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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Sep 27. 2021

지금은 미비하지만 나중은 창대할 수 있는 이유.

   여행을 시작하던 당시의 계획은 오로지 세 달 동안 인도만 여행하는 것이었다. 한 달 반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 예산 대비 지출한 비용이 1/4도 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다른 나라들을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도를 전부 본 것은 아니지만 인도에만 멈추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예상하지 못했던 여행과 새로운 계획이 시작되었다. 

   다음 지역을 쉽사리 정하지 못했다. 여행을 계획하던 당시 1순위로 떠올랐던 산티아고 순례길이 생각이 났지만 지금 내가 갖고 있는 짐의 무게와 겨울이라는 시기가 다른 선택지들을 생각하게 하였다. 일기장을 열고 가고 싶은 환경과 보고 싶은 것들을 적어 내려갔다. '조용한 국가, 대체로 잘 여행을 가지 않는 국가, 사람이 적고 한적한 곳, 호스텔과 교통 인프라가 좋은 곳, 물가가 저렴한 국가.' 그렇게 나는 동유럽으로 다음 여행을 결정했다. 

   인도를 여행한 후의 나는 여행 계획을 수립하는데 거침이 없었다. 세부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아도 어떤 환경의 어떠한 국가든 나에게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 그만큼 인도의 여행환경이 열악했었고, 인도의 포용력에 매료되어있었기에 다른 국가의 문화적 충격과 다름도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도를 떠나는 비행기에 오른 나의 마음에는 큰 요동은 없었다. 그저 새로운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에 가슴이 시렸다. 새벽에 탄 비행기는 조용했다. 들리는 소리라고는 비행 중에 발생하는 기내 소음만이 일정한 패턴으로 조용하게 울렸다. "딩동"이라는 벨소리에 눈을 떠보니 안전띠를 메달라는 사인에 불이 들어왔다. 아이보리색의 불빛은 눈에서 하나의 점으로 모였다. 나는 인도를 떠나며 마음에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내 안의 생각들이 시나브로 변화를 겪고 있었기에 떠남의 불편함이 눈에 띄지 않았나 보다. 매일 거울을 보지만 몸무게의 변화는 체중계 위에서 알 수 있듯이 내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문제의 접근방법, 내가 보이는 행동의 패턴과 어휘의 사용 등의 변화가 거울에는 비치지 않지만 어지럽게 적어놓은 다이어리에서는 보였다. 

   다시 한번 '딩동'소리가 기내에 울렸다. 나는 아이보리 빛 속에서 빠져나와 기내 안내 음성에 맞춰서 벨트를 매고 창문을 열었다. 붉은 광야가 창 아래로 보였다. 인도에서 벗아나 바로 유럽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그 사이의 거리가 상당히 멀었기 때문에 중간 경유지로 두바이를 선택했다. 상공에서 본 아랍에미레이트는 누가 봐도 사막의 황무지였다. 높은 산은 하나도 없이 황색의 광야만이 넓게 펼쳐져있었다. 석유 부자들이 많은 나라이기에 화려하고 찬란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전혀 달랐다. 선입된 사고가 이곳은 부자 나라고, 미디어를 통해 본모습들이 화려했기에 별거 아닌 것에도 감탄하려고 애쓰고, 어떻게든 화려한 나라로 보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고개를 몇 차례 세게 흔들고 나니 나에게 짙게 자리하고 있는 유물론적 한심함이 사라진다. 


   잠깐 들린 경유지의 이곳은 나와 많이 닮아 있었다. 좋지 않은 학벌을 가리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해왔던 행동들과, 권위적이게 보이기 위해서 사용했던 어휘들과 지식들이 지금은 지적 허영심이라는 기형적 형태로 성장했다. 아무리 털어내려고 해도 특정한 조건이 갖춰지면 나의 허영들은 마치 이반 파블로프의 개의 침샘처럼 멈추지 않고 흘렀다. 이런 나를 받아들여야 할지, 아니면 변화를 주어야 할지, 또는 버려야 할지를 고민하게 하였다.

   생각의 끈은 흘러가지 못할 정도로 엉켜있었다. 머뭇거리고 있던 그때 내가 서 있던 못에서 아이보리색의 불 빛이 피어오르며 음악소리와 함께 일제히 분수의 물이 뿜어져 나왔다. 내가 본 것은 황패함 속에 만들어지고 있는 도시의 모습이지 허영이 아니었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부족함이 많아 보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었고, 많은 여행자들이 들리는 곳이었다. 도심 곳곳에서 개발 중인 이 사막은 조만간 빌딩 나무들로 가득 찰 것이다. 전의 모습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새로운 무언가로 채워질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스스로가 기형적 성장을 했다고 말하고 있지만, 나는 계속 성장을 반복하며 그 황폐함 들을 채워나가지 않을까? 다만, 지금 내 모습이 개발 중인 도시의 모습처럼 미래의 형태를 추측할 수 없는 것은 그 변화가 미비하게 이루어지고 있어서 일 것이리라. 그리고 이 미비함이 쌓여서 내가 되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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