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말하지 않으면, 결국 멀어진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그중 좋은 감정도 있지만, 원치 않는 감정도 마주하게 된다. 원치 않는 감정은 주로 서운함, 실망, 속상함 등 분노와 슬픔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내가 타인이 아니고, 타인이 내가 아니듯 서로의 감정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이런 감정을 마주하는 건 어쩌면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원치 않는 감정을 피할 수 없고, 부딪칠 수밖에 없다면 이 감정에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서운한 일이 생겼을 때, 당신은 어떻게 대처하는가? 말하는 편인가, 말하지 않고 참는 편인가?
나는 말하지 않고 참는 편이다. 나는 관계에서 솔직하지 못하다. 서운한 걸 서운하다고 말하지 못한다. 직장에서는 해야 할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하지만, 친분이 있는 관계에서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작년의 일이었다. 친구가 나에게 사다 달라고 부탁한 물건이 있었다. 나는 그 물건을 사서 친구에게 연락했다.
"네가 얘기했던 거 샀어. 잠깐 전달해 줄게. 언제 시간 괜찮아?"
친구는 다음 주에 연락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되었다. 친구는 만나자는 말도 없이, 라디오 사연에 당첨되어 경품을 받게 됐다는 소식만 나에게 전했다. 그리고 연락은 두 달 동안 오지 않았다. 내 생일이 되었을 때, 친구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연락만 받았다. 여전히 만나자는 말은 없었다.
그렇게 몇 달이 더 지난 후, 친구는 나와 같은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신혼집을 구해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연락이 왔다.
"나 이사했어. 시간 될 때 언제든 놀러 와!"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같은 동네에서 잠깐 볼 시간도 없었으면서, 나 보고는 그 먼 데까지 오라고?'
"지금은 바빠서 시간이 안 맞네. 한 번 맞춰볼게."
서운한 마음에 나는 나도 모르게 삐딱선을 제대로 타버렸다.
그 마음을 친구도 느꼈으리라. 그렇게 우리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표면적으로는 '서로가 생각했던 만남을 갖지 않았기에 서운해서 멀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이 한 사건만으로 일어난 일이 아니다. 그전부터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서운한 점들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내가 서운함을 느꼈던 만큼, 그 친구도 서운함을 느꼈을 테니까.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서운함이 쌓이고 쌓였을 것이다.
나는 이처럼 친구들에게 서운함이 있어도 말을 못 한다. 속으로 꽁할 뿐이다. 표정이나 행동에서 티가 날지도 모른다. '나, 지금 기분 나쁘다고. 서운하다고.' 하지만 말로는 표현하지 못한다. 서운한 것을 말하면 서로 불편해질 것 같아서 말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조용히 혼자 참다 속에서 곪아버린다는 거다. 곪으면 결국 터지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알고 지낸 친구와 멀어질 정도로 말이다. 오래 알고 지낸 시간만큼, 서운한 마음이 더 깊고 크게 쌓여간다면 관계를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내가 상대를 좋아할수록 기대하는 감정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상대방이 내가 기대했던 것을 해주지 않으면 서운함을 느끼고 상처를 받는다.
"서운함이란 기대만큼 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감정이 아니라 기대가 너무 컸던 나 자신에게 느끼는 감정"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김재식
다르게 생각해 보면, 서운함은 내가 기대했던 것에 대한 실망에서 비롯된 감정이다. 다시 말해, 기대했다가 실망하는 '나 자신'에게 느껴지는 감정이 서운함이다.
상대방에게 잘못이 있었을까? 물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신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 그럴만한 행동을 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내가 상대를 서운하게 한 행동이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듯이, 상대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결국 서운함이라는 감정은 내 감정의 문제이다. 내가 상대에게 많은 기대를 했기 때문에 일어나는 감정이다.
"네가 나한테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서운함은 보통 친밀감이 높은 사람에게 느껴진다. 친밀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화가 나거나 기분이 나쁠 뿐, 서운함은 잘 느껴지지 않는다. 서로의 마음이 깊을수록 서운함을 느낄 확률이 높아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서운한 내 감정은 내 것이기 때문에 결국 내 안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거다. 서운함이라는 감정을 잘 처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게 있다. 바로 솔직한 대화다. 솔직한 대화란 "네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이런 일 때문에 서운했어."라고 내 감정을 덤덤하게 털어놓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말하지 않고 혼자서 풀고 끝내는 것이 관계를 유지하는 데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었다. 나만 털어내면 된다고, 그냥 서운함을 잊고 덮으면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그것이 아님을, 30대 후반이 되어버린 지금에서야 깨달았다.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않으면 오해가 쌓이고 골이 깊어진다. 누군가에게 서운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나 전달법'으로 내 기분을 솔직하게 전해보길 바란다. '나 전달법'은 말 그대로 내 감정을 전달하는 것이다. 상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이 어땠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네가 다음 주에 연락을 한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연락이 오지 않아 나는 많이 서운했어."
나는 이 간단한 말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친구를 원망했다. 이런 사소한 골은 오래도록 쌓이고 쌓여, 결국 깊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의 관계는 마지막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신은 부디 나와 같은 경험을 하지 않길 바란다. "네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원망하기보다, "이러이러해서 나는 감정이 이랬어."라고 솔직하게 말할 수 있기를. 그렇게 당신의 소중한 인연을 지켜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