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날개라고? 아니, 옷이 원수지(2)

한복 맞추기 ②

by 눅눅한과자



청담동 한복집에 가겠다고 하니 역시나, 우리 엄마가 난리다. 뭐 하러 그 비싼 데서 하냐는 둥, 그 동넨 다 거품이라는 둥 본인의 가치관과 맞지 않는 선택에 자꾸 토를 다신다. 다른 준비 때문에 더 알아볼 정신없다고 적당히 둘러대어 우리 한복에 대한 잔소리는 그쳤으나, 어머니 당신이 입으실 옷은 원래 단골집에서 별도로 맞추신단다. 어머니와 우리가 따로 하는 건 상관없는데... 문제는 양가 어머니 두 분 사이엔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사돈 간에는 같은 한복집에서 옷을 맞추는 경우가 많다. 결혼식 절차에 ‘화촉점화’라고 해서 어머니 두 분이 단상 위에서 불을 붙이는 순서가 있는데, 이때 두 분의 한복 디자인이 조화롭지 않으면 그림이 예쁘게 안 나온다나. 그래서 디자인의 통일성을 위해 같은 가게에서 맞춘다고. 신랑 어머니는 푸른색 계열을, 신부 어머니는 붉은색 계열 한복을 입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것도 새로 알게 된 사실이다.


여자친구 어머니께서는 이미 우리가 정한 한복집에서 같이 맞추겠다고 말씀하신 후였다. 결국 혼주 두 분이 각각 옷을 다른 곳에서 맞추기로 하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라면, 우리 어머니께서 ‘일반적’인 룰과 달리 붉은색 한복을 먼저 고르시는 바람에(본인은 빨간색이 잘 받는다나) 장모님께서 이에 맞추기 위해 푸른색 계열의 옷을 골랐다는 것이다.


생각보다 담담하게 넘어가서 그렇지 이 과정에서도 혼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모른다. 혹시 어느 한쪽(우리 어머니일 높지만)에서 한복을 각자 맞춘다는 사실을 문제 삼진 않을지, 한복 색상 때문에 의견 충돌은 없을지 등 말이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미 상견례 문제로 한 번 갈등이 있었기에 양가 모두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있어도 별다른 말이 없었나 싶기도 하다.


어쨌든 혼주 한복을 해결하자 드디어 우리가 입을 옷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전화로 주말의 어느 날에 방문 예약을 하고 조금 여유 있게 가게에 도착했다. 결혼 준비를 하며 얻은 (당연한) 팁이 있다면 업체 방문 시엔 조금 기다리더라도 늘 예약시간보다 조금씩 일찍 움직여야 한다는 것. 직장 생활을 하는 예비 신혼부부가 많기 때문에 당연히 주말에 예약이 몰릴 수밖에 없고, 특히 결혼 관련 업체가 모여있는 청담동 인근은 교통체증뿐만 아니라 각 가게 앞에 주차하는데도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주차 전쟁을 해결하기 위해 거의 모든 곳에서 발레 파킹을 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현금을 들고 다니는 센스가 필요하다는 것도 작은 깨달음이었다.

내가 생각하던 전통적인 한복집(전통시장 골목에 위치할 것 같다거나, 기와집 같은 전통가옥에 있을 것 같은) 이미지와는 달리 5층쯤 되는 건물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인테리어도 매우 모던했다. 마치 백화점의 기성복 코너에 온듯한 익숙한 느낌이랄까. 다만, 돌돌 말린 한복 원단이 한쪽 벽면에 차곡차곡 천장까지 쌓여있는 모습이 여기가 여느 옷가게와는 다르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있었다.


곧 사장님인지 직원분인지 모를 디자이너에게 상담을 받았다.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맞춤옷인 데다 몇 번 입어본 적도 없는 한복이라 무슨 기준으로 골라야 될지 감이 오지 않았다. 기성복은 입어볼 수라도 있지... 둘둘 말린 천을 하나씩 꺼내 옷감끼리, 또는 내 몸에 대본 후 색과 감을 고르는 작업을 연속해서 하다 보니 이렇게 대충 옷을 골라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이럴 때 구세주는 역시 여자친구뿐. 그녀는 이미 어느 정도 생각해 온 방향이 있는 듯했다. 파스텔톤이 마음에 든다며 자기 것은 물론 내 것까지 하나하나 골라서 몸에 대주며 내 의견을 물어봤다. 주관식은 못해도 객관식엔 자신 있지. "응, 아니, 이거, 저거"라고 나도 더듬더듬 의사를 밝히며 옷감을 골랐고 20~30분쯤 후엔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옷감 조합을 마칠 수 있었다. 똘똘하게도 ‘최고급 까진 필요 없으니 바로 아래 정도 수준’으로 원단의 질까지 구체적으로 요구하는 그녀가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생각보다 선택할 종류도 많았다. 내 경우 바지, 저고리, 조끼, 옷고름까지 4가지를 골랐는데 또 그 와중에 옷고름 색깔은 신랑 신부가 통일하는 게 소위 ‘룰’ 이란다.


마침내 다 고른 옷감으로 드디어 한복을 짓게 되었다(이를 ‘가봉’이라 한다). 우리의 몸 치수를 이리저리 재더니 완성품은 한 달 후쯤 볼 수 있으니 그때쯤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한복 값의 일부를 계약금으로 지불하고 가게를 나섰다. 옷값을 누가 부담하느냐에 대해선 정해진 것이 없는 듯했다. 누구는 신랑이 사고, 누구는 신부가 사고, 누구는 신부건 신랑이 사주고 신랑 건 신부가 사주고... 고민하기 싫어 깔끔하게 반반씩 내기로 했다(우리야 스드메부터 다 반씩 부담하기로 해서 큰 문제는 없었지만, 결혼 준비를 하다 보면 누가 비용을 부담하냐로 은근히 갈등이 많이 생긴다고 한다).


한 가지 다행이었던 것은 한복 가격이 나름 합리적이었다는 점이다. 당시 회사 팀 선배가 본인 결혼 때 청담동 유명 브랜드에서 한 벌에 수백만 원씩 하는 고급 한복을 맞췄다고 잔뜩 겁을 줬던 차라, 내 각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액수인 우리의 소비가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 없었다. 같은 동네, 심지어 바로 옆집임에도 브랜드별로 천차만별인 결혼 준비 물가를 체감하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예복과 드레스에 비하면 한복별 격차는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곧 깨닫게 되었다.

한복 원단을 적당히 몸에 얹거나 휘감아보며 디자인을 고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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