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퓰리즘의 시대, 한국 정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by 신정현

1년 전, 미국 대선을 탐방하고 돌아온 뒤 나는 한 가지 전망을 남겼다.


“트럼프 2기 체제가 시작되면 미국은 더 노골적인 보호무역과 더 정교해진 포퓰리즘으로 움직일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이 정체성 정치와 엘리트주의의 이미지를 벗지 못한다면, 이 흐름을 막기 어려울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전망은 현실이 되고 있다.


트럼프는 ‘동맹국 우대’라는 오랜 원칙을 뒤집고, 한국·일본·EU를 포함한 모든 국가에 보편적 고율 관세를 예고했다. 미국이 구축해 온 자유무역 체계를 사실상 해체하겠다는 선언이다. 여기에 이민 문제는 더욱 과격해졌다. 국경의 군사화, 대규모 추방, 출생시민권 제한까지—불안과 분노를 정치적 동력으로 삼는 전형적 포퓰리즘이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미국 민주당의 무기력이다. 트럼프의 공격적 정치가 이어지는 1년 동안, 민주당은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정체성 정치에 대한 피로감, 과도한 PC주의, ‘도시 엘리트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겹쳐지면서 중산층·비대졸·노동계층이 민주당을 떠나고 있다. 트럼프의 막말보다 민주당의 거리감을 더 불편해하는 유권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최근 여러 지역 선거에서 맘다니와 같은 진보적 정치인들이 약진했다. 이들은 기존 민주당의 약점이던 가치 중심 메시지 대신, 주거·의료·교육·임금 같은 ‘생활경제’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동시에 인플루언서식 대중소통 전략으로 정치의 문턱을 낮췄다. 그 결과, 민주당이 잃어버린 현장의 신뢰를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당내 진보진영이 먼저 체질개선을 시도한 셈이다.


1년 전, 미국 대선을 분석했던 이유는 단순한 예측이 아니었다. 세계 정치가 향하는 방향을 읽고, 그 속에서 한국 정치가 찾을 수 있는 단서를 발견하기 위함이었다. 미국에서 드러나는 균열은 한국에도 낯설지 않다. 중산층의 피로감, 청년세대의 박탈감, 엘리트 정치에 대한 불신, 정당의 자기 확신이 낳는 배타성—이 모든 것이 우리 정치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포퓰리즘의 확장은 어느 나라에서나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다. 불평등이 심해지고, 정치는 사람들의 삶과 멀어지고, 기존 정당이 현실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분노와 혐오를 파고드는 정치가 힘을 얻는다. 그렇다면 민주주의는 어떻게 다시 시민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정답은 화려한 구호가 아니라 삶의 현장을 다시 정치의 중심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누구의 삶이 더 나아지느냐라는 질문에 선명한 해답을 제시하는 정당, 그것이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민주주의를 지키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될 것이다.


예측은 맞았지만, 예측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는 일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실제 정치의 변화로 연결시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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