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결혼하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는 걸까?
지난 화에서 '어른이라는 옷이 아직 낯설다'라고, 어른으로 살아가는 법을 천천히 배워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어른이'에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싶다고.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다. 하지만 내가 나를 '어른이'라고 말한다고 해서, 내가 '어른'이 전혀 아닌 것은 아니다. 적어도 나이로만 보자면, 나는 분명 어른이니까.
"결혼을 해야 철들어."
"결혼을 해야 어른이지."
"결혼 안 했으면 아직 애야."
어떤 말들은 농담처럼,
어떤 말들은 다정하게 전해오지만,
그럼에도 이 말들은 내 마음 한구석을 괜히 불편하게 만들 때가 있다.
이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묘한 기분을 느끼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결혼을 하지 않은 나는 철이 덜 든 걸까? 아직도 진짜 어른이 되지 못한 걸까?
앞으로도 결혼하지 않는다면, 평생 어른이 될 수 없는 걸까?
나는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11년이 넘었다. 내 앞가림은 스스로 하고 있고, 내 인생의 모든 결정도 내가 책임지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매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남들처럼 어른으로 살아내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 내가, 단지 결혼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어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예전에 같이 일했던 직장 상사 한 분은 나이가 많으셨지만 결혼하지 않으신 분이었다. 조금 독특한 성향이 있었고, 함께 일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분의 행동을 두고, 동료 한 명은 이렇게 말했다.
"결혼을 안 해서 저러는 거야. 사람이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니까? 그러니까 너도 늦기 전에 빨리 결혼해."
이 말을 들었을 때의 나는 아직 20대였다. 그때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그분이 그런 행동을 한 건 결혼 여부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그분의 성향 아닌가? 내가 잘못 생각한 걸까?"
돌이켜보면, 나는 그 말이 불편했지만 애써 부정했는지도 모르겠다. 결혼하지 않은 나도 그런 모습으로 비칠까 봐 두려웠던 건 아닐까?
'나는 그 분과는 달라요.'
'나는 혼자여도 괜찮은 사람이에요.'
라고 조용히 말하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해야 어른이 된다'는 말.
사실 나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모른척하며 외면해 왔던 걸지도 모른다.
결혼한 사람들은 부부로 함께 살아가며 서로 맞춰가고, 양가 가족과의 관계 안에서 다양한 상황을 경험한다. 그 과정에서 이해심이 깊어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어른이 된다'는 표현이 나온 게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나 역시 내 삶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철이 들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어릴 적부터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 속에서 나는 "철이 빨리 들었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요즘도 종종 듣는 말은 "또래보다 생각이 어른스럽다"이다. 이런 말들 때문에 나는 스스로 철이 빨리 든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물론,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지만.
나는 누군가의 아내도, 누군가의 엄마도 아니지만,
내 인생의 주인으로서, 누군가의 딸로, 동생으로, 친구로, 동료로,
사랑과 책임을 배우며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부딪히고, 배우고, 성장하는 나 역시 결혼을 하지 않아도 어른일 수 있지 않을까?
'어른'은 결혼을 해야지만 얻을 수 있는 자격은 아닌 것 같다.
누구든 자신의 인생 속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어른이 되어갈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제 '어른이'에서 벗어나 진짜 '어른'이 되고 싶다.
나만 알고 살던 이기적인 어린아이에서 벗어나,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아는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다.
결혼을 하지 않아도,
결혼과는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