를 뺏아간 존재가 술이라고만 느껴졌다. 나는 그런 술과는 친해질 수 없었기에 절교했던 것이다.


   "사회 생활하려면 술 한잔은 할 줄 알아야지" 주변의 이런 말들을 그저 흘려보내고 살던 내가 다시 술을 입에 대기까지 1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회로 나오고 삶이 점점 무겁게만 느껴지던 서른 살이 넘어선 어디즘음에 나는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내 어린 시절의 아버지 나이가 된 지금 나는 술과 절친이 되었다. 술이 아버지를 빼앗았다고 생각했고, 술 때문에 큰 소리가 난다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아버지가 토로하는 소리를 들어주는 이는 술 밖에 없었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토닥이는 이도 술밖에 없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나도 가끔 아버지의 옛친구를 찾는다. 그리고 누구도 들어주지 않는 이야기를 꺼내 놓기도 한다.



   술의 대한 좋은 기억은 여행 중에서 시작되었다.무거운 배낭에 오리털 잠바를 여미고서 찬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던 라트비아 리가에서의 뱅쇼한 잔은 오후 4시의 빠른 저녁 노을과 잘 어우러져 뱅쇼보다는 옅은 연보랏빛 맛이었고, 크리스마스 날 문닫은 상가 사이에서 겨우 구한 이네딧담 맥주를 마시며 발코니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의 하늘은 맥주보다 짙은 주황색이었다. 여행자들은 그저 스쳐지나간다는 마케도니아 스코페에서 처음 마셔본 와인은 밤 하늘에 가려져 조용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며 한 참을 눈물 나게 하였고, 인도 마날리에서 친절했던 호스트가 매일 밤마다 건낸 올드몽크 한 잔에 그 날의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아마 술이 아니었다면 보지도 듣지도 못했을 것들이리라. 그러기에 여행 중에 마시는 술은 가장 달고 따듯하게 느껴진다.


   이제 다음이면 내가 내릴 정류장이다. 어서 빨리 이 열차가 다음 역에 도달았으면… 그리고 가끔 홀로가는 선 술집의 의자가 접히지 않고, 불이 꺼지지 않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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