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돌본, 이름이 '메기'인 고양이를 아버님 집으로 보낸 후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던 영이가 대형마트 내 햄스터진열대 앞에서 꼼짝을 않았다.
보기만 해도 귀여운 햄스터를 커다란 고양이 축소판으로 위로를 받는 것인지, 아련한 눈으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않으려 했던 내가 졌다.
최소한 털이 온 집에 날리고 소파를 긁어놓아 버리게 하거나 빨래 신경 쓸 것 없이, 더구나 눈물 콧물 흘릴 일 없으며 집안을 차지한다고 해봐야 작은 울타리집 정도이니 마음이 넉넉해져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이왕이면 아이를 기쁘게 해 줄 맘으로 조금 넓은 평수의 집, 톱밥, 먹이, 물통등을 시원하게 구매해서 기운차게 집으로 돌아온 날부터, 영이는 자기 방에서 햄스터와 동거를 시작했다.
제법 훈계와 칭찬을 하는 말소리가 간간이 들려오고, 손바닥 위에 햄스터를 올려두고 먹이를 주더니, 점차 방바닥에 일렬로 늘어놓은 먹이를, 햄스터가 그 조그맣고 앙증맞은 손으로 양볼이 볼록해지도록 저장을 하며 손바닥 위까지 올라서도록 가르치는 동안, 난 기겁을 하며 꺼내놓는 것을 말렸었다.
'그러다가 도망가서 어디 구석에라도 들어가면 못 찾는다', '그런 일이 벌어지면 다신 못 키우게 한다' 등의 협박성 경고를 달고 살면서.
경고를 하면서도 영이가 햄스터 핸들링을 하는 걸 곁눈으로 보면서 우습기도 했는데 어쩜 내 말투를 그대로 '햄'이에게 적용해서 잔소리를 하는지 뜨끔하기도 했다.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은 영이 편이다. 남편도 햄스터를 가슴에 올려놓고 쓰다듬고 손바닥에 올려놓고 귀여워라 하는데 난 항상 '만약에'를 습관성으로 달고 사는 편이니 '만약에, 도망가서 어느 구석에라도 들어가 못 나오고 거기서 유명을 달리하면 시체에선 벌레가 생길 것이고 벌레가 기어 나오면 그땐' 생각만으로도 절대 내놓아서는 안된다 주의였다.
업무 중에 영이의 겁먹은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 학교 갔다 왔더니 햄이가 없어"
"뭐? " 조용한 사무실에 격앙된 내 목소리만 울렸다.
"거봐, 엄마가 뭐랬어. 이제 어떡할 거야. 어떻게 찾을 거야. 엄마 퇴근할 때까지 찾아놔"
하고선 전화를 끊어버렸다. 상상했던 일이 현실이 되려는 순간이었다.
'내가 뭐랬어, 내가 뭐랬냐고' 머리가 하얘지고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신경이 쓰이는 이슈, 햄스터 탈출. 그 조그만 걸 찾을 수나 있을까.
햄스터 주인은 '햄'의 안위가 걱정되어 울고 있고 난 도망자가 주거지 탈출 이후 행방불명되어 벌어질 이후의 상상으로 두려움 때문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영이는 온갖 구박을 받으면서도 휴대폰 불빛으로 장롱뒤를 비출 때면 울음을 그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같이 들여다보느라 용을 썼다.
귀가한 남편은 나와 달랐다.
영이가 아빠의 귀가를 반기며 햄이가 걱정되어 죽겠는데 엄마는 화만 낸다고 속상함을 토로했다.
남편은 영이의 등을 토닥이곤 '찾아보자' 한마디 하더니 겉옷만 벗고서 숨을 만한 곳을 수색했다.
역시나 안방의 장롱뒤가 젤 의심스럽나 보았다.
저녁 늦은 시간, 장롱을 들어내기 시작했다.
켜켜이 쌓인 먼지와 언제 거기 있었는지도 모를 스카프사이에서 발견했다.
남편은 흐르는 땀도 개의치 않았다. 찾았다는 것만으로 둘이 그렇게 기뻐했다.
영이는 딸바보인 아빠를 신뢰했다.
남편이 저녁 늦은 시간의 요란함에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찾아준 것에 안심하면서도 고마우면 칭찬도 해주면 좋았을 텐데 괜히 영이한테 더 강력한 경고장을 들이밀고 이 밤에 먼지 쌓인 장롱뒤 청소까지 하게 생겼다며 역정만 내고 말았다.
남편은 참, 착하고 고마운 사람이다.
온갖 경고를 날린 후에 사건은 일단락되었고 철창은 더 단단히 잠겼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햄스터는 또 탈출했다. 딸은 몇 번이고 문을 잘 잠갔다고 했다.
탈출 소식에 이젠 덜 겁먹었다. '아빠가 퇴근하면 또 장롱 들어내야겠네'로 끝.
아빠를 기다리던 시간, 영이가 "엄마, 햄이가 집에 와 있어"소리를 질렀다.
어찌 된 일일까?
햄이가 집을 나갔다가 심심한 외출을 한 후에 자기 집에 귀가했다고? 정말이었다.
햄이가 똑똑하다고 난리가 났다.
언제 탈출하는지는 모르지만 어찌 되었거나 의미 없는 문단속은 불필요해졌다.
외출과 귀가가 잦을수록 처음의 똑똑함은 그냥 익숙한 평범이 되었다.
탈출이 외출이라는 걸 알고 있고, 언제나 집에 돌아와 있으니까.
삼 년을 키워 식구로서 엄연히 한자리 하고 있었는데 퇴근 후 들여다본 '햄'이의 집은 고요했다.
팔다리를 쭉 뻗은 경직된 몸의 햄.
그날이 왔구나.
3년을 함께 살며 자유로운 외출을 즐겼던 '햄'이는 빈집에서 홀로 '영원한 외출'을 하였다.
학원에서 돌아온 영이의 슬픔은 컸고 우리 모녀는 또 아빠의 귀가를 기다렸다.
남편은 '그래도 우리랑 오래 잘 살았잖아'하면서 영이를 데리고 햄이를 묻어주러 갔다.
돌아온 영이는 공원 끝 산자락 밑에 깊게 묻어준 '햄'이의 묘지가 훼손되지는 않았을까 몇 날을 걱정했다.
이별은 쉽지 않다며 다신 키우지 말자 했는데, 어느 날 영이는 또 핸들링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