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일기
엄마는 이제 다른 별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둘째 아들이 내려와 엄마 곁을 지키던 지난 주말만 해도 의사소통이 가능했다.
항상 마음을 두는 아픈 손가락의 둘째 아들의 얼굴을 보고서야
떠날 마음의 준비를 마쳤을까?
“그래도 밥은 다같이 먹었으면 좋겠어.”
“요즘 제가 스트레스 받는 이유요? (손으로 딸인 나를 정면으로 가르킴)”
“이쑤시개 가져오기 전까지 기다릴래.”
“설탕이랑 물엿을 무조건 사야해.”
“막걸리가 먹고 싶어. 막..걸...리!!”
“내 딸이 시키드나? 나 감시하라고? 너도 세뇌당했고만!” 라는 유치한 말들을 했었는데...
반면, 오빠의 도움 덕분에 호스피스 병동을 벗어나 3주 만에 바깥 공기를 맡았다.
두서없이 자란 머리를 자르고,
쌓인 스트레스를 소맥 한잔으로 비워버리기도 했다.
피로감이 가득한 몸에서는 맥주 한잔이 시원하기보다, 찌릿한 고통에 가깝기는 했지만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보다는 덜 아팠다.
환자를 24시간 돌본다는 것은 많은 힘이 든다.
우연찮게 좋아하는 친구를 마주치기도 했다.
늘 보고 싶은 친구이자, 늘 타이밍이 잘 맞는 친구이고, 늘 날 웃게 하는 친구이기도 하다.
본인도 엄마를 간병하러 내려온 참인데,
“내가 간호사라는 이유로 왜 부모님 간병을 도맡아해야하는 건데!?” 라고 호소하던 본인의 친누나를 보고 내가 떠올랐다고 했다.
나는 조용히 소맥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나는 저런 말을 입 밖으로 꺼낼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다음날 아침 7시부터 엄마는 날 찾았다.
새벽부터 “일어나자마자 달려와.”라는 오빠의 카톡을 숙취라는 핑계로 무시했는데, 계속해서 울리는 엄마의 전화는 무시할 수 가 없었다.
곁에 있으면 가 버리라고 소리치고, 곁에 없으면 내 이름만 부르는 엄마.
둘째 오빠가 떠난 이후부터는 24시간 내내 섬망인 상태로 있다.
나를 못 알아보고, 전화 온 아들의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한다.
간호사는 < 임종이 가까워지면 나타나는 현상 > 에 대한 종이를 조용히 건네주었다.
잠자는 시간이 많아지고, 혈압이 떨어지고, 소변량이 줄어가는 것에 동그라미를 쳐야할 것 같다.
20가지 증상에 동그라미를 그려나가다 보면 어느 새 엄마가 다른 별에 가있을 것 같다.
한 평생 5명의 가족을 보필하느라 애쓰고, 1년 6개월 동안 항암하느라 애썼던 우리 엄마.
마지막까지도 편히 쉬지 못하고, 통증에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내가 놓아주고 싶다.
눈만 뜨면 침대 밖으로 나와 나가려는 엄마에게
이제는 진통제와 진정제를 번갈아 주면서 잠을 자게 하는 게 가장 덜 고통스럽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깨어있는 엄마의 눈동자를, 목소리를 한번이라도 더 듣고 보고 싶은데,
그것은 오롯한 나의 욕심이라는 걸 깨달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