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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MI Oct 23. 2021

나의 여행은 지는 태양처럼 아름다웠다.

   리투아니아에서 새해를 보내고 나는 친구들과 아쉬운 인사를 나누었다. 밤새 내린 눈으로 거리는 미끄러웠기에 떠나는 발걸음은 조심스러웠다. 손을 흔들며 올라탄 버스는 라트비아 리가를 향해 달려갔다. 거리는 온통 눈으로 하얬으며, 바람이 불면 날리는 눈 꽃의 향기가 조금은 쓸쓸하게 풍겨왔다. 눈은 밝은 거리를 더 밝게 만들었으며 멀리 펼쳐진 지평선도 더 또렷하게 볼 수 있게 해 주었다. 버스는 그렇게 내 여행의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나는 두 달 정도 더 여행할 수 있는 자금이 남아있었지만, 구정 전에 한국에 들어가야겠다는 결정을 하게 되었다. 여행이 힘들어졌거나 지겨워진 것은 아니다. 즐거웠으며, 여행에서 오는 행복감은 점점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나는 여행이라는 영화의 절정에서 내가 내릴 수 있는 반전의 결정을 한 것이다. 바르셀로나에서 동생과 함께한 크리스마스 식사 때 생긴 가족에 대한 유대감은 리투아니아에서 친구의 가족과 함께하면서 점점 커지더니 그들과 작별의 순간에 절정을 이루었다. 오랜 시간 잃어버렸던 소중한 물건을 찾은 것처럼 난 그것을 한 번 사용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의 마지막을 정한 것이다.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는 티켓을 예약할 때는 상당히 떨렸다. 한국 땅을 밟는 순간 이 모든 행복한 기억과 순간들은 사라지고 현실로 가득 찬 기억들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다시 취직을 위해서 이력서를 쓰고, 자기소개서를 작성해야 한다. 또 수없이 서류에서 인터뷰에서 떨어질 것이고, 자존감도 바닥으로 다시 떨어질 것이다. 그러기에 두려움이 앞섰다. 그러나 막상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에는 가슴이 떨려왔고, 도착해서 땅을 밟을 때는 엄청난 기대감이 들었다. 아무런 준비도 보장도 없는 나였지만 다시 시작해보자는 기대로 가득 찼다.


   여행은 나에게 특별한 선물들을 해주었다. 몇 가지 되지 않기는 하지만 여행이 준 깨달음은 그 크기가 상당히 컸다. 라트비아 리가에 있을 때 친구가 심리테스트를 보내준 적이 있다. 정신의학과 질문지처럼 수백 개의 문항으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족히 50개는 넘어 보였다. 테스트 결과는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문항 하나하나를 읽으며 체크해 나가다 보면 "어! 이건 내가 여행을 떠나오기 전에 이랬는데..."라는 말을 흘리는 문항들이 있었다. 그래서 여행 전의 나의 상태로 가정을 하고서 다시 문항을 풀기 시작했다. 그 지겨운 질문들의 마지막 답을 하자 상당히 우울한 값이 나왔다. 이것이 얼마나 신빙성 있는 심리테스트 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나에게는 큰 의미였으며, 내 여행에 의미를 부여하기에도 충분했다. 

   

   여행을 떠나오기 전의 나의 자존감은 바닥에 있었다. 겨울의 새벽처럼 어두웠으며, 불어오는 찬바람은 가슴을 시리게 했다. 작은 잘못이라도 하는 날에는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듯 마음이 크게 내려앉곤 했다. 여행을 시작할 때도 스스로 결정해서 떠난 여행이지만, 누군가 등 떠밀어서 온 사람처럼 억지로 온 모습이었다. 마치 이른 아침 만원 지하철 타고 내리면서 거친 혼잣말을 내뱉는 것처럼 여행을 시작했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자의식의 확장과 문화에서 오는 충격은 상당했다. 마치 정오의 빛처럼 눈부셨다. 그전까지 나의 사고가 흘러가지 않았던 이유가 나의 아집으로부터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는 더 이런 고집들을 깨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숟가락이 있음에도 손으로 음식을 먹어보기 시작했으며, 그들의 문화를 이루고 있는 다양한 종교를 경험하고, 행사에 참여해 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다양함이라는 눈부심은 또렷이 들여다볼 수 있게 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자 여행은 보는 각도와 시선에 따라 다른 색을 보였다. 눈부심은 어깨 뒤로 넘어갔고 생각의 변화는 아름다움을 가져다주었다. 비슷한 문화권의 지역을 오랜 시간 여행하다 보면 도시와 도시 그리고 국가와 국가 간에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지루해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장소의 변화는 같은 문화권이라도 다른 색으로 비쳤다. 

   나의 여행의 마지막은 마치 석양과도 같았다. 태양이 수면 위로 가까워질수록 점점 붉어졌고, 하늘의 색과 태양의 붉음은 옅게 퍼지며 혼합되어갔다. 바다도 태양과 하늘의 빛으로 물들어갔고 바다의 색과 혼합되어갔다. 감정보다 현실에 직시하던 나의 생각은 경험과 이해를 통해 확장되어 갔다. 자유주의를 만나면서 생각은 더욱 유연해졌다. 그러기에 현실과 감정 모두에게 충실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삶에 충실했으며 주변에 나만큼 열심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러다가 가끔 '너무 힘들다.'라는 말을 뱉을 수밖에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의 선배들이 나에게 해주었던 조언은 "야, 너만 힘든 것이 아니야. 여기 있는 모두가 힘들어. 나는 어떻고? 난 안 힘든 줄 아니?"였다. 그 말에 동의했기에 난 거기에 아무런 답변을 할 수 없었다. 만약 내가 그때로 돌아가서 똑같은 이야기를 듣는다면 당신의 말에는 동의는 하지만 나의 감정을 일반화하지 말라고 말할 것이다. 


  5년 전 떠났던 이 여행은 이제 나에게 버릴 수 없는 일 부분이 되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며 그때의 감정들이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다. 다들 이사를 많이 해도 버릴 수 없는 물건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 용도를 다하고, 색이 변하고, 망가졌어도 버릴 수 없는 물건 말이다. 그 안에는 아마도 추억도 담겨 있고, 감정도 담겨 있기에 버릴 수 없는 것 아닌가? 나에게는 여행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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