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이 아니라 아주 잦은 빈도로 멍해진 시선을 들어 올릴 때가 잦아졌다.
머리는 맑지 못하고 눈은 부어있고 앉아 있으면 종아리가 차 올라옴이 느껴진다.
어쩌다 부기가 내리고 치켜뜨기 가벼운 눈이 되면 나를 바라볼 마음이 생겨난다.
비 올듯하다는 오후인데 꼭 거품 뽀글 내어 세차를 하고 싶은 마음은 뭔지.
나를 닦아버리고 싶은 욕구가 세차로 옮겨갔나 보다.
근력 없는 두껍기만 한 내 팔 때문에 500원 동전을 넣고 차량외부의 흙먼지만 쓸어내던 세차였는데 문지를 힘도 없으면서 거품세척도 이용해 본다.
확실히 거품칠을 하고 고압세차로 시원하게 쓸어내린 후의 차량은 윤기가 돌고 반짝이는 것 같다.
낙담도, 좌절도, 욕심도, 부러움도 고압세척되어 거품처럼 하수구로 흘러들어 가 멀리멀리 떠나버렸으면 좋겠다.
그리움도, 미래에 대한 불안도, 어제에 대한 후회, 그때 그 순간에 대한 후회도 같이 떠나 주면 좋겠다.
가버렸으면 좋겠다.
드라마 초콜릿에서 의사'이준'이 '배가 고픈데 밥을 먹지 못할 땐 어떡해요?'하고 문차영세프에게 질문했다.
문차영 세프는 '마음이 아파서 밥을 먹지 못할 땐 김치볶음밥이죠' 했던가.
'이준'은 불판 위에 삼겹살과 김치를 굽고 밥을 볶았고 한 입 넣어보니 먹어졌다. 이준은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었다.
마음이 아파 밥을 먹을 수 없었는데 세프가 '마음이 아파서'를 읽어내 주었기에 마음이 음식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내게 뜻하지 않았던 뭉칫돈이 생겼는데, 그녀도 받은 뜻하지 않았던 뭉칫돈에 추가로 뜻하지 않은 뭉칫돈이 생긴 그녀를 바라보니 저 사람은 뭔 복이 있는가 싶은 게 마음이 옹색해졌다.
내게 생긴 뭉칫돈이 작아 보인다.
큰 뭉칫돈이 생긴 상대가 가까운 사람일수록 더 부러워진다.
먼발치의 사람이라면 '좋겠다'하고 말 것을, 그것도 상황판단을 어느 정도의 일관성도 없이 자신의 잣대로 편하 게 사는 사람에게 생긴 경우이기에 더 짜증이 났었다.
아직 살아갈 날이 남은 부모를 위해 받은 돈을 다시 모아두자는 의견을 내었더니 자신은 주신 돈 잘 불려보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내게도 마음이 불편해 목에 걸린 듯할 땐 실타래를 정돈해 줄 내 전용 세프가 있다.
밑바닥 못난 마음까지 숨길 것도 없다.
'욕심도 생기고 부럽기도 하고 마음이 복잡하다' 토로했더니 내 못난 생각 비난하지 않고 여느 때처럼 조용히 나를 읽어내어 줬다.
나를 읽어내 주었기에 무릎에서 벗어나 어지럽게 굴러간 실타래를 되감을 힘을 얻었다.
'나한테 뭐가 있지?'로 곱씹어보았더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로 되감아진다.
오늘은 '돈뭉치'에서 소중한 멘토 '사람'으로 시선의 방향이 바뀌었다.
비 올듯하다는 오후의 일기가 맞는지, 비 내음을 품고 휘도는 바람을 정면으로 맞으며 시원함을 느꼈다.
하루가 아쉽도록 매달리고 싶어지는 농익은 가을이 가버리기 전, 며칠 후 있을 나들이를 약속한 수생식물학습원의 풍경을 떠올리며 마음이 녹녹해진다.
들끓던 며칠의 마음이, 세차거품처럼 하수구로 흘러가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