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이 부 탐춘>이다.
이 그림에는 두 명이 등장한다.
소복 입은 여인은 가채로 보아 혼인을 했을 터이고 소복을 입은 것으로 보아 아마도 상중일 것이다. 그런데 제목이 <이 부 탐춘>이라.. 그녀가 과부라는 말이니 아마도 남편의 상중인가 보다.
다른 여인은 파란 치맛단에 허리 채를 묶어 무릎까지 끌어올린 댕기를 맨 여인이다.
옷 입은 태가 경망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과부가 부리는 몸종으로 여겨진다.
그런 두 사람의 시선은 두 마리의 새와 두 마리의 개에게 닿아있다.
상중이라는 것을 알리 없는 개는 교미 중이고 새들은 사랑을 속삭이듯 어울리고 있다.
그런데 상중인 두 여인은 그런 동물들을 쫓아버리기는 커녕 아예 자리를 잡고 앉아 웃는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두 여인의 표정만으로는 부족했는지 걸터앉은 고목에서는 새 잎이 솟아올라왔다.
무엇이 보이는가? 이제 막 과부가 된 여인의 봄날이 보이는가?
제목은 아예 더 노골적이다. 홀몸이 된 여인이 봄을 즐긴다니.
아직 상복도 벗지 않은 그녀가, 슬픔에 마지않을 그녀가 교미를 나누는 짐승을 보고 웃고 있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녀의 서사를 읽어 낼 수 있다.
“ 그녀는 지난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했던 게 분명해.
남편과 진정한 사랑의 감정을 나누지 못했거나
무엇보다 밤 생활에 문제가 있었을 거야.
그녀에게는 그것도 아주 중요한 문제 일 텐데 말이야.
그러고 보면 이 초상은 그녀에게 사랑의 시련이 아닌 사랑의 실현일지도..
잠깐! 아니, 저건 또 뭐야?
몸종이 과부의 허벅지를 꼬집고 있다니!
아랫것들까지 너무 티 내지 말라고 타박할 정도로
그녀의 얼굴이 활짝 피었다는 얘기군,
쯧쯧, 그전에 얼마나 말라비틀어졌었길래..
그래도 저래도 되나? 몸종이 주인의 허벅지를 꼬집다니!
아~ 저 과부는 아랫사람들과 허물없이 지낼 만큼
열려있는 사람이군 그래.
개방적인 여인의 꺾여있던 욕망이 기지개를 켠다!
와~ 진짜 대단한 이야기가 펼쳐지겠어! “
하나의 이미지에서 이토록 많은 스토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
바로 이것이 셔레이드다.
셔레이드 기법은 제스처 게임이라는 뜻에 걸맞게 대사를 통한 직설적인 표현이 아닌 시각예술이라는 영화의 장점을 활용해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기법이다. 무성영화가 발전할 당시, 대사로 직접적인 표현이나 감정 전달을 할 수 없다는 단점을 보완하고자 처음 도입된 기법으로서 비언어적 수단을 이용해 의미를 표현하는 것을 뜻한다.
정곡을 찌르는 표현 - 덕성여대신문 (dspress.org)
혹자는 셔레이드는 영상작업물에서만 쓰이는 기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 드라마, 웹툰, 애니 등 말이다.
하지만 소설이든 시든 그 안에서 이미지를 구현해나는 모든 글쓰기에서 기꺼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사실 이 용어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진짜 많다.
하지만 이미 이런 식의 작법을 대부분 사용하고 있다.
이런 묘사들을 우리는 이미 많이 경험해 왔기 때문에 무의적으로 학습되어 있다.
그러니 이제 와서 '셔레이드'라는 네 글자를 익힐 필요는 전혀 없다.
비언어적 설정을 통해 인물이 하고 싶어 하는 말을 한꺼번에 표현해 낼 수 있다니!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이것은 창작가가 숨겨놓은 보물을 관객들이 찾아내는 쾌감을 선사하는 완벽한 보물찾기 게임인 것이다.
이 매력적인 기법을 영리하게 활용하려면 제대로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기법은 사실 작가들이 아니라 소비자를 즐겁게 해야 한다.
아무리 매력적인 설정들을 터질 듯 채워놓는다 한들 관객들이 모르는면 말짱 헛일이다.
그렇다면 날로 진화해 가는 소비자들은 셔레이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