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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Oct 21. 2021

가족과 함께 크리스마스

   여동생이 하나 있다. 20대 때의 나는 동생과 교류가 많지 않았다. 서로의 관심사도 달랐으며, 공감할 것도 없었다. 쉽게 말하면 친하지 않았고, 서로에게 전혀 관심도 없었다. 이렇게 말하면 주변에서는 '남매들은 다 그렇다.' 내지는 '친남매는 원래 그런 거다.'라는 말들을 던지곤 한다. 일리있는 말이다. 가족이라는 유대감은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난 전혀 없었다. 그렇다고 심하게 싸웠던 적이 있던가? 그런 적도 없다. 그저 가족보다는 다른 곳에 더 집중했던 것 같다. 내 삶에 말이다. 20대가 넘어서는 가족과 식사도 잘하지 않았으며, 가족행사에도 전혀 참여하지 않았다. 내가 속한 학교, 모임 그리고 그곳 행사나 이벤트에만 충성했다. 그러면서 유대감을 상실한 것은 아닌가 싶다. 난 좀 유별났었던 것 같다. 그러다 30대가 넘어서면서부터 어느 날 갑자기 동생이란 존재가 느껴졌다. 


   동생은 20대 후반부터 해외로 떠돌아다니면서 삶을 살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에서 그리고 당시에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동유럽에 있던 나는 같은 유럽이라는 덩어리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생에게 연락을 했다. 여행을 떠나올 때도, 초점 없는 눈으로 인도를 방황할 때도 동생에게 먼저 연락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런 내가 같은 땅덩어리로 분류되는 곳 안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연락할 수 있는 유대가 생긴 것이다. 그동안 그게 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가족 구성원으로서 일탈만해왔기 때문에 수화기를 들어 버튼을 누르는 것에 대한 적절한 이유가 없었나 보다. 동생은 "너 잘 곳은 충분히 있어 여기 들려."라며 바르셀로나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바르셀로나로 이동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하자 동생이 나와있었다. 타국에서의 삶은 가족을 그리워하게 만들었는지 서먹서먹했던 동생은 나를 반갑게 맞았다. 내 보조가방을 받아 들고 동생은 앞장서서 살고 있는 집으로 걸어갔다. 람브라스 거리를 좀 지나 고풍스러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바르셀로나가 이리 아름다운 도시였던가? 아니면 가족과 함께라서 더 아름다운 것인가? 12월 말에 들어섰지만 바르셀로나는 따듯했다. 입고 있던 패딩은 다시 가방 안으로 들어갔으며 좀 더 가볍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다른 도시에 도착하는 날이면 주변을 살펴볼 겨를 없이 숙소부터 찾는 것이 일이었다. 그럴 때면 항상 분주했으며 내 시선은 GPS 지도와 보도블록 그리고 건물의 간판만 바라볼 뿐이었다. 도시의 전경은 눈에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두리번거리기 바빴기 때문이다. 바르셀로나에서 역시 나는 두리번거리기 바빴지만, 그것은 도시 전경과 사람들을 보기 위해서다. 람브라스 거리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오토바이에 루돌프 뿔을 붙이고 산타 옷을 입은 라이더가 지나가기도 하고, 저마다 크리스마스 액세서리 하나쯤은 걸치고 있었다. 아! 내일이면 크리스마스였다. 

  

   크리스마스에는 늘 교회 행사로 바빴으며, 친구와 놀기에 바빴다. 항상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한 날이었다. 크리스마스라는 핑계로 매번 같은 사람들을 한 번 더 만나고, 매주 드리는 예배를 한 번 더 드렸던 것뿐이다. 그 의미는 상실된 채 그저 하나의 행사가 가득한 휴일로 말이다. 그런 크리스마스에 나는 동생과 함께 집에서 식사를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많은 상가들이 크리스마스를 전후로 1주일간 문을 닫았다. 특별히 갈만한 식당도 없었으며, 동생말로는 운영하는 식당들 모두 맛은 없는데 비싸기만 한 식당들 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집에서 가장 한국적이게 식사를 나눴다. 

   동생과의 식사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요리를 잘하는 줄도 몰랐으며, 꼼꼼하게 반찬을 준비해서 먹는 스타일인 줄도 몰랐다. 대충 라면에 공깃밥만 말아서 먹거나, 메인 음식 하나만 해놓고 먹는 내 식습관과는 상당히 달랐다. 마치 어머니처럼 밥상을 준비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고봉밥이 내 앞에 놓였다. 따듯했다. 밥 옆에 국을 놓아주었다. 숟가락을 들어 국물 한 입 떠먹었다. 포근했다. 상위에는 여러 반찬들이 놓였다. 밥 한 술을 떠서 입에 넣고 여러 반찬들을 입안에 밀어 넣었다. 보드라운 풍미가 입안에서 터졌다. 그렇게 동생과 크리스마스 식사를 나누고 있었다. 


   우습지 않은가? 단 5분 거리 사이에 살아도 잘 찾아가지 않는 내가 가족을 만나기 위해서 천여 키로가 떨어진 헝가리에서 스페인까지 쉬이 달려갈 수 있다는 것이 말이다. 거리가 적당하면 유대감도 적당히 유지하려 하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유대감은 더 짙어졌다. 유대와 거리는 반비례하는 모양이다. 크리스마스의 선물과 같은 식사는 우리 남매의 사이를 더 가깝게 하였고, 전에 없던 포근함으로 서로를 독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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