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날 속이지 않는다

기록, 감정의 착각을 꿰뚫는 도구

by 이카이카

가끔은 내가 잘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기록을 보면 아니었다.


또 가끔은,

너무 엉망인 줄 알았는데

기록을 보면 의외로 괜찮았다.


기억은 흐릿하거나 과장된다.

감정은 그 순간의 색으로 모든 것을 덧칠한다.

하지만 기록은 그걸 벗겨낸다.

기록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


나는 한동안

“왜 나는 늘 실패하지?”

“이번에도 또 무너졌네.”

하는 자책을 달고 살았다.

감정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그 감정을 진짜인 줄 알고 따랐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곳에서 일을 마치고

아주 긴 시간을 걸려 퇴근해야 했던

어느 늦은 저녁이었다.


비공개로 남겨두었던 SNS 기록들을

쭉 내려보다가 멈췄다.


내가 실패했다고 믿었던 날,

그날의 기록은

내가 겨우겨우 버텼던 하루였다.

마지막 충동을 밀어냈고,

루프를 몇 시간이나 늦췄고,

억지로라도 기록을 남긴 날이었다.


감정은 실패라고 했는데

기록은 분명히 말했다.

“이 날은 성공에 더 가까웠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감정을 믿지 않기로 했다.

기록만이 진짜라고 정했다.


감정은 한없이 요동친다.

후회는 크고, 반성은 깊어 보이지만

결국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만든다.


반면 기록은

되돌아보게 만들고,

패턴을 보이게 만들고,

구조를 고치게 만든다.


나는 지금도 감정에 휘둘린다.

하지만 감정이 뭐라고 말하든,

기록을 먼저 본다.


하루가 엉망 같아도,

기록을 보면 분명히

하나쯤은 지켜낸 게 있다.


하루가 멀쩡한 것 같아도,

기록이 없으면

실은 그냥 흘려버린 하루다.


기록은 진실을 말해준다.

무너지기 직전에도

내가 한 행동이 무엇이었는지.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내가 얼마나 안간힘을 썼는지.


기록이 없으면

나는 또 나를 오해하게 된다.

또 나를 깎아내리게 된다.


나는 이제 감정보다 기록을 믿는다.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기록이

내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만든

가장 정확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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