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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정 Mar 21. 2023

 그 건 0월 0일에 할 거야.

일에 잠식당하지 않는 방법

일요일 저녁...

밥을 먹으면서 오늘 자고 나면 월요일이 시작된다는 사실에 흠칫 놀란다.

'벌써 주말이 이렇게....'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밥을 다 먹고 뒷정리를 할 즈음 내일부터 해야 할 일들이 머릿속에 하나 둘 떠오른다.

'출근하자마자 이건 00 부장에게 보고하고, 모레 출장 가는 것도 미리 올려놓아야 하고..'

생각하기도 싫은 건 왜 이리 뇌리에 박히는지... 씻을 때도 텔레비전을 볼 때도 해야 할 일들이 자꾸만 떠오른다.

어차피 지금은 처리도 못하는데... 출근의 압박감을 느끼고 있나 보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일들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걱정된다. 그래서 머릿속에 붙잡아 두려니 일요일 저녁 이후는 내 것이 아니게 된다.

'아! 해야 할 일들을 다이어리에 적어 놓으면 마음이 편해지겠다!'

철학적 깨달음을 얻은 마냥, 휴대폰을 꺼내 월요일에 해야 할 일들을 차곡차곡 입력한다.

'아! 이제 좀 괜찮겠지? 급한 불을 껐으니...'

자리에 누워 밀린 드라마를 보려고 하는데 이제는 이번주 해야 하는 일들이 생각난다.

"영수증 처리는 수요일까지고, 기획안 수정은 목요일까지... 아! 맞다. 금요일까지 표지 시안 확정해야 하는데...'

다이어리는 이미 다음 주 일정으로 빼곡히 적혀 있다.

이제 불안한 마음이 사라지겠지 생각해 보지만 내 뇌는 다음 주, 다음 달, 상반기에 해야 할 굵직굵직한 것들이 샘솟는다.

'다음 달에 시스템 오픈해야 하는데 그때까지 마무리되겠지? 혹시 오류 생기면 어쩌지?'

일어나지도 않을 미래의 일들이 나를 괴롭힌다. 일에 잡혀 먹히는 형국이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출근했다. 선배가 "너 뭐야?", "밤새 술 마셨어?"라고 한다. 사람 속도 모르면서...

선배에게 해야 할 일들이 계속 생각나서 일요일 저녁에는 죽을 맛이라 털어놓았다. 선배 왈,

"그럴 땐 '나는 그 일은 0월 0일에 할 거야!'하고 외쳐! 그리고 짬이 생겨도 그 일을 미리 하지 마! 그 대신 즐겁게 노는 거지. 사람들도 만나고, 영화도 보고, 쇼핑도 가고..."

"그래도 머릿속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은데요?"

"연습이 필요해. 연습이... '나는 0월 0일에 할 거라고 지인들에게도 공포하는 거야. 그리고 지인들과 함께 노는 거지. 뱉은 말이 있으니 시급하지 않은 이상 정말 그때 가서 그 일을 하게 돼. 네가 불안하고 걱정할 일이 생길 일은 거의 제로에 가까워."


그래... 가 생각한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일은 거의 없지. 내 스스로 일과 주종관계를 만드는 거야.

 

"그건 0월 0일에 할 거야!"

"그때까지 최선을 다 해 놀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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