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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Oct 14. 2022

컴퓨터 세탁소

대전 소제동

오래된 가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골목길을 걷습니다.

시간은 평일 10시에서 11시 사이가 가장 좋답니다.

사람들은 바쁘게 일터로 들어가고 이른 시각이라 외지인도 별로 없기 때문이지요.

동네 사람들을 제외하면 외지인은 저뿐이라 오롯이 그 시간과 공간을 독점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따뜻함과 뜨거움 중간 어디쯤의 햇살과 귓가에 스치는 바람이 더해준다면 금상첨화이지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딱 그렇답니다.

누군가에게는 익숙하고 평범한 일상이지만

제겐 작은 먼지 하나까지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배낭여행자 같은 마음이 듭니다.

'일상 여행자'란 이런 느낌일 것 같네요.


멀리서 세탁소가 보입니다. 가까이 보니 간판에 '컴퓨터 세탁'이라고 쓰여 있네요.

'콤퓨타 세탁'이라고 쓰여 있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라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수십 년 세월이 느껴지는 다리미와 칭칭 동여맨 전깃줄, 천장에 매달린 옷가지들이 보입니다.

카메라를 들고 사진을 찍으려다가 세탁소 사장님과 눈이 마주칩니다.

"아저씨 사진 한 장 찍어도 될까요?"

라고 물어보면 되는데,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 몇 번 기우뚱거리다가 돌아갑니다.

그래도 아쉬워 먼발치에서 셀카를 찍는 척하며 렌즈를 세탁소로 향합니다.


수십 년 그 자리를 지켰을 세탁소를 보면서 문뜩 동네를 지키던 가게들이 생각납니다.

아버지의 구두의 광과 어머니의 구두굽을 책임 줘 주었던 '구둣방'

핸드폰이 귀했던 시절 집으로 연락하거나 여우비를 피해 들어갔던 '공중전화박스'

매일 아침 버스를 기다리며 헤드라인은 꼭 읽었던 '신문가판대'

그런 가게들은 이제 발품을 팔아가며 찾아가지 않으면 볼 수 없는 것들이 되었네요.


세월이 빠르게 흘러가고 세상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갈 때마다

옛 것을 그리워하는 건 저만 그런 걸까요? 아니면 다들 그러는 걸까요?

현재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해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는 걸까요?

혼자 이런저런 넋두리를 하지만 결론은 내리지 못합니다.


아무렴 어떻겠습니까?

지금 제가 걷는 이 길에서 위안을 받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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