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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Oct 18. 2021

우울함의 소중함

   나의 불가리아 소피아에서의 인연은 단 3일로 끝이 났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알고 지냈던 것처럼 서로를 걱정하고 각자의 여행을 응원했다. 나를 제외한 동질감이 느껴지는 청년과 두 단아한 여성은 여행의 끝 지점에 서있었고, 나는 여행의 3 쿼터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여행했던 곳들을 추천해주고, 정보도 교환해주면서 조금 더 달려야 하는 내 여행에 힘을 실어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자신이 다녀온 그리고 아직은 내가 가보지 못한 여행지들을 추천해주었다. 세 명 모두 입을 모아서 추천했던 곳이 바로 마케도니아 오흐리드였다.


   사진으로 처음 접한 오흐리드는 아름다운 호수 마을이다. 푸르른 호수와 높은 산들로 둘러 쌓인 이 마을은 그저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다. 다만, 내가 도착했을 당시에만 제외하고 말이다. 차가운 겨울 협곡을 지나 촉촉이 젖은 산을 넘어서 오흐리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배낭 구석에 박혀있던 우의를 꺼내 입었다. 다른 짐에 밀리고 밀려서 꼬깃꼬깃해진 우의를 억지로 폈다. 빗방울은 거세진 않았지만 가려지지 않은 얼굴과 손에 떨어질 때마다 차가움이 온몸에 번졌다.

   도착한 오흐리드의 날씨는 구름마저 내려앉아 있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사진에서 보던 아름다운 마을과 보석처럼 찬란하게 빛나던 호수는 없었다. 구름이 산과 마을 그리고 호수도 모두 살라먹었다. 한 낯에도 빛을 가리기에 어두움이 가득했다. 계속 내리는 비는 축축함을 더했고, 내 모든 것들은 눅눅해져만 갔다. 이런 날씨에도 호반은 아름다울 거라는 기대에 호숫가를 매일 찾아갔다. 그러나 호수와 하늘의 경계가 보이지 않을 만큼 구름은 내려앉아 있었으며, 호수는 구름을 한껏 끌어안고 있었다. 오흐리드는 나를 우울의 심연으로 잡아당기고 있었다.    



   젖은 밴치에 앉아서 우울한 호수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사라졌던 호수와 하늘의 경계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구름에 가려서 형태가 엉망이었던 산도 마치 신기루처럼 보일 듯 말 듯 눈에 들어왔다. 호숫가 위로  물새들이 날아다니고 있었고, 우울한 날씨와 어울리지 않는 백조가 떠 다니고 있었다. 나는 더 가만히 젖은 밴치에 앉아 호수를 바라보았다. 비는 천천히 떨어져서 호수를 노래하게 하였다. 귓가에 퍼지는 노랫소리와 호수의 작은 움직임은 바람에 나풀대는 숲의 소리와는 달랐다. "아! 우울함이 나에게 이리 운치 있는 감정이었던가?"    

   20대 때 나는 종종 우울함을 즐겨왔다. 혼자인 것을 즐겼고, 아무도 없는 조용한 산속으로, 섬으로 숨어들기도 했다. 그럴 때면 늘 쓸모 있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혼자 있을 때 말이다. 그러기에 어떤 일을 기획하기 전에는 항상 아무도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또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때, 너무 머리가 복잡해서 어떤 생각도 진행되어 나가질 못할 때 나는 아무도 없는 새벽의 밤 길을 홀로 걸었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생각들이 튀어나오곤 했고, 엉켜버린 사념의 끈이 풀어지기도 했다. 그렇다! 나에게는 우울함은 창의적인 감정이었고, 생각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그 우울이란 것에 잠식당했다. 마치 이 아름다운 호수를 흐린 하늘이 집어삼킨 것처럼 말이다.

   젖은 밴치에 앉아서 이제는 호수 대신 나 자신을 들여다보았다. 정신없이 보낸 20대가 너무나 아까웠고, 자존감이 바닥이 된 30대가 너무나 불쌍했다. 어떻게 살아갈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따위의 고질적인 질문들을 호수 위로 던졌다. 답을 찾지 못했더라도 운치 있는 호수를 보며 조급해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간다. 내 우울했던 지금의 삶도 깊숙이 들여다보면 운치 있는 삶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축축해진 바지를 밴치에서 었다. 일어남과 동시에 비어 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우의와 두꺼운 겉옷을 벗고 얇은 반팔 티만 입었다.  상태로 집으로 걷기 시작했다. 타국에서 무슨 청승이겠냐 싶겠지만, 그날의 분위기가 나를 그저 그렇게 만들었다. 비는 점점 굵어져 갔고,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흠뻑 젖었다. 마치 호수에서 침례라도 받은 사람처럼 말이다.

 

 

   창가로 들어오는 아침의 햇 볕에 눈이 부셔 잠에서 깼다. 이곳 오흐리드에 온 이후로 일주일의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볕을 본 적이 없었다. 방문을 열고 나오자 게스트하우스의 호스트도 신이 난 듯 나에게 오늘은 날씨가 맑다면서 "너를 위한 태양이 떠올랐어."라고 말해주었다. 나는 내일 떠나는데 자신의 진정한 멋을 발견한 친구에게 오흐리드는 자신의 가장 아름다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듯했다. 유럽의 밤은 빨리 찾아오기에 서둘러 호수가로 달려갔다.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거리의 사람들, 호수 위의 수많은 물새들 정상에 눈이 쌓여있는 산들 그리고 고성과 성당들, 아름다운 붉은 지붕의 집들과 살짝은 무너져 내려서 더 고풍 있는 전통 가옥까지 모든 것이 아름답고 완벽하게 눈에 들어왔다. 이 날을 기다렸다. 처음에는 이틀, 그리고 사흘 그렇게 일주일의 시간 동안 나는 이 아름다운 도시를 기다렸다. 그렇게 바라던 하루를 모두 호수 주변에서 보냈다. 오후 네시가 넘어섰을 때 태양은 호수 저편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푸른 하늘에 황금빛으로 물든 태양은 호수를 더 찬란하게 하며 사라져 갔다.



   나는 호수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또는 호수가 나에게 말하고 싶은 지금의 감정이 우울함 뿐이라서 줄곧 수묵화 같은 운치만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다림을 포기하고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어린아이를 놀리듯 오흐리드는 가장 마지막에 가장 찬란한 자신의 모습을 선물로 내어놓았다. 풀이 죽었던 내 어깨를 두드리듯 말이다.

   내가 우울함을 좋아한다고 했던가? 그럴 수도 있다. 아니 그렇지 않다. 나를 좀 자세히 들여다보니 우울한 감정이 들 때, 머리가 정신없을 때, 너무나 힘들 때 그것들을 지우기 위해서 혼자가 되었던 그 당시를 우울함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저 우울함에서 도망쳐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애쓰지 말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혼자임을 선택했던 것이고, 생각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서 나는 걷고 또 걸었던 것이다. 조금은 고민을 멈추고 싶어서 말이다. 그러다가 생각이 풀리고, 마음이 좀 편안해지면 호수의 아름다운 빛처럼 머리도 밝아지곤 했다. 나는 우울함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저 그 벗어나는 과정을 좋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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