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남들은 다 끝냈대. 난 시작도 못했는데 말이야.
나는 엄마와 딱 30살 차이가 난다. 그런 엄마를 보며 자라서인지, 나도 30대가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줄 알았다. 노산이 되기 전에는 결혼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 기준이 되어버린 30대 중반이 다가왔음에도, 결혼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 나를 보며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친구들, 동생들의 결혼 소식을 들을 때마다 조금 뒤처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느 날, 친구와 파주로 드라이브를 가던 날이었다. 30대 중반쯤부터 우리는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다른 사람들과는 하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를 이 친구와는 마음 편히 꺼낼 수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난 결혼이 끝내지 못한 숙제 같아. 해야 하는데, 아직 못했어. 그런데 남들은 다 끝냈대. 난 시작도 못했는데 말이야.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 찝찝함이 남아 있어."
친구는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공감했다.
나만 하지 못한 채, 미뤄둔 과제로 남겨진 것 같은 '결혼'이라는 단어.
누가 하라고 등을 떠민 것도, 강요한 것도 아닌데, 혼자 끝내지 못한 것 같아 마음 한편에 불편함과 답답함이 있었다.
어쩌면 주변의 시선보다 내가 나를 보는 시선이 더 날카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주변에서는 "너는 아직 외롭지 않은 것 같아. 네 인생이 너무 즐거워 보여."라고 말했지만, 진짜 내 내면은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래서 결혼이라는 숙제가 끝내지 못한 채로 마음속에 남아 있었던 건 아닐까?
내가 생각한 '결혼'이라는 숙제를 끝마치기 위해서는 여러 단계의 미션이 필요했다. 우선 결혼할 사람을 만나야 했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 했다. 그렇게 행복하게 가정을 꾸리는 것, 그게 내가 생각했던 '일반적인 인생 미션'이었다. 말로는 "아이를 꼭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라고 말했지만, 내 마음속엔 어렴풋이 그런 기대가 있었던 것 같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그 미션들을 점점 수행할 자신이 없어졌다. 주위의 결혼하지 않은 언니들은 "너라도 빨리 만나라"라고 말했지만, 이젠 나도 언니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나이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끝내지 못한 숙제'를 결국 해내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에 불안감과 초조함이 커져갔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결혼은 반드시 끝마쳐야 할 숙제가 아니라는 걸 조금씩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아직 마음 한편에 숙제처럼 남아 있긴 하지만, 이제는 이 숙제를 끝내지 못했다고 해서 내 인생이 잘못되거나 실패한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나의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나와 비슷한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내 인생을 나만의 방법으로 꾸려가고 있다. 결혼 숙제를 마친 친구들을 보며 조금은 부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게 불편한 감정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이 있고, 나는 나의 인생이 있으니까.
그렇다고 '끝내지 못한 숙제'를 영원히 덮어두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숙제를 시작할 준비가 된다면, 그때는 조심스럽게 꺼내어 하나씩 해 나갈 것이다.
결혼이라는 숙제는 마감 기한이 없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숙제도 아니다.
그러니 부담감을 내려놓아도 괜찮다. 그저, 자율학습일 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