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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Oct 06. 2021

기대하지 않은 하루

   이스탄불의 태양은 밝았으며, 하늘은 푸르렀다. 검푸른 바다는 빛의 밝음과 하늘의 푸름을 품고서 코발트블루 빛으로 찬란하였다. '아름답다.' 터키의 바다를 바라보며 조용한 혼잣말을 내뱉었다. 둥근 동산 위에 흩어놓은 듯한 아름다운 서양식 건물들 그리고 곳곳에 보이는 모스크들은 오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스탄불은 나로 하여금 거리를 걸으면서 연신 아름다움을 표현하게 했다. 

   나에게 터키란 검은 수염의 술탄의 국가로만 인식되어왔다. 방문하기 몇 달 전 테러의 위험이 있는 도시였기에 나에게는 거칠고, 무서운 나라 중 하나였다. 늦은 밤 공항에 도착했을 때도 덩치 큰 검은 수염의 터키인들을 경계하며 홀로 조심히 도심으로 향하였다. 


   공항버스가 도심에 도착하였고 어느 정도 아침의 미명이 피어올랐다. 이른 새벽이라 공기가 차갑게 몸속에 스몄다. 배낭 깊숙한 곳에 박아 놓았던 쓸모없던 잠바를 꺼내어 입고서 안개조차 없는 거리를 조용히 걸었다. 그저 발자국 소리만 사복 사복 들릴 뿐 조용했다. 고요함을 깨고 멀리서 트램이 오는 소리가 침묵 속에 퍼지며 가까워진다. 나는 아직 차가운 새벽의 공기가 익숙하지 않았기에 트램에 올랐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밤의 기운은 아침의 밝음에 물러갔고, 나의 두려움도 조금씩 드러나는 아름다움에 사라져 갔다. 어느덧 호스텔에 도착했을 때 나는 청순한 이곳의 찬란함에 반해 절로 아름다움을 고백하게 되었다. 이 아름다움이 그저 스쳐 지나가지 않기를 원했기에 호스텔에 짐을 맡기고 바로 갈라파 다리로 달려갔다. 


   아직 뜨지 않은 태양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은 이미 많은 현지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은 생계를 위하여 이 대교 위에서 낚싯대를 던져놓고 한 없이 바다를 바라본다. 바닷바람에 몸을 녹이려 아버지를 따라나선 어린아이들은 애처롭게 타들어가는 드럼통 속 모닥불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떠든다. 누군가의 바구니에는 많은 고기들이 있지만, 어떤 이의 양동이에는 몇 마리의 뿐이다. 표정에서 느낄 수 있는 양동이 주인의 허탈함은 마치 그 안에 있는 생선과 같다. 동이 트기 시작한다. 허탕 친 조사의 마음을 모르는 듯, 자신의 일을 최대한 열심히 하며 태양은 떠오른다. 붉은빛은 검푸른 바다와 뒤엉켜 한 폭의 짙은 유화 그림을 보는 듯하다. 빛으로 인해 모양을 잃어가는 낚싯대는 하늘로 곧게 뻗어 있다. 크게 휘어지길 바라는 주인의 마음은 모르는 체 모든 낚싯대는 대쪽처럼 굽힐 줄 모르더니 그림자로만 남는다. 



   하루의 시작이 이렇듯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의 하루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은 그저 배낭을 메고 여행을 나선 방랑자이기 때문인가? 저 양동이의 조사도 나처럼 이 아침을 아름답다고 말하고 있는가? 혹, 나에게 아름다운 이 아침이 가벼운 양동이를 들고 집으로 향해야 하는 저이에게는 잔인한 아침일 것이라.

   한국의 아침에서 나는 사람들 사이에 갇혀 지하철을 탈 수밖에 없었고, 아름다운 하늘보다는 버스를 놓칠까 봐 지나가는 차량만 바라보며 길을 걸었다. 그러다 타야 하는 버스가 눈앞에서 지나가면 숨을 다해서 달렸다. 가쁜 숨에 구부러진 체 종일을 보내다 허리를 피면 아름답던 아침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남이 보기에 처절하게 산 것도 아니었다. 성실하게 살았을 뿐이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철이 없을 정도로 완성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런 나의 일상도 처절했다. 여행을 시작하고 나는 하루의 시작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그 하루는 늘 새로웠다. 

   나는 이곳 이스탄불에서 주어진 시간을 만끽했다. 다시는 오지도, 얻지도 못할 지금을 충분히 즐긴다. 스스로 얽매여왔던 수많은 끈들이 느슨하게 풀어짐에 어색하기만 하다. 익숙하지 않은 오늘을 채우기 위해 쉴 새 없이 걸어 다니다가 걸음을 멈추고 분수대 앞에 앉았다. 마치 경험론의 철학가라도 된 듯이 사색에 빠졌다가 기대하지 않았던 행복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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