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저녁, 오늘따라 '배신의 신'이 강림한 모양이다. 지난 며칠, 유배지나 다름없는 외곽 지역의 '똥콜'들을 과감히 거절했더니, 플랫폼 알고리즘의 보복이 시작된 듯했다.
황금 시간대인 16시 45분부터 19시 45분까지, 9건만 채우면 2만 4천 원을 더 주는 '피크 인센티브 미션'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50분째 묵묵부답이었다.
마치 플랫폼이 나를 가스라이팅하는 기분이었다. '거봐, 콜 골라잡으니까 피눈물 나지?'라고 비웃는 것 같았다. 나도 모르게 "형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론 어떤 똥콜도 다 받을게요."
간절함이 통했는지 꾸역꾸역 8건을 채웠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30분. 단 한 콜이면 2만 4천 원이라는 보너스가 내 주머니로 들어온다.
그런데 이때부터 기괴한 일이 벌어졌다. 신규 콜 알람이 울려 수락 버튼을 누르면 콜이 유령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그렇게 눈앞에서 놓친 콜만 6개였다. 의도치 않은 '거절 패널티'만 쌓였다. 결국 19시 45분, 냉정하게 미션 종료를 알렸다.
"아, 진짜 너무하네!"
2만 4천 원의 상실감과 함께 다시 패널티로 인해 신규배달을 잡지 못할 거라는 절망감이 밀려왔다. 더이상 배달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어깨에 곰 세 마리를 얹은 듯 축 처진 채 저녁 8시쯤 집에 왔다.
"아빠! 보름달 보러 가기로 했잖아!"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새로이와 빛나라가 내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오늘 아이들과 약속했던 산책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친 기색을 숨기고 아이들을 데리고 무인 문구점 '빵꾸똥꾸'으로 갔다.
새로이는 포켓몬 카드를, 빛나라는 알록달록한 구슬사탕을 손에 쥐고는 세상을 다 얻은 듯 골목을 뛰어다녔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차가운 밤공기를 가르자, 방금 전까지 나를 괴롭히던 플랫폼의 저주(?)가 안개처럼 흩어졌다. 아이들을 번갈아 어부바해주며 달리기 시합을 하다 보니 어느새 등줄기에 기분 좋은 땀이 맺혔다.
집으로 돌아오니 아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나갈 땐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더니, 갑자기 이렇게 신났어요?"
천천히 말해주겠다고 하고는 거실에 둘러앉아 단골집 '김종구의 부산어묵'에서 사 온 떡볶이와 순대를 펼쳤다. 순대를 먹고는 느끼하다며 탄산음료 한모금 마시곤 트림을 내뱉은 새로이 때문에 한바탕 웃음바다가 터졌고, 빛나라와의 유치찬란한 퀴즈 맞추기에 온가족이 집중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지방의회에서 강연을 요청하는 전화였다. 그토록 고대하던 새해 첫 강연의뢰였다. 조금 전까지 엉터리 배달 시스템 때문에 오늘 일을 망쳤다며 인생의 패배자가 된 양 분개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인생이란 참 묘하다. 삶이란 잃을 때도 있고 얻을 때도 있다. 성숙해진다는 건 좌절에 오래 머물지 않고 성공에 깊이 도취되지 않는 것이라는 걸 이렇게 역동적인 라이더의 일상에서 배운다. 매일 아이들과 잠자리에 들며 감사했던 일을 한가지씩 나누는데 덕분에 오늘 아이들과 나눌 감사제목이 생겼다.
"오늘 아빠는 배달미션에 실패했지만, 대신 너희들의 웃음을 배달받아서 진짜 행복했어. 그리고 힘들 때 버려두지 않으시고 함께 해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