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결혼이 먼저일까, 마음이 먼저일까
지금까지 좋아했던 사람들을 떠올려 보면, 대부분 자연스럽게 알게 된 사람이었다. 첫눈에 반하는 것보다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갈수록 매력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인위적인 만남은 어색하고 어려워서 좋아하지 않았다. 소개팅 제안을 종종 거절하기도 했다.
애초에 소개팅이 많이 들어오지도 않았다. 사람은 끼리끼리 어울린다고, 친구들 대부분이 동성 친구였고, 솔로 라이프를 즐기는 친구들이 많았다. 우리끼리 노느라고, 자기 인생에 집중하느라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오히려 귀찮게 여겨지던 나날이었다.
많지 않았어도 간헐적으로 소개팅을 하긴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자만추만 바랄 수 없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들어오는 소개팅을 막지는 않았다. 아, 가족 소개는 빼고. 가족 소개는 두 번이나 정중히 거절했었다.
20대의 소개팅은 가벼운 마음이었다. 한 번 만났다가 서로 맞지 않으면 그대로 마무리 지었다.
첫 소개팅은 친구 커플이 주선해 주고, 함께 만나는 자리였다. 1시간이 지나도 상대방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자리에 함께 간 친구가 없었다면 집으로 돌아갔을 거다. 상대방은 1시간 30분 정도 지났을 때 약속 장소에 나타났다. 늦은 이유는 이거였다.
"전날에 친구들이랑 과음해서."
첫 소개팅이었는데, 정말 실망스러웠다.
당연히 애프터는 거절했다.
30대 초반까지는 가끔 들어오는 소개팅에 설레는 마음이 있었다. '어떤 옷을 입고 나갈까? 머리는 이대로 괜찮을까?' 며칠을 고민하다가 결국 블라우스 하나라도 사 입었다.
소개팅 장소에 가면서도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 무슨 말을 해야 하지?
- 혹시 마음에 안 들면 어떻게 하지?
- 나는 마음에 드는데 그 사람이 날 마음에 안 들어하면 어떡하지?
30대 중반부터는 이런 설렘이 없어졌다. 있는 옷 중에 깔끔한 옷을 골라 입었다. 설레하며 옷을 사지 않는다. 특별함이 없음을 알았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이전과 달리 소개팅 장소에 가기 직전까지 후회를 하는 것이다.
"아, 괜히 한다 그랬어. 이런 감정 소모 너무 싫다."
누군가를 처음 만났을 때의 낯선 어색함. 그 어색함을 이겨내려고 끊임없이 조잘거리는 나. 상대방이 마음에 들든, 안 들든 앞에서는 티를 내지 않는다. 이런 모습이 상대방에게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느껴져 오해를 받을 때도 있었다.
상대방도 나도 나이가 적지 않으니, '결혼'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대놓고 결혼을 위한 만남을 하고 싶지는 않다. '연애를 하다 평생 함께하고 싶을 때 하는 게 결혼'이라고 생각하는 나는 '결혼을 전제로 한 연애'를 말하는 상대방이 부담스러웠다. 호감이 있었으나, 부담스러움 때문에 만나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한 번은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네가 결혼하기 좋은 사람인가 봐. 난 첫 만남에 그렇게 부담스럽게 들이대는 사람을 만나 본 적이 없어."
많은 소개팅을 하진 않았지만, 소개팅을 하면 항상 극과 극이었다.
심심할 때 찔러보는 듯한, 남 주긴 아깝고 내가 갖기 싫은 듯 대하는 나쁜 남자.
첫 만남에 결혼식은 어디서 하고 싶은지, 자녀 계획은 어떻게 되는지 등을 묻는 부담스러운 남자.
이상하게도, 늘 중간이 없었다.
나는 첫눈에 반할지라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마음이 열리는 스타일이다. 일명 '슬로우 스타터'.
첫 만남부터 너무 부담스럽게 다가오면, '내가 어떤 사람인 줄 알고 저러지?'라며 뒷걸음치게 된다.
소개팅은 '남녀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을지 말지'를 판단해야 하는 자리이고, 나이가 들어 가볍게 만나기 어려워지면서부터 더 부담스럽고 불편해졌다. 같은 슬로우 스타터를 만나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그러기 쉽지 않으니 내가 마음을 열어야 할 텐데 그게 왜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한편으로는 주선자와의 관계가 걱정되는 마음에 소개팅이 부담스럽기도 하다.
주선자는 부담 갖지 말고 밥이나 먹어보라고 하지만, 상대방과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큰 게 느껴진다. 그 마음이 고마우면서도, 은근하게 압박이 되기도 한다. 부담을 안 주는 척하면서 "몇 번만 더 만나봐. 그러다 오빠 되고, 아빠 된다?"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었다. 소개팅을 하면서 가장 큰 부담을 가졌던 때였다.
"네 나이엔 이제 소개팅이 아니라 선을 봐야 돼."
들으면서 유쾌하지 않았지만, 맞는 말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은 결혼을 위한 만남을 하고 싶지는 않은 걸. 아직 철이 덜 든 걸까.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싶은 것은 맞지만, '결혼'을 위한 전제로 만남을 하고 싶지는 않다. 이런 자신이 이중적으로 느껴지기도 하지만 이게 솔직한 마음이다.
부담스러운 소개팅일지라도, 아직은 선보다는 소개팅을 해보련다. 누군가가 소개만 해준다면 말이다. 누군가의 '배우자'가 되기 전에, '여자친구'가 되는 게 먼저니까.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