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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Sep 09. 2021

변화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인도에서의 짧은 한 달이 지나갔다. 2주 정도의 시간이 더 남아있지만 이것도 순간인 것임을 알기에 짐을 주섬주섬 챙겨서 동트기 전 새벽에 다시 남은 여정을 시작한다. 달조차 뜨지 않은 밤의 공기는 코끝을 습하게 하고, 가로등조차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은 지저분한 것을 요리조리 피하며 걷던 내 발걸음을 더 조심스럽게 만든다. 고요하다. 그저 들리는 소리라고는 바람이 내 몸을 스쳐지나가는 소리와 터덜거리는 발걸음의 울림뿐이다. 손에 들고 있던 랜턴의 작은 불빛마저 꺼버리고 더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유일했던 작은 빛줄기마저 사라지자 바람은 아지랑이처럼 흐릿한 안개가 되어 지나가고 내 공간은 짙은 염록 빛을 반짝인다. 아무도 없고, 인위적인 소리가 사라지자 완벽한 자유를 얻은 듯 마음이 가라앉고 안정을 얻는다. 


   눈을 감은 듯 한 참을 걸어내려가니 작은 빛을 품고 있는 버스 터미널이 나온다. 아무도 없을 것 같은 이른 새벽의 터미널에는 예상과 다르게 몇 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따듯한 짜이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의 소리는 평온했다. 손목을 돌려 시계를 보니 여유의 시간이 남아 있음을 확인하고 나는 몸을 돌려 어떤 소리도, 어떤 빛도 없는 내가 내려왔던 공간으로 다시 걸어갔다. 이렇게 나의 북 인도 여행이 끝이 났다. 

   다음 여행의 목적지는 남인도 코친이었다. 기존에 여행했던 북인도와는 사뭇 달랐다. 다른 나라에 온 것처럼 건물의 모양도 달랐고, 주로 믿는 종교도 달랐다. 북인도와 다르게 깨끗했다. 지금까지 인도의 다양성을 보고 다녔지만 낯설기는 매한가지다. 다양함을 경험하면서 그것에 익숙해진 것이지 다르다는 것의 정의를 버리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내 사고가 깨지고 열렸다고 생각했지만 그저 노출되어 있던 것이지 변화된 것은 아니었다. 문화가 주는 충격은 내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는 돌덩이를 깨버리기에는 부족했나 보다. 나의 부족함을 가슴에 되뇌었다. 늘 단점 투성이인 나에게도 장점이 하나가 있다면, 나의 부족을 그리고 잘못을 접했을 때는 빠르게 인정하며 변화를 노력하는 것이다. 

   나의 어리석음을 질책하기 위해서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앉았다. 하늘이 보이는 이 안에는 신선한 레몬향과 생강향이 가득하다. 나는 생강차를 주문했다. 작은 다이어리를 펴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든 생각들을 규칙 없이 적어내려 갔다. 알싸한 생강차의 향에 이끌려 의식 저편에 있던 자각이 나로부터 이탈하여 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한다. 내가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기를 원하는가?' 

'그저 여기 있을 뿐이다. 늘 이렇게 있기 원할 뿐이다.' 

   한참의 시간 후에 입술 끝을 움직여 스스로에게 답했다. 답을 하자마자 나에게 또다시 질문을 던진다.  

'그전에 어디에 있기를 원했는가? 어떠하길 원했는가?'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되돌리고 싶었다. 과거가 그리웠고 돌아가노라면 다를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런 마음은 남아있다. 다만, 현재의 나는 전과는 다르게 지금을 만족하고 있을 뿐이다'

   내 답변도 멈추고 손에 잡은 펜 끝도 멈추었다. 손 위에서 펜이 빙그르 빙그르 몇 차례 돌았다. 그리고 또다시 나에게 묻는다.

'지금 내가 하는 여행은 정당한가? 여행 전 수 없이 고민했고, 선택해 왔던 것에 비난받았었는데 나의 행동들은 정당했는가? 그러기에 지금 만족하고 있는 건가?

   

   나에게 받은 질문은 가슴을 찔렀다. 나의 행동을 단 한 번도 정당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러기에 여행을 하는 동안 내 여행에 당당하지 못했다. 남들과 다른 경험, 남들과 다른 행동이 정당성을 갖기란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지 않았던가? 특히나 히피의 삶을 동경하고, 꿈을 꾸는 그런 나를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았다. 그렇다 그들이 보기에 난 철없는 30대 어른이었다.


'미안하지만, 답하지 않겠다. 내 여행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그리고 정의하지도 않겠다. 내가 정당하다고 규정하고, 정의한다면 나는 또 다른 도그마를 내 안에서 만들어 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변호하기 위해 여러 이유와 주장들을 갖다 붙일 것이다. 이는 괴물이 되어 나를 찾아올 것이다. 그러기에 답하지 못한다. 이것으로 충분한 답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 이미 내 안에서 그런 것들은 다 깨져버렸다. 또다시 미안하지만 나의 결정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미래로 던져졌기에 나는 선택했고 이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조용히 자리 잡고 앉은 카페에서 내가 느낀 감정과 인도 기행을 아날로그 감성 물씬 풍기는 느린 엽서에 담아본다. 우표를 붙여 우체통에 넣은 이 편지는 바다를 건널 것이고 느리지만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마치 느리게 성장하고 있는 내 인생처럼 말이다. 혹, 중간에 누군가의 실수로 유실되었다고 하더라도 편지를 보낸 것은 사실이듯 내 인생 역시 사실로 존재할 것이다. 아직 내 목적지가 어딘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불확실함 속에 현재는 견인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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